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곡면(水谷面)의 운치(韻致)에 대해서는 새삼 말할 것이 없다. 전통 기와집과 흙돌담에서 풍겨 나오는 우리네 고유의 삶의 향기와 지혜(智慧). 높다란 솟을 대문과 마당 안에 핀 꽃들은 늦가을의 향취를 더욱 만끽하게 해 준다. 수곡(水谷), '마을 휘감아 돌아 나오는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이 차갑다'는 뜻도 절묘하거니와 그 물(水)을 눈앞에 대하는 것도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수곡진주칠십리(水谷晋西七十里)'라 해서 진주에서 서쪽으로 칠십리 떨어져 '올라가는 데만 있지 내려 가는데는 없다'할 정도로 오지이지만, 잠시 숨을 돌리면 곧장 우리네 평균치의 농촌과 농촌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곳곳에는 밑동을 드러낸 무가 실하게 자라고 있고, 그 옆 마을 진입로에는 아낙네들이 부대에 벼를 쓸어 담고 있다. 이렇게 해서 긴긴 겨울 밤을 지낼 양식을 마련한다. 거칠게 골목골목을 휘돌아 나가는 바람결에서 한기가 느껴지는 가을 길목의 수곡행은 그래서 싱그럽다.
수곡(水谷)을 찾아 가는 길의 참 맛은 역사의 현장과 벗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진주농민항쟁운동이 불같이 일어났고, 백의종군한 이충무공이 군사를 훈련시켰다는 '陳배미 遺址'가 있어 수곡의 역사를 예감하게 한다. 대각서원(大覺書院), 덕곡서당(德谷書堂), 남암제(南岩劑), 사양제(士陽劑), 춘곡정(春谷亭) 등 많은 정자와 주자(朱子)의 어류(語類)를 판각해 보존하고 있는 광명각(光明閣)도 전통(傳統)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시원하게 뚫린 새 길을 따라 내달리다 보면 대천리(大泉리)가 눈에 들어 온다. 맑고 차가운 샘이 있어 '한새미'라고도 불렸다는 대천리. 봇짐을 내려 놓고 묵은 해를 보내는 희망의 언덕처럼 대천리에 들어서니 쌍학산(雙鶴山) 언덕배기에 우뚝 선 사정(射亭)이 하나 있으니, 바로 덕수정(德水亭)이다.
덕수정에 오르면, 나즈막한 산 허리를 돌아 나가는 내(川)가 정겨운 너른 들판이 시야에 들어 온다. 주변의 수려한 산세(山勢)때문인지 한겨울에도 춥지 않을 것 같은 예감, 한 해를 보내는 느낌이 서럽지 않은 이유도 알고 보면 덕수정의 연혁(沿革) 때문이다.
수곡면은 이충무공의 충절의 혼(魂)이 서려 있는 곳이기에 활터가 생겨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수곡면 원계리(元溪里) 앞들에는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이 백의종군 하던 중 모여든 군사들을 훈련시켰던 '陳배미 遺址'가 있다. 지난 1975년 건립된 이 유적비는 문화공보부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고, 지금도 강궁(强弓)을 당기며 힘든 훈련을 이겨 내는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덕수정(德水亭)이 창정(創亭)된 것은 1978년 4월1일이다. 처음으로 궁도(弓道)를 보급한 유원열(柳元烈)씨와 유해옥(柳海沃)씨 등 15명이 뜻을 모아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고 궁도장 설립을 결의했다.
창립총회가 개최된 것은 나흘 후인 4월5일. 발기인들은 창립총회를 열어 초대(初代) 사두(射頭)에 유해옥씨를 선임하고, 수곡면을 가로지르는 덕천강(德川江)의 '덕(德)'과 수곡(水谷)의 '수(水)'자를 따 본정(本亭)의 명칭을 '덕수정(德水亭)'이라 명했다. 초대 임원진을 보면 사두(射頭) 유해옥(柳海沃), 부사두(副射頭) 하재신(河載臣), 사범(師範) 하영위(河永胃), 총무(總務)는 유영성(柳永聲)씨였다.
창정(創亭) 이후, 덕수정이 풀어야 할 과제는 사정(射亭)건립과 사우(射友)영입이었다. 변변한 사정이 없었던 당시에는 지금의 어린이집 뒷편 논바닥에 과녁(貫革)을 세우고 살을 날렸다. 때로는 야산에다 과녘을 옮기기도 했고, 산비탈, 논 강가 등지에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시위를 당기는 '빈 들판위를 찌르는 바람'같이 한동안 그렇게 떠돌며 활에 대한 열정을 쏟았다.
키작은 풀의 희망이 숨쉬는 봄날을 지나 여름의 문턱에 다다른 1981년 8월15일. 발기인인 유해옥씨가 1,300여평의 대지를 희사하고 재경수곡향우회 이영운(李瓔雲)씨의 특지(特志)와 전 사우(射友)들이 힘을 모아 만든 527만6,000원으로 마침내 사정(射亭)을 건립했다. 궁도장 설립을 결의한지 4년4개월만의 일이었다.
등잔풍화(燈盞風火)에 놓여 있는 국운(國運)을 일으키기 위해 진배미에서 쉼없이 화살(矢)을 날렸던 군사들의 숨결과 한데 호흡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덕수정(德水亭)이었던 것이다.
정사(亭射)건립후, 나날이 회원들이 증가했다. 이와함께 궁도인(弓道人)의 정신과 궁술을 바로 익혀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람덕정(覽德亭) 사두(射頭)를 역임한 오재삼(吳在三)씨를 초청해 '궁도9계훈(弓道九計訓)'에 입각한 진정한 의미의 궁도(弓道)가 시작됐다.
사우들의 힘을 모아 건립한 정사(亭射)은 1981년 12월15일 대한궁도협회에 '덕수정(德水亭)으로 등록됐고, 덕수정 준공제막식이 개최된 1984년 4월5일, 인근지역의 몇 개 사정을 초청해 '기념궁도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궁도장 건립은 늦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회원들이 증가하면서 덕수정의 위상도 높아져 갔다. 진양군 3개정(亭) 친선궁도대회를 만들어 봄 가을 윤번제 대회를 개최하면서 연륜을 쌓아 올리고, 사우들의 사기도 날로 높아져만 갔다.
진주지역 친선 궁도대회가 개최되면 대회를 마련한 주최측에서 사우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미풍양속이 생겨났다.  대회를 개최하는 정(亭)에서 점심을 대접하는 이같은 미풍양속의 근원지도 덕수정이다. 수곡(水谷)의 넉넉한 인심을 확인 할 수 있음은 물론 궁도(弓道)에 대한 열정(熱情)을 찾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남다른 열정으로 정(亭)의 발전을 모색하던 사우들은 서부경남 7개시군(진주시·진양군·사천군·삼천포시·고성군·하동군·남해군) 9개정(亭) 친선궁도대회 유치를 신청했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고 오지라는 이유로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무려 3개월동안 각 정사(亭射)를 돌며 이해를 구했다. 그리고는 가입승인을 받아 냈는데, 단 조건이 따랐다. 덕수정이 '진주까지 왕복차편을 제공해 주면 승인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수곡면(水谷面)이 너무 오지여서 사우들이 대회 참가가 어렵다는 이유에서 였다. 덕수정 사우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드디어 7개 시군 9개정(亭)에서 모여든 많은 사우들이 기량을 겨루는 친선대회가 1982년 8월29일 덕수정에서 개최됐다. 이 대회에서 덕수정 사우들은 몸소 대회에 참가한 사우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무료로 제공했다. 전 사우의 가족들이 대회장에 나와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고 대회를 도왔다. 그 때 이후로 진주지역에서는 하나의 풍습이 생겼다. 본정에서 대회를 개최할 경우 참가자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회원증가로 인해 정사도 협소하고 시설도 미비했지만, 타정(他亭)의 좋은 시설을 모방하여 몇 차례에 걸쳐 정사를 보수하고 외부사우들을 초청해 치른 이 대회의 실질적인 우승은 덕수정 사우와 그 가족들이었다.
궁도(弓道)는 언젠가부터 지역유지나 한량(閑良)들의 전유물로 인식됐으나, 덕수정 창정 이후 이러한 잘못된 인식도 많이 고쳐졌다. 정(亭)을 전체 면민들에게 개방하고, 자유로운 입회를 허용해 회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덕수정은 회원의 연령을 55세이하로 정하는 처방을 내렸고 면단위의 사정(射亭) 가운데 회원이 60여명에 이르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 냈다.
덕수정 2대 임원진이 1991년에 선임됐다. 2대 사두(射頭)에 하재신(河載臣), 부사두(副射頭) 정선우(鄭善宇), 사범(師範) 성환웅(成煥雄), 총무(總務)는 유영성(柳永聲)씨였다.
동 년 3월5일에는 구 진양군의 보조금 지원으로 과녘부지를 확장하고 옹벽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덕수정은 새단장을 했다. 정사(亭射)건립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덕수정 사우들의 정사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초대 사두였던 유해옥씨가 타게(他界)했을 때 전 사우들이 나서 정사(亭射)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5일동안 그의 덕수정에 대한 사랑을 애도했고, '덕수정장'을 치러 그를 애도했다. 1991년 8월10일에는 유해옥씨의 공적비(功績碑)를 세우기도 했다.
1993년 덕수정 3대 임원진이 선임됐다. 3대 사두에는 이종후(李鍾厚), 부사두(副射頭) 성환윤(成煥潤), 사범(師範) 성환웅(成煥雄), 총무(總務)는 권화정(權和正)씨였고, 동년 11월10일에는 구 진양군의 지원으로 슬라브로 정사(亭射)를 증축했다.
1995년 덕수정 4대 임원진이 선임됐다. 4대사두에는 성환윤(成煥潤), 부사두(副射頭) 이덕태(李德泰), 사범(師範) 성환웅(成煥雄), 총무(總務)는 이현호(李鉉浩)씨였다. 이듬해인 1996년 8월15일에는 회갑을 맞은 사우의 성금 쾌척으로 사대바닥 20여평을 대리석으로 시공했고, 1997년 2월16일에는 본정부지 옹벽공사를 시의 지원금으로 완공해 덕수정(德水亭)은 어느 사정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좋은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곧이어 1997년 3월28일에는 경남 남녀 입승단대회 및 선수권 선발대회가 이틀간 덕수정에서 개최됐고, 1999년 8월15일에는 창립 20주년 기념비를 건립했다.
2000년 덕수정 5대 임원진이 선임됐다. 5대사두에는 성경용(成慶龍), 부사두(副射頭) 이덕태(李德泰), 사범(師範) 성환웅(成煥雄), 총무(總務)는 하구식(河九植)씨였다.
이듬해인 2001년 4월13일에는 신사년 회갑을 맞이한 3명의 사우와 몰기(沒技)한 성금으로 본정 2층에 20여평의 별관을 신축했다. 각종 위락시설을 마련한 정(亭)은 이 별관을 면내에 전면 개방하기로 하고 각종 모임이나 회의개최 등 다용도로 사용해 면민들과 함께 하는 정사(亭射)로 운영하고 있다.
약관(弱冠)의 나이를 훌쩍 넘어선 덕수정(德水亭)에는 9명의 유단자(有段者)들이 있다. 4단(四段)은 성경용(成慶龍)사우, 3단(三段)은 하만근(河萬根)·유수웅(柳秀雄)사우, 2단(二段)은 성환웅(成煥雄)·민도태(閔道兌)·성한성(成漢星)·하구식(河九植)·성환조(成煥租)·이옥희(李玉姬)사우 등이다.
맑은 날에도 눈이 쌓이는 길(道)의 운명처럼 질곡의 시간들을 사우들과 헤쳐 나와 새로운 궁도문화 창달의 기수가 된 덕수정(德水亭). 그곳에는 사람의 향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