마음의 눈으로 보는 세상

그가 아름다운 이유는 언제나 따뜻한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고, 적어도 그것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이 그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경남지부 진주지회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수석(46)씨.
지난 1993년, 그에게 뜻밖의 불행이 찾아왔다.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실명을 한 것이다. 그는 더이상 아침에 눈 뜨면 바라다 보이는 눈부신 햇살과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가 가진 거라고는 어둠,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단지 두 눈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는 세상 전부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찾아 온 어둠만큼이나 그의 삶은 공허했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만이 그의 빈자리를 채울 뿐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딸의 아버지로 살아왔던 평온했던 자신의 삶을 가로막고 선 커다란 벽. 그것은 차라리 지옥과도 같은 삶이었다.
방황의 시간들이 3년동안 계속되었다. 세상을 바라 보는 눈이 닫히고, 이제는 마음의 문도 점점 굳게 닫혀 가는 듯 했다. 불과 몇 년 전 그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보랏빛 희망들은 절망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중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비록 세상의 밝은 빛을 눈으로 볼 수 는 없지만, 마음의 눈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맹인학교에 입학했고, 안마자격증을 따냈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진주지역의 양로원 노인들을 위해 안마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을 마음속에 한 점 한 점 아로새겨 넣으며 그만의 아름다운 초록빛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안마기술 자격증은 그가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생계유지 수단이었다. 삭막하기만 한 삶이 그에게 세상으로 뛰어들게끔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들고 지친 몸을 추스리며 일에 매달릴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시각장애인협회 진주지회 김종용회장에게서 자원봉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빠듯한 살림살이도 바쁜데 자원봉사라니…."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많이도 망설였고 걱정도 앞섰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이틀의 시간을 내야 하는 빠듯한 일정에다, 이동수단이 불편한 그로서는 당연한 망설임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심했다.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해보자"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되어다.
처음에는 습관이 되지 않아 많이도 힘이 들었다. 육체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항상 누군가 곁에 있어 주지 않으면 혼자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괴로웠다. 그렇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이겨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봉사를 하고 나면 힘이 나고 마음까지 상쾌해 집니다"
그는 요즘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봉사한다는 그 자체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다. 진주시에서 추진하는 경로당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일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하는 봉사활동보다는 그리 어렵지도 않기 때문이다.
걸쭉한 농담과 함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허리와 어깨를 안마하면서 그는 행복해 한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서는 손으로 느끼는 행복감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마음으로 열어 가는 따뜻한 세상. 진정 그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