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곳곳에는 밑동을 드러낸 무가 실팍하게 자라고 있고, 그 옆의 마을 진입로에서는 아낙네들이 부대에 벼를 쓸어 담고 있는 풍경이 스친다. 이렇게 해서 긴긴 겨울 밤을 지낼 양식이 장만되는가. 거칠게 골목골목을 휘돌아 나가는 바람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이제 곧 겨울이라고.
농부가 없는 초겨울 냉정(冷井)마을의 들녘은 왠지 스산해 보인다. 길옆에 자리잡은 간판없는 구멍가게에는 한 해 농사를 거뜬히 해낸 고로(古老)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때이르게 피운 난로가 따뜻하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에 시름을 잠시 잊는 듯한 표정이 행복해 보이는 냉정마을 사람들.
냉정리(冷井里)는 '물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아무래도 산첩첩 물중중한 곳을 갈때는 구절양장 비껴 도는 길이 제격이지만 냉정(冷井)가는 길은 곧바르다. 굽어 있지도 휘어있지도 않고, 더욱이 구절양장 비껴 도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길을 떠난 과객(過客)이 잠시 쉬어가기 좋고, 누구나 목마름을 한번에 풀어낼수 있는 맑은 물이 아름답고 정겨운 냉정(冷井).
여름에는 차가운 김이 서릴만큼 차갑고, 특히 겨울에는 따뜻한 온기를 풍길 정도로 좋은 물을 자랑하는 찬새미가 있어 냉정마을은 유년시절의 고향 언저리를 기억하게 하는 곳이다.
찬 샘이 있다해서 찬새밋골, 냉천(冷泉), 냉정(冷井)이라 했더니, 그 물의 기운(氣運)은 아직도 때로는 시원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마을을 감싸고 있다.
꾸불꾸불한 흙길을 따라 찾아가는 고향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닦여진 아스팔트 길이 낯설지도 않은 냉정(冷井)마을은 1914년 진주군 집현면(集賢面) 광정동(廣亭洞)·냉정동(冷井洞)·미천면 원당동(美川面 元塘洞)으로 형성됐다.
마을의 절반에 가까운 30여세대가 단감농사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냉정마을은 2000년 10월31일 현재 66세대 198명의 마을을 지키며 살아 가고 있다.
감박골, 가매실, 참새미, 원당 등 자연마을의 이름들이 정겹고, 제각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냉정(冷井).
냉정 입구에서 서쪽으로 200m쯤 떨어져 있는 가매실(釜谷)은 마을모양이 가마모양이라해서 붙여졌고, 냉정 동쪽에 있는 골짜기인 감밧골과 냉정 북쪽에 있는 텃골이라고 불렀던 기곡(基谷)에는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물믹이라고 부르는 마목동(馬牧洞)은 옛날 말타고 서울가는 길가였고, 말이 지친 몸을 편히 쉬는 곳이었으며, 덕성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무시골과 모개골은 숯고개(炭峴)과 함께 정겨운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냉정마을 가는 길에는 경남도 문화재자료 180호인 냉정리 이정표석(冷井里 里程標石)이 서 있다. 천태산 마구할미가 진주성을 쌓는다는 소식을 듣고 바위를 들고오다가, 진주성이 완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짚고 오던 바위를 내려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오는 이정표석.
옛날에는 한양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석이 되어 나그네들의 반가운 친구가 됐고, 지금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옛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양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석을 지나 냉정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찬새미를 만날 수 있다. 가뭄을 타지 않고 바위틈에서 물이 나오는 동네라 해서 참샘골이라고도 부르는 마을어귀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찬새미 얘기다.
수돗물로 밥을 해먹는 시대가 왔지만 아직도 세가구가 물을 먹고 있다는 찬새미는 '물좋은 곳이 사람 살기 좋다'는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국적으로 그 명성을 날리고 있다.
좋은 물만 찾아 다닌다는 품천가들이 한번쯤은 다녀간 곳이요, 이웃 동리사람들까지 그 물맛을 칭찬해 마지 않았다는 찬새미는 지금은 많이 훼손돼 옛 멋을 잃어 가고 있다.
더군다나 찬새미 앞에 진주∼합천간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사라져 없어질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마을사람들의 강력한 반대로 지금은 지하도로 아래로 겨우 터를 보존하는 신세가 됐다. 그 옛날 화려했던 명성과 영화가 현대문명의 이기로 인해 빛을 잃어가는 안타까움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찬새미 주위로 우거진 잡초를 베어내고서야 그 원형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잊혀져 가던 찬새미는 마을주민들에게 주었던 헤택을 지금 마을주민들에 의해 되돌려 받고 있다.
수백 수천년 동안 자연과 함께 해 왔던 찬새미의 모습을 간직하려는 마을주민들의 살가운 노력들이 앞으로도 계속돼, 냉정은 앞으로도 '물이 좋은 마을'로 불리워 질것 같다.
찬새미를 뒤로 하고 들어선 참샘골은 현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마을 한 가운데 정자나무는 마을쉼터로 산뜻하게 꾸며졌고, 마을길을 다니는 동네사람들도 밝아 보인다.
적어도 400∼500년은 되어보임직한 정자나무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2개의 들돌은 옛날에는 '머슴돌' '품앗이 돌'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정자나무의 역사만큼 오래된 세월을 갖고 있는 이 들돌을 들어야만 머슴으로 일할수 있어 힘깨나 쓰던 마을 청년들이 수없이 들었던 돌이기도 하다.
힘깨나 쓰던 장정이라해도 쉽게 들수 없었던 이 돌의 무게는 70kg에서 90kg이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에 의하면 70kg짜리 들돌을 들어 올리면 머슴자격을 주었고, 90kg짜리를 들어 올리면 세경을 더 많이 주는 척도였다.
그런데 이 90kg짜리 들돌은 마을이 생긴 이래 거뜬히 들어올린 이가 몇되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냉정이 '물이 아름다운 마을'이긴 하지만, 남강댐과 냉정저수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해마다 적은 비에도 논이 침수돼 어려운 생활을 했다.
'정수·정평에서 오줌을 누면 월평 등지가 침수됐다'는 우스개소리가 아직까지 입에 오르내리고 있고, 마을에서 최고 부잣집이 하루 두끼를 죽으로 연명했다는 전언도 있다.
지금은 낚시터로 더욱 유명해진 냉정저수지는 이웃 농경지의 농업용수를 대는 원수로 자리하고 있다.
냉정마을은 오는 2005년 마을내 도로와 상수도등 마을기반정비와 농어촌도로, 버스승강장등 농어촌도로정비도 실시될 계획이다.
또한 농로 등 생산기반정비와 용수개발 등 농어촌용·배수시설도 계획돼 있으며 재해방지를 위한 마을안전시설도 갖춰져 살기 좋은 마을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