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성 설창수와 진주 남강가
 
 파성 설창수의 문학 현장이 어디가 좋을까 싶어 진주의 한 중견 문인에게 물었다. “글쎄, 파성의 문학 현장이라…” 중견문인은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진주에서 파성의 문학 현장으로 한곳으로 지목할 만한 곳이 있겠느냐”는 대답이었다.
잠시후 기자는 물음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파성의 문학 현장은 ‘진주 그 자체’ 였기 때문이다.
파성은 1916년 창원에서 태어나 창원공립보통학교와 진주농고를 졸업했는데, 진주농고에 입학할 무렵 그의 부모는 창원에서 진주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 농고를 졸업하고 창녕에서 잠시 촉탁교원으로 근무하기도 하고 부산 무진 진주지점에서 일하기도 하다가 1939년 교토 입명관대학 예과 야간부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다음해 도쿄에 있는 일본대학 예술학원창작과에 입학하여 이석영 김보성 박현수 등 8명과 문학동인 ‘화요그룹’을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광복 후 경남일보에 입사해 주필 사장을 지냈으며, 문교부 예술과장, 참의원 의원, 전국문화단체 총연합회 대표의장, 한국문학인 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파성은 시인으로서 예술 운동가로서 진주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1946년 진주시인협회를 결성하고 회지 ‘등불’을 창간했다. ‘등불’에는 이경순 백상현 조진대 김보성 노영란 김동렬 최계락 등 진주사람들 뿐만 아니라 유치환 조향 이윤수 조지훈 손동인 김동사 등의 작품도 실렸다.
‘짙은 밤안개 물리쳐 내시고/누리 동쪽에 새하늘 열으시다/동바다 처녀 볼에 보라빛 비낄제/푸른 골골마다 노래소리 깃들고/영광 길이 우리속에 살아남으리/어허야 시월 상달 초사흘날//잠든 밤 고요 일깨워 주시고/누리 동쪽에 새나라 세우시다/장배간 봉우리에 향촛불 밝힐제/푸른 골골마다 노래소리 깃들고/영광 길이 우리 속에 살아 남으리/한 아배 아들딸인 배달겨레//’
파성이 지은 ‘개천송가’이다. 파성이 시인보다는 문화예술 운동가로서 더 알려진 것은 아마 개천예술제 때문일 것이다.
“H다방 2층에서 모여 유사 이래 처음인 대한민국 세운 돌맞이 잔치를 의논하게 되었다. 동시에 경술국치 후로 근 40년의 왜정 압정에서 해방된 자유 독립 국민으로서 4300년 단조조국 이래 일체 왕손끼리가 미증유한 일대 민족 영광과 기쁨을 예술 올림피아로서 전개하여 조국자에 제사함으로써 광복 민족임을 자축하고자 국본의 근원원천인 구력 개천절을 택일했었다.”
개천예술제 40년사에 실려있는 개천예술제 창설 동기의 목적에 관한 부분이다. 개천예술제의 주역으로서 이형기 박재삼 등 많은 시인을 배출하는데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晋陽城外 水東流를/왜 남강으로 이름 했음일까/아무도 모른다//언제 어드메서 처음 되었는지/너 강줄기의 족보를 아무도 모른다//둥근달과 뭇 별을 눈망울에 담고도/차라리 여울마다 목메이는 서러움을 아무도 모른다//천지 보군 삼장사로 읖조렸던/왕이란 것 따로 없는 만백성의 나라/역사란 얼굴을 비쳐주는 푸른 거울임을 아무도 모른다//’
파성이 남강가에서 지은 시이다.
구상 시인은 파성의 시를 “서정이나 서경보다 ‘詩言志’의 세계 라고 했다.”시 자체의 아름다움 보다는 역사성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파성의 시는 그가 살았던 곳, 그가 살았던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강희근 시인은 “거의 전 생애를 남강가 풀밭 어우름에 살면서 남강의 새로운 비유를 이루어낸 시인”이라고 했다.
지금 파성은 그가 거닐었던 남강가에 있다. 그리고 개천예술제 50주년기념 조형물이 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강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