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문단의 제1호 문인은 노산 이은상(李殷相·1903~1982)이다. 노산은 마산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세운 마산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1918)하고 연희전문 문과에 다니다가 1923년 그만 두고 창신학교 교원으로 근무했다.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 사학과에 다녔다. 그는 1921년 두우성(斗牛星)이라는 필명으로 '아성'에 시 '혈조(血潮)'를 발표했고 1924년 '조선문단'에 시 '영사행(瑩士行)', '애사(哀史)' 등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노산은 이 무렵 '조선문단'을 발행했던 춘해(春海) 방인근의 집에서 금성 동인 무애(无涯) 양주동 (梁柱東·1903~1977)을 만나 동갑나기 친구가 되었는데 다음해 일본 동경에서 재회하여 하숙생활을 몇 개월 같이 하게 되었다. 이때 무애는 와세다대학 고급학년이 되어 있었고 노산은 아직 대학에 들지 않고 '동양문고'에 다니며 역사서를 탐독하고 있었다. 무애는 학자금이 모자라 당분간 노산의 하숙집에 기거를 하면서 하루 두끼는 노산의 하숙밥을 나눠 먹기로 양해를 구해 놓았다.

　노산으로서는 청년시절 두 끼를 먹는 둥 마는둥 해야 했기 때문에 불편했을 것이나, 그러나 그 불편이 밑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계산하고 있었던 듯하다. 무애가 와세다대학에 먼저 다니고 있어서 선배라는 점, 무애가 먼저 '금성'활동을 통해 문단에 나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탄탄한 실력으로서 그 즈음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평론을 발표하여 한국문단의 주요 신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 등을 두고 볼 때 노산으로서는 무애를 든든한 배경쯤으로 여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하숙에서 불꽃 튀는, 포복절도의 에피소드들이 탄생되었다는 것은 무애의 에세이집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대학 3학년 '국문학 강독'시간에 무애선생으로부터 직접 여러 에피소드들을 들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일본 사람들의 식사량이 적었던 것은 알고 있는 일이거나와 그 밥알 개수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소량 밥그릇을 놓고 두 사람은 공략해 들어갔다. 하루 아침 해장국거리도 안되는 일이지만 공략 수행은 전광석화와 같이 해내야 했다.

　만일에 이 분식(分食) 사건이 식모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조선 유학생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기에 두 사람은 이 거사를 비식으로 진행한다는 원칙을 확정해 놓고 있었다. 무애는 물론 젓가락만 지니고 다니다가 목표물이 발생했을 때는 지체없이 거사를 수행했지만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기도 했다. 식모가 차나 물을 날라 오느라 2층 계단으로 오르는 소리가 나면 무애는 동작 그만, 상시휴대 젓가락을 엉덩이 밑에다 넣고 남향좌(南向坐)하여 시를 음미하는 것이었다.

　동녘 울밑의 국화를 꺾어들고(採菊東籬下)/조용히 남산을 바라보노니(悠然見南山)/해질 무렵 먼 산은 아름다워라(山氣日夕佳)
　저물어 새들도 집으로 들고(飛鳥相輿還)/여기 우리 살며 느끼는 기쁨이 있어(此中有眞意)/무어라 이를 들어 이를 길이 없구나(欲說巳忘言)

　도연명 (陶淵明·365-427) 의 '음주(飮酒)'라는 시다. 길게 읊조리기 때문에 식모가 빨리 올라오게 되면 '채국동리하'에서 마감해도 되지만 천천히 올라오면 'ㅡ 유연견남산, 산기일석가' 까지 가거나 끝구까지 가야만 효과를 보게 되었다.　무애는 미음(微吟) 하면서 "식모가 어찌 도연명을 알겠는가, 시를 어찌 알겠는가" 하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빨리, 오던 계단 내려가 원위치하라" 라는 갈급한 식욕 본능에만 빠져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