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덕정(覽德亭) 김정현(金正炫) 명궁(名弓)

'어진 일을 하는 자는 활을 쏘는 사람과 같다. 활을 쏘는 자는 먼저 몸을 바르게 한 연후에 활을 쏘며, 화살이 과녘에 적중하지 않더라도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다만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반성하기 때문이다.(仁者如射射者正己而不中不怨勝者反求諸己而巳矣-孟子 公孫丑章)'
진주 최초의 명궁(名弓)인 김정현(金正炫 57)씨는 항상 '선례후궁(先禮後弓)'을 강조한다. 먼저 예(禮)를 갖추고 난 뒤 활을 쏘아야 진정한 궁도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선례후궁(先禮後弓)을 해야만 몸과 마음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고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활을 쏠 때 비로소 과녘에 적중되므로 정신일도(精神一到)가 경기의 요체요, 궁도의 주된 생명이라는 뜻이다.
궁도인(弓道人)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김정현 명궁의 궁도예찬론(弓道禮讚論) 또한 그 근본을 예(禮)에 두면서 자신을 수양하는데 최고 목표점을 두고 있다.
궁도의 특징이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면서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스포츠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가 궁도에 입문한 이유도 분명해 진다.
특히 궁도는 항상 올바른 자세와 균형을 요구하기 때문에 척추를 신장하고 가슴을 튼튼히 하며 언제나 바른 자세를 갖는 태도와 습관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그가 궁도에 입문한 것은 1982년. 불혹(不惑)을 앞둔 38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궁도와 인연(因緣)을 맺게 된 것은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매일 같이 폭음과 피로에 심신이 지쳐갔다.
궁도(弓道)를 하면 무리하지 않으면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에 선뜻 활을 잡았다. 그 후 일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집궁(執弓)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취미생활에서 벗어나 '궁도계의 1인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같은 운동이라도 궁도의 일인자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처음 목표를 '전국대회 우승'으로 세웠다. 그리고는 매일 피나는 연습이 시작되었다.
'활을 잘 쏘려면 만 손은 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는 단순히 살(矢)을 날리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연구했다. '1손이 5矢'이므로 만 손을 쏜다면 5만시(矢)를 쏜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사법(射法)을 고안해 낸 것이다.
처음 대회에 출전한 곳은 대구 관덕정에서 개최된 88고속도로준공 기념 전국궁술대회였다. 그는 그 곳에서 '15矢장7中'으로 장려상을 받았다. 궁도에 입문한 이후 처음으로 받은 상이었다. 이후 그는 지방 친선대회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열린 각종 대회에 참가했다. 물론 수 십차례의 우승은 한 것은 물론이다.
아직도 당초 목표였던 전국대회 우승을 해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지금의 그에게 남겨진 것은 다름아닌 궁도(弓道)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었다.
"선예후궁(先禮後弓)을 강조하는 이유는 딴데 있지 않습니다. 시수(矢數)가 높던 낮던 간에 그 사람을 무시하면 안된다면 뜻입니다. 활을 쏘는 사람은 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진주 최초의 명궁
첫 몰기(沒技)를 한 것은 궁도 입문 후 2개월만이었다. 몰기(沒技)란 것이 개인의 기량에 따라 7년만에 하기도 하지만 그에겐 그리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았다. 만 손의 시(矢)를 날린 덕택인지 엄지 손가락엔 굳은 살이 박혀도 궁도에 대한 그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궁도에 입문한지 4년째 되던 해인 1986년, 그가 서울 황학정 사대에 섰다. 45시(矢)를 날려 25중(中)을 해야 주어지는 초단승단 대회. 한 개의 살(矢)을 남겨둔 그의 성적은 24중(中). 마지막 한 개의 살을 날려 보냈다. '관중(貫中'. '3전4기'의 도전 끝에 마침내 초단(1단)을 따냈다.
승단에 목적을 두고 열심히 훈련한 성과가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1987년 서울 석호정에서 2단을 딴 뒤 그의 기량은 날로 신장되었다. 3단과 4단을 연이어 따낸 그는 1989년 개인 최고 기록인 '45矢 43中'을 기록하기도 했다.
양궁(洋弓)이 조준사법인데 비해 국궁(國弓)은 관능사법이어서 이러한 기록은 개인 최고의 영예이기도 했다.
5단으로 승단해야만 주어지는 명궁(名弓)의 칭호. 집궁(執弓) 이후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비록 명궁(名弓)의 자리는 아니었지만 '일인자(一人者)'가 되고자 했던 그의 목표점은 또다른 이름의 '명궁(名弓)'이었다. '진주 최초의 명궁'. 궁도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도달하고 싶은 목표점이었다.
승단대회가 치러진 1989년 마산 용마정. '45矢 31中'을 해야만 주어지는 5단, 그리고 명궁(名弓) 칭호. 드디어 집궁(執弓) 7년만에 드디어 명궁(名弓)의 자리에 올랐다. 진주 최초의 명궁(名弓)이었다. 연이어 6단(段)에도 올랐다. '경남 최초'라는 명예가 다시 한 번 그에게 주어졌다.
'폭음과 피로에 지친 몸을 바로 잡기 위해 시작한 궁도가 그에게 진주 최초의 명궁이자, 경남 최초의 6단이라는 명예를 안겨준 순간'이었다.

라이벌을 가져라
전주 천양정에서 개최된 전국 궁술대회장. '15中겨루기'에서 경기도 안산의 김재홍 사우(射友)와 나란히 13中으로 2등을 차지했다. 이어서 비교전이 시작됐다. 다시 한 손(5矢)를 쏘았다. 2번살까지 모두 과녘에 명중시켰는데 당시 김재홍사우의 3번살이 과녘을 빗나갔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결과는 김재홍사우가 4中에 그친 반면 그는 5矢5中으로 몰기(沒技)를 했다.
김재홍 사우가 먼저 다가와 축하인사를 건넸다. 연배가 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손을 내민 것이었다. 뒤늦게 손을 잡으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그는 진정한 궁도인이구나'. 비록 우승을 다툰 경기는 아니었지만 궁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였다.
'힘으로 조절하고 마음으로 쏴라'는 궁도의 격언이 있다. 그에게 있어 이 격언은 사대(射臺)에 올라 거궁(擧弓)하기까지 그의 온 몸을 휘감는다. '선관지형(先觀地形) 후관풍세(後觀風勢) 정심정기(精心精氣)'한 연후에 시(矢)를 놓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궁도관(弓道觀)이다.
 그리고 좋은 시수(矢數)를 내기 위해서는 전국대회 참여를 많이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대회 참가시 '꼭 1등을 하겠다'는 욕심보다는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 역시 강원도, 경기도, 서울, 광주 등지에서 개최된 대회 참가를 위해 활과 전통을 손에 챙겨 들고 버스를 타고 다녔다. 2박3일은 기본이고 길게는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 대회도 많이 다녔다. 미리 경기장을 찾아 습사(習射)도 하고 경기장을 꼼꼼히 살핀 후 경기에 임해야 좋은 시수(矢數)가 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가운데 그는 자신을 되돌아 볼수 있는 계기를 끊임없이 만들었다. 바로 '라이벌'이었다. 라이벌은 자신의 위치와 실력, 그리고 자신을 되살필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지역대회에서 항상 1,2위를 다투는 자신만의 라이벌.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고 더욱 노력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작고한 남강정(南江亭)의 김또인규사우와 람덕정(覽德亭)의 홍현태사우는 그의 라이벌이었다. 지역대회에서 항상 우승을 다투는 사이였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목표점이 된 것이다. 김또인규씨와 홍현태씨를 따라 잡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 것도 그들을 라이벌로 인식하고 나서부터이다.

평범한 궁도인으로 남고파
'활병'이라는 말이 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경험하는 슬럼프를 이름인데, 전해오는 말로는 '문디병은 낫기 쉬워도 활병은 치유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 역시 한동안 '활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정신적·육체적 요인이 많이 작용하지만, 이 역시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밖에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활을 놓은 사람도 생겨나지만, '예(禮)'와 '마음(心)'으로 쏘는 궁도인이 있는 한 이 병도 언젠가는 치유할 수 있을 거라 그는 믿는다.
궁도에 입문한 다음 해인 1983년부터 진주대표로 도민체전 선수로 13년동안 활약한 그가 지금은 평범한 궁도인의 한사람이 되고자 한다. '화살이 안맞으면 물러나야 한다'는 그는 정(亭)의 사범(師範)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사범의 지위가 곧 정(亭)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는 '이제는 양(良)보다는 질(質)을 높이는데 전 사우(射友)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주 궁도 활성화'에 일조할 수 있는 궁도인이 배출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는 인원을 충원하기 보다는 실력을 갖춘 후학을 양성해 진주궁도를 빛낼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프로팀이 생겨나 궁도대회가 '돈 따먹기 대회'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는 판단과 함께 프로대회와 아마츄어 대회의 분리개최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궁도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취미생활로 활을 잡는 궁도인들이 전국대회를 나가면 필패(必敗)하고 맙니다. 대회를 겨냥해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궁도인과 취미생활로 활을 잡는 궁도인의 대결인데 불을 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평범한 한 사람의 궁도인으로 남고 싶다는 그가 이처럼 궁도의 현주소를 진단하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예(禮)'를 중히 여겼던 궁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孔子)가 유학(儒學)의 최고 이념인 인(仁)을 활쏘는 것과 비유해 '군자(君子)는 반드시 활을 쏘야 한다'는 의미를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는게 그 이유이다.
'사정(射亭)에 올라가 활을 쏘면서 선인(仙人)들이 남긴 여러 가지 교훈과 웃어른과 동료들을 대할때의 예법을 접하고 익히며, 이를 실천하는 궁도인'이 될 때 진정한 진주궁도의 발전이 가능하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그리고 평범한 궁도인이 되고 싶은 그의 마지막 소원은 '활을 일으키고, 힘으로 당겨 마음으로 쏘는 좋은 선수를 많이 배출하고 싶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