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자(배순자 우리옷 연구소)

그가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눌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바늘 한 땀 한 땀에 담겨 있는 사랑의 크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마흔이 넘도록 한복 한 벌 가져 보지 못한 이들에게 사랑의 옷을 해 입히고서야 겨우 맑은 웃음을 한 번 지을 뿐이다. 그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주시 여성회관에서 한복 짓는 일을 가르치고 있는 배순자(배순자우리옷연구소 대표)씨.
그가 진주시 여성회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9년의 일이다. 노무현대통령의 미국방문시 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초청될 정도로 전통 복식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그가 15년동안 여성회관 강사 자리를 지켜 온 이유는 딴 데 있지 않았다.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은 마땅히 그렇지 못한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기독육아원 원생들을 위해 생활한복을 지어 주는 일이었다. 1990년 기독육아원을 방문했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두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이의 치수를 재며 그가 생각한 것은 '나눔'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리고 무려 67벌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한복을 지으면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혀 온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발견했다.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이어졌고 한 달만에 마침내 67벌의 한복이 만들어졌다. 그해 연말, 원아들을 초청해 정성이 가득 담긴 한복을 전달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색동 저고리와 치마를 입어 보며 함박웃음을 짓던 아이들. 그 모습을 보며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하던 자원봉사자들.
그는 그때 당시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프로골퍼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웃을 때보다 더 기뻤습니다"
그 이후 해마다 동전을 새로 달아 주고 해어진 곳을 고쳐 주다가 올해 2월에 다시 기독육아원을 방문했다. 마음은 있었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차일피일 하다가 마침내 아이들의 새 옷을 짓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무슨 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하는데, 그 마음먹기가 힘들었다'는 그는 처음 한복을 지을 당시 두 돌 배기였던 갓난아이가 어느새 여고생으로 자란 것을 보고 너무 기뻤다. 64명에 달하는 아이들의 치수를 일일이 재고 돌아 오는 길에 그는 자신에게 물음을 던졌다. '지금까지 나는 과연 무엇을 해왔는가'
자원봉사의 길에 들어선 뒤 그는 1998년부터 실시된 합동결혼식 부부들에게 한복을 지어 기증하는 일을 했다. 결코 만만치 않은 부담이기는 했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바늘 한 땀 한 땀에 정성을 쏟을 수 있었다. 마흔이 넘도록 단 한번도 자신의 한복을 가져 보지 못한 이들이 생전 처음 한복을 입어 보고 즐거워 하는 모습은 그동안의 힘든 시간을 씻어 주기에 충분했다.
"정말 필요로 할 때 내가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라는 그는 지난 2001년에는 스페인 까탈루나에 거주하는 진주출신 교민들을 위해 시가 1천500만원 상당의 한복 30벌을 선뜻 기증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는 러시아와 터키 등의 대사관 초청 패션쇼에 의상을 제공한 것을 비롯, 서울 아셈 기념행사 의상쇼, 광복 50주년 기념 독일 프랑크 푸르트 교민초청 패션소 등 국내외 각종 행사에서 우리민족의 전통 한복을 알리는 뜻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자원봉사를 하면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자신을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남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숨은 봉사자들이 아직 많다는 그는, '이 세상에서 퇴직이 없는 유일한 직업이 자원봉사'라며 밝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