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의 푸른 물결을 굽어 보며 활을 챙겨 들면 강건너 과녘엔 어스럼 저녁노을이 붉게 물드는 1975년 초가을. 뜻있는 여덟명의 궁사가 촉석루와 남강변에서 습사를 하던 중 1975년 12월 15일 진주공설운동장 서편에 정사(亭　)를 건립했으니, 이것이 남강정(南江亭)의 전신인 봉현정(鳳峴亭)이다.
이들 여덟명의 궁사는 다년간 궁도에 몸담아온 김수성(金洙成)과 뜻을 같이 한 동호인 강경수(姜敬洙)·하해철(河海喆)·이영조(李英潮)·옥재윤(玉在潤)·구인회(具仁會)·오상옥(吳相玉)·김종태(金鍾泰)가 그들이다.
이듬해인 1976년 3월 15일 대한궁도협회에 정식으로 등록한 봉현정 궁사들은 4월 10일 진해에서 열린 진해군항제 전국 남녀궁도대회에 첫 출전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비록 창립회원의 수는 적었으나, 궁도발전에 열의를 가진 만큼 회원들의 노력은 각별했다.
그러던 중 1976년 7월10일 진주공설운동장 확장이전을 통보받은 지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공설운동장 확장공사가 시작되었다. 이에따라 정사이전이 불가피해졌는데 봉현정 궁사들은 옥봉동 산 13-1번지 채석장으로 사용하던 장소로 정사를 이전했다. 남강정(南江亭)이 창립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남강정 시대'를 여는 길은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옥봉동 산13번지 채석장 진주2지구 방축 매립장소 장대지구 동흥토건 박태현씨에게 장소를 빌리고 과녘 3개를 세워 습사를 했다. 당시 김수성이 주축이 되어 10여명의 사우가 운동을 했는데, 새로운 회원들이 계속 입회를 하기 시작했다.
남강정은 창립이후에도 변변한 정사가 없었던지라 현 궁도장 옆 털보 박씨 영감의 방을 얻었다. 그곳에 활과 화살통, 개인의자 20여개를 보관을 해놓고 운동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명광유리 정영중의 도드레 기증을 시작으로 전사우들의 협찬으로 구인회가 발열대를 제작해 어려운 가운데서도 습사를 계속했다.
사우들의 뜻을 모아 남강정이 차츰 자리를 잡아 가던 중 11명의 사우들이 람덕정으로 이적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남강정 사범이 너무 무리하게 교육을 시키는데 반발한 몇몇 사우들이 남강정을 떠나 버린 것이었다. 결국 남강정은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아 와야만 하는 가혹한 운명과 마주하게 됐다.
그러나 남은 사우들이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남강정을 반석에 올려 놓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고, 그것은 정사(亭謝)를 지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당시 회원은 불과 10여명. 그때 강경수회장이 앞장을 섰다. 박태현씨를 찾아가 벽돌을 몇장 얻어다 활보관소를 짓기로 했다.
그런데 활보관소를 짓기로 한 곳은 그린벨트지역이었다. 행정당국의 건축허가가 나지 않는 곳일뿐 아니라 벽돌한장 마음대로 쌓지 못하는 곳이었다. 고심한 끝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의 이목을 끄는 주간을 피해 야간에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1978년 가을, 김수성, 옥재윤, 강경수, 오상옥, 박종호, 최상수 등의 협찬으로 현 관리사를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우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마침내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어느날 회원 한사람이 쏜 화살이 과녘 언덕 아래 화장실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마침 그곳에서 용변을 보고 있던 동네 아주머니가 그곳에 떨어져 있는 화살을 들고 남강정으로 찾아 왔다. '고발을 한다' 는 둥 난리가 난 것은 당연했다.
또 한번은 웃지못할 일도 생겼다. 어느 봄날 최상수가 겪은 일이다. 새벽운동을 나갔는데, 때마침 과녘 주변에는 강아지 7∼8마리가 떼지어 놀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던 터라 강아지가 있는줄도 모르고 습사를 했는데, 그만 강아지의 뒷다리에 화살이 꽃힌 것이다. 강아지는 캥캥거리며 죽는 시늉을 했고, 놀란 최상수는 한걸음에 달려가 다리에 꽃힌 화살을 간신히 빼주었다.
이처럼 기막힌 일들이 계속 일어나자 정사를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해졌다. 그래서 현 남강정의 위치로 옮겨 보자는 의견이 나왔고, 거리를 재어봤지만 사정거리가 좀 짧았다. '정사를 조금 후퇴시켜 지으면 되겠다'는 의견에 따라 임시총회를 소집했다.
임시총회에서 지금의 과녘이 서 있는 자두밭을 매입하기로 결정하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천성조, 강봉석 등 5명이 추진위원이 되어 자두밭 매입에 나섰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다. 매입지역내에 주인의 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밭을 매입해 궁도장으로 쓰겠다"고 말한다면 주인이 땅을 팔기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사천에 거주하던 사람을 가공인물로 내세워 매매계약서를 체결하고, 김수성씨가 잔금을 치른 것으로 해서 겨우 땅을 매입하는데 성공했다.
드디어 1981년 정호진 회장의 찬조와 회원들의 모금으로 정사에 착공했다. 그런데 정사의 골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무렵 또 한번의 사건이 터졌다.
당시 옥봉남동 동장이 무허가로 정사를 지은 사실을 알고 만 것이다. 당연히 시에서 철거반들이 들이닥쳤다. 남강정 사우들은 몸싸움까지 해가며 정사를 지켜 냈다. 이렇게 해서 방과 사무실을 갖춘 어엿한 정사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정사로 진입하는 길이 너무 좁고 험했다. 더군다나 비만오면 산비탈이 무너져 내려 차가 다닐수 없는 지경이었다. 비탈에 옹벽을 치고서야 겨우 차가 지나 다닐만한 길이 생겼다.
이같은 어려움을 겪고 난 뒤 마침내 남강정 현판을 달았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당시 남강정 사우들의 적극적인 협찬과 도움으로 남강정이 어엿한 정사를 갖게 된 것이다.
겨우 정사는 마련했지만 정작 문제는 과녘터였다. 과녘터에서 보면 소나무 숲에 가려져 정사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소나무를 잘라내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었다. 또한번 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시장을 찾아가 부탁을 했다. 궁도장을 짓기 위해 밭을 샀는데 소나무 때문에 정사가 제 모습을 갖출 수가 없다는 진정을 했다.
시장은 산림과 관계자를 불러 소나무가지를 칠 수 있도록 당부를 했다. 당시 산주인은 일본인이었고, 관리는 향교에서 맡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다음날 인부 몇사람과 전 회원들이 톱과 낫으로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소나무 가지를 치는 것 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소나무를 잘라 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소나무를 자른다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어서 대부분의 회원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집행부 몇사람이 남아서 소나무를 잘라내고 작업을 마쳤다.
그런데 다음날 곧바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시와 경찰서에 고발이 들어가 언론에 보도되는 등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고 만것이었다. 그러나 남강정 사우들의 마음은 담담했다. "이 궁도장은 회원들의 협찬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진주시민이면 누구나 함께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시켰다. 결국 이 사건은 벌금을 내는 것으로 이 일이 마무리되었다.
남강정의 정사와 과녘터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다. 그래선지 사우들이 활을 쏘고 나면 화살을 회수하는 일이 큰 일이었다. 따라서 도드레를 달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다. 인부를 사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애무덤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결국 장소를 돌밭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한번 아찔한 사건이 일어났다. 정사공사때 건너 편에 있는 박씨가 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사대에서 활을 쏘면 자기집으로 화살이 날아오는 것 같아 못살겠다'는 것이었다. 옥신각신 하고 있는데 마침내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박씨의 여섯 살난 아들이 운시대에 매달리는 순간 도르레가 경사진 정사쪽으로 30m지점까지 움직인 것이다. 일촉즉발의 시간이었으나 도드레를 다시 움직여 무사히 박씨의 아들을 구해냈다.
정사신축후 개궁대회인 영남대회를 개최하면서 김수성이 소장하고 있던 포구와 서예작품을 포구대금만 지불하고 인수하여 상품으로 지급하는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또 박태현과 김석곤을 대회장과 부대회장으로 추대하여 경비를 조달하는 등 열악한 여건하에서도 남강정 사우들의 정사발전을 위한 노력은 쉼없이 계속되었다.
남강정은 이처럼 수없는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직도 정사의 위치나 출입하기가 불편하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남강정 사우들의 끈끈한 정과 정사에 대한 남다른 애착심으로 진주 제일의 정사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