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시대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천사'로 불리는 차연혜씨(61).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암(癌)과의 처절한 사투를 벌였고, 70여 차례에 걸쳐 항암제를 투여받는 인고의 시간을 지나왔지만 그에게서 고단한 삶의 그림자는 찾아 보기 어렵다. 단지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아쉬움'만 잔뜩 묻어 날 뿐이다.
자신도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고향 진주의 어려운 이웃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는 그는 분명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는 '서로 의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일 뿐'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진주여고 2학년 재학중에 서울로 이사 한 그는 한참동안 진주를 잊고 지내다 유방암을 앓기 시작하면서 불현 듯 스치는 고향 생각에 지난 1997년초 진주에 내려왔다. 예전에 살았던 옥봉동 일대를 둘러보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삶을 꾸려 나가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마음 한 켠에서 와락 설움이 치솟았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독거노인과 인연을 맺고 부모처럼 보살피는 것이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한 달에 일정금액을 꼬박꼬박 전달하고, '연탄은 남아 있는지' '쌀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하루에 한 번씩 안부전화로 살림살이를 챙겼다. 그러는 사이 그는 어느새 독거노인들과 서슴없이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상의하는 한 가족이 되어 있었다.
병마마저 까맣게 잊은 채 고향 노인들에게 훈훈한 사랑을 실천하던 그에게 또다시 시련이 다가왔다. 유방암에 이어 임파선 암이 찾아왔고 다시 뼈 암, 대장암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견디기 힘든 고통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항암제 투여라는 극약처방이 또다시 내려졌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며 원망할 시간도 없이 죽기보다 싫었던 항암제 투여는 병세가 호전될 때 까지 계속됐다.
진통제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그는, 어느날 암치료 연구를 위해 써달라며 자신이 입원하고 있던 병원에 3천만원이라는 거액을 선뜻 내놓았다. 암과의 투병생활이 벌써 8년이 넘은 그가 일년에 병원비로 쓰는 돈만 해도 무려 2천만원이 넘는다.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음에도 오히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당시 저에게는 큰 돈이었지만 저처럼 암에 걸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습니다."
목숨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느낌이 들수록 그만의 고향 사랑은 더욱 애틋해지고 깊어져만 갔다.
그런 그가 지난 2월, 진주시 자원봉사계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면 병원비를 더 절약해 더 많은 이웃을 도울 수 있었을 텐데…. 죄송해요."
직접 찾아가서 전달해 드려야 하는데, 아직도 불편한 몸이라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며 인사를 건네던 그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봉투를 건네며 오랜만에 화사하게 웃는다.
그리고 진주 오는 길에 치료차 병원에 들렀다가 자궁경부암을 앓고 있는 환자를 보고서는 준비한 돈에서 얼마를 빼서 그 분께 드리고 왔노라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는 차연혜씨.
봉투를 건네 받은 소년소녀 가장이 북받치는 설움에 울음을 터뜨리자 연신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울지마, 열심히 살면 돼"라며 격려를 하다가 끝내는 함께 울고 만다.
'고향 진주를 찾아 올 수 있는 기력이 남아 있고, 어려운 이웃들과 나눔의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라는 차씨.
'지금껏 살아 있을 수 있는 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더 열심히 봉사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라며 환하게 웃는다.
자원봉사계의 문을 나서던 그가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노라'고 귀뜸을 했다.
그것은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게 조금만 덜 아프게 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인사를 나누며 그는 '단지 그것 뿐'이라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