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이은상)과 무애(양주동)의 동경시절은 다같이 시를 습작하는 이른바 문청(文靑)시기였다. 그무렵(1925년 후반) 무애가 문단에서는 ‘금성’활동으로 신인으로서의 위치가 드러나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애의 ‘문주 반생기’에 ‘시인 인가(認可)’대목이 나오는데 문청시절 두 사람 시작(詩作)의 뒤안길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어느날 노산이 <구름>이라는 제목으로 시 한 편을 써서 무애에게 평을 청하였다.

　"구름 저 하늘 위에 떠있는/구름을 무엇에다 비길까-/하늘 누에라 할까,/내가 어렸을 적 타고 놀던/강아지라고 할까......."

　무애가 이까지만 읽고는 "여보게, 이것 두보(杜甫)의 '천상부운여백의 天上浮雲如白衣.......' 에서 따온 것 아닌가. 금세 '두시역초杜詩譯抄'를 읽었군" 하고 아예 무시하였다. 노산은 "어허 성질도 급하군, 그 다음을 보라니까" 끝련에 적었으되 "오요요 부르고 싶은 마음-/그 마음 귀여울러라" 한 것을 보고 무애는 비로소 무릎을 탁 쳤다. "어데서 얻어왔는고? 응당 내가 할 말이로다" 하면서 "시인으로 인가하노라..."하였다. 친구간에 인가는 무슨 인가란 말인가. 그 장면을 생각하면 누구나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마련이리라.

　따온 걸 치면 사실은 무애가 노산보다 한 수 더 떴다 할 것이다. "어데서 얻어왔노?(何處得來오), 응당 내가 할 말이로다(應是吾輩語)"고 한 평은 구양수(毆陽修)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후에 무애는 창작의 길을 접고 '향가연구'에 전념하여 우리나라 국문학 일세대로서 빛나는 업적을 쌓았고 노산은 시조 부흥의 선구자로서 아름다운 업적을 쌓았다. 노산은 무애의 학문적 성취를 높게 평가하여 시조‘채약송採藥頌’을 지었다. 그 셋째수에 "한뎃 잠 얼마더며, 배고픈 적은 몇 번이던고?/아무리 그런들사 그 공덕 어디 알더라고?/말 마오, 저 밖에 모르는 공덕이 더 큰 공덕일진저"라 적었다. 무애는 물론 감동하였다.

　무애는 노산의 ‘노산시조선’간행에 즈음하여 ‘제사오수題詞五首’를 써서 노산에게 화답하였다.

　"동도東都 찬 여사旅舍에 한 이불밑 잠들었고/세 끼니 밥 한 상을 둘이 갈라 먹었도다/지금에 어느 우정이 이만하다 할소냐....(중략) 젊어 각기 들메 메고 산으로 바다로 떠났것다!/내사 산삼 캐려다가 도랒 몇 뿌리 얻었네마는/어디 봐, 자네 광우리엔 구슬 몇 낱 빛나는가" 천하의 무애도 노산 앞에서는 몸을 낮추고 노산의 작품을 주옥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쯤에서, 노산의 가곡‘가고파’가 김동진의 곡에 실려 파도를 타고 다가오는 듯하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적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오늘은 다 무얼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필자는 이 노래를 들으면 테너가수로 뽑아 올리는 가곡의 흐름에 함께 할 수 없는 스스로의 성량(聲量)에 비감을 느낄 때가 많다.

　어쨌거나 노산과 무애의 우정은 '그 파란물 눈에 보이네'의 파란물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흐르는 것이었다. 1960년대에 동국대학교 대학원장으로 재직하던 무애는 동국대 교가를 새로 제정할 때 학내에 서정주 같은 국내 최고의 시인이 있는 데도 학교 밖의 노산을 교가 작사자로 추천했었다. 이는 순전히 노산과의 우정 때문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같은 해에 태어나 일세를 풍미했던 노산과 무애, 노산은 80세에 무애는 이보다 5년 앞서 이승을 떠났다. 무애가 노산보다 술을 더 많이 마셨던 데에 그 원인이 있었을까? 잘 나갈 때 무애는 한 자리(1박 2일)에서 맥주 3백 병을 마셨다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