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덕정(覽德亭) 구준효(具焌孝) 명궁(名弓)
'활 쏘는 것은 진퇴(進退)와 주선(酒旋)이 모두 예(禮)에 맞고 내지(內志)가 바르고 외체(外體)가 곧은 연후에 궁시(弓矢)를 잡는 것이 심고(審固)하다. 궁시를 잡음이 심고(審固)한 연후에야 맞히는 것을 말할 수 있으니 이것으로써 덕행(德行)을 엿볼 수 있다.(射者進退周旋必中禮內志定外體直然後持弓矢審固然後可以言中北可以觀德行)'
궁도(弓道)에서 '인애덕행(仁愛德行)'을 배운다는 점에서 인생(人生)과 다를 것이 없다는 구준효(具焌孝 54) 명궁. 베풀지 않고 봉사할 줄 모르는 삶이 무미(無味)한 음식과 같듯이, '궁술(弓術)은 알아도 궁도(弓道)를 모르면 흐르는 지표수(地表水)와 같다'고 늘 강조한다.
삶에 대한 고민보다는 집 밖을 나돌기 좋아했던 유년시절(幼年時節)을 지나 어느듯 인생장년(人生長年)을 맞은 지금,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궁도(弓道)다. 활을 당기고 허공에 살(矢)를 날려 과녘에 명중시키기 위한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그것이 곧 그의 인생(人生)이었다.
살아 가는데 있어 궁도(弓道)를 배우는 것 보다 더 큰 보람은 없다고 자부하는 이유도 활을 쏘는 과정에서 바로 인애덕행을 배우고 익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베풀고 봉사하는 훈(訓)이라는 그는 지금도 궁도(弓道)와 함께 하는 인생을 살아 가고 있다.
첫 입사(入射) 이후, 첫 궁례의 기쁨을 맛보고 난 후 궁도에 점점 매료돼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불과 3달이 채 안돼 첫 몰기(沒技)로 접장이 되었고, 4년이 지나 승단(昇段)했으며 다시 3년이 지난 뒤 그는 명궁(名弓)이 되었다.
입사 5년만에 명궁의 자리에 오른 그이지만, 궁도입문 이후 정작 그가 진정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애덕행(仁愛德行)'이었다. 궁도(弓道)를 통한 새로운 삶의 발견,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궁도(弓道)와 하겠다'는 당당한 포부처럼, 지금 그의 길(道)은 궁도(弓道)와 연결지어져 있다.

궁도에서 예(禮)를 배우다
람덕정(覽德亭) 양영이 사우(射友)와의 인연(因緣)으로 처음 궁도(弓道)를 만났다. 그때가 1989년 7월14일, 초여름을 앞둔 어느날이었다. 궁도입문 이후 한때 불같은 성격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눈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예(禮)'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부모 연배의 사우(射友)들과 시간을 함께 하다보니 자연 공경(恭敬)과 배려(配慮)의 의미를 알게 됐고, 예(禮)를 갖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무릇 살아간다는 것, 혹은 자신의 인생(人生)을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 그에게 예(禮)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가 처음 궁도에 입문하는 초심자들에게 '인의덕행'을 강조하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입사(入射)한지 3개월여만에 첫 몰기(沒技)를 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것이다. 몰기(沒技)란 신기루와도 같아서 잡힐 듯 하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는 것이지만, 그는 불과 3개월만에 해낸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해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자신안의 불(火)을 잠재우고 있는 그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이 궁도(弓道)와의 끈질긴 인연(因緣)의 시작이었다.
이후 하루에 몇 번씩 사정(射亭)을 찾았다. 단지 활을 쏘고 싶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부모 연배의 사우들에게 예(禮)를 올린뒤, 나란히 사대(射臺)에 나란히 서 마음을 다스린다. 살(矢)이 시위를 떠나 과녘을 향해 날아갈 때 그의 마음은 평온해 진다.
입사 2년이 지난 10월 7일, 부산 구덕정에서 승단(昇段)대회가 열렸다. 습사(習射)도 많이 했지만, 그에게 있어 승단대회는 각별한 것이었다. 궁도와 인연을 맺은 뒤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을 시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의 첫 도전은 성공이었다. 활을 손에 잡은 지 불과 2년만에 드디어 초단(初段)이 된 것이다.
본격적인 훈련과 연습이 그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든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至論)에 입각한 그의 시도는 순탄한 길을 걷는 듯 했다.
깎지가 엄지손가락에 걸리지 않아, 연습하는데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타고난 힘과 기량에도 불구하고 그의 심신은 지쳐갔다. 포기하고픈 생각이 들어, 한동안 활을 놓고 망연자실했다. 그때 궁도와 인연을 맺어준 양영이 사우가 그에게 다가왔다. 다시 피나는 노력이 시작됐다. 한때 작은 걸림돌로 난관(難關)이 그에게 닥쳤지만, 양영이사우의 도움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왼쪽 보다 2배나 커져 있다. 상처가 나고, 피가 나는 손가락에 깎지를 끼고 과녘을 겨냥해 화살을 날렸다. 돌이켜 보건데, 그 때 날린 화살은 아마도 자신의 궁도인생에 있어 가장 살가운 살(矢)이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그의 곁에서 도움을 준 정재구 사범(73)은 그의 궁도인생에 있어 가장 큰 빛이었다.
'궁체(弓體)가 좋다'는 칭찬 한마디에 불같은 성격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사대(射臺)에 설 수 있었던 것도 정사범의 관심과 애정 덕택이었던 것이다.

홍심(紅心)을 가슴에 품다
초단(初段)을 따낸 뒤 그의 끝없는 궁도에 대한 열정(熱情)은 이미 명궁(名弓)의 자리에 가 있었다. 이듬해인 1992년 수원 연무정에서 개최된 2단(二段) 승단대회에서 2단을 따냈다. '무겁(無怯)'이라 부르기도 하는 2단은 '무엇이든 겁이 없고', 사법(射法)도 생소한 반면 관중(貫中)에만 열을 올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2단을 따 내기 전, 궁도에 매료된 그가 난관을 극복하고 도전의 길목에서 만난 것은 다름아닌 자신이었다. 첫 도전에서 쉽게 따냈던 초단과는 달리 2단 승단에는 몇차례의 아픔을 겪었다. 다시 그만의 도전,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순탄하기만 했던 그의 궁도 인생에서 맛 본 첫 아픔이었다.
2단(二段)을 따 낸 해인 1992년, 그는 3단(三段)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실로 '무겁(無怯)'다운 일이었다. 원주에서 개최된 승단(昇段)대회에서 3단을 따냈다. 장족(長足)의 발전을 거둔 셈이다. 궁도인들은 3단(三段)을 '장족(長足)'이라 한다.
활을 쏘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서도 장족의 발전(發展)이 있고, 만만한게 아닌 것이 활이지만 열심히 습사 하니 나날이 공력(功力)이 쌓임을 뜻한다. 2단(二段)을 딴지 불과 4개월만에 장족(長足)의 발전을 이룬 것이다.
그의 궁도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듬해인 10월 청주에서 열린 승단대회에 참가한 그는 4단(四段)의 고지까지 점령했다. 승단 한지 불과 3년만에 고전(苦戰)이라고 부르는 4단(四段)에 오른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4단(四段)이 되어 명궁 준비를 한다해서 부르는 고전(苦戰)은 말 그대로 힘겨운 노력에 대한 댓가였다. '각궁으로 바꾸었더니 시위가 헷갈린다. 시수(矢數)는 떨어지고 죽시(竹矢)는 비싸게만 느껴진다' 4단(四段)을 고전(苦戰)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마침내 1994년 11월15일 창원 강무정에서 개최된 승단대회에서 5단(五段)에 올랐다. '과녁의 中央이요, 단위(段位)의 중앙이다. 홍심은 단(段)의 붉은 꽃. 아름답기도 하다.'해서 홍심(紅心)이라 부르는 명궁(名弓)의 자리. 그는 단 한번의 시도로 그 자리에 올랐다. 그가 가진 궁도(弓道)에의 열정(熱情)이 비로소 붉은 꽃을 맺은 것이다.
처음 활을 잡던 떨리던 손이 지금은 궁도인의 희망인 홍심(紅心)을 가슴속에 단단히 불러다 앉힌 명궁(名弓)이 된 그는 지금 말한다.
'궁도에서 예(禮)를 찾았고, 명궁(名弓)의 자리에서 인의덕행(仁義德行)을 비로소 실천할 수 있었다.'

진정한 궁도인이 되고파
진주에서 개최되는 궁도대회에서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그는 늘 대회장 한 켠에서 항상 궁도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열심히 움직인다. 명궁의 자리에 오른 뒤 한 때 주춤했던 그지만, 지금은 다시 활을 잡고 다시 궁도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명궁의 자리에 오르기 까지 비교적 순탄한 길이었지만, 그가 남은 궁도인생에서 꼭 이루어야 하는 한가지 목표가 있다. 전국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각종 친선대회나 전국대회 입상은 수없이 했지만 영호남 제주 남녀궁도대회 2등을 비롯해 제5회 경남궁도대회 2등, 제23회 전국남여궁도대회 2등, 제23회 전남체전 전국대회 등에서 2등에 그치고 만 것이다.
활 쏘는 재미에 그치기 보다는 뚜렷한 목표점을 세우고, 정진해 나가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그는 각중죽시(角弓竹矢)를 다시 꺼내 놓았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전국체전 경남대표선수(1994·1998)와 여섯 차례에 걸친 도민체전 진주시대표 경력은 그에게 있어 큰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둥지인 고향의 명예를 걸고 나선 전장(戰場)에서 그는 마음껏 기량을 뽐낼 수 있었다. 또한 그 속에서 자신만을 위한 노력이 아닌 또다른 그 무언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활을 쏘는 무사(武士)에서 진주시의 궁도발전을 위해 일하는 기회를 가졌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진주시궁도협회 전무이사를 맡아 진주궁도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었고, 명궁(名弓)이 된 이듬해인 1995년에는 경남궁도협회 이사직과 심판위원직을 맡기도 했다. 물론 1급 심판자격증을 획득해 각종 대회에서 사우들의 도우미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까지 살아 오면서 남은 것이 무엇인가 하고 뒤돌아 볼때 오직 영롱하게 떠 오르는 것은 궁도(弓道)를 배우고 다니면서 활을 당겨 허공에 살(矢)를 날려 관중(貫中)시키는 쾌감이요, 관중(貫中)을 위해 활을 당기고 1중례, 2중례....... 마침내 몰기(沒技)를 이루어 접장이 되는 무한한 자신과의 싸움만이 있었다.'
구준효 명궁의 남은 소망은 '진정한 궁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人生)에 있어 너무도 크게 자리한 각궁(角弓)과 죽시(竹矢)와 함께 하며, 마지막 남은 시간까지 과녘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