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廉恥)

단언컨데, 염치(廉恥)는 없다. 물음 자체가 서글프기 짝이 없지만, 도대체 이 땅 어디에 있는가. 불현듯 묻고 싶다. 언필칭 국민을 대변한다는 저 정객들의 꼬락서니와 해괴한 거동에서 과연 찾을 수 있는가. 혹시 집단 이기주의에 파묻혀 제 밥그릇, 제 몫 찾기만 열심인 목에 핏대 세운 그들에게서? 부질없는 일이다.
대관절 염치란 무엇이던가. 청렴(淸廉)하고 수치(羞恥)를 아는 마음이다. 근데 이 땅에는 오로지 몰염치(沒廉恥)나 파렴치(破廉恥), 후안무치(厚顔無恥)들만이 설쳐댄다. 왜 이처럼 극렬한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는가. 그들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방치한 까닭이다. 한마디로 버려두었다는 뜻이다. 지금도 진행중이며, 온갖 것들이 설쳐 댄다. 오늘도 도도히 나부끼는 몰염치의 단색 깃발서부터 까닭없이 적어 본다. 사소한 일에 필요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갖다 대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로 쓴다. 보수가 아니면 적이 되고, 진보여야만 동지가 되는 마주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 같은 흑백논리. 그들은 그들이 필요한 질서만 요구할 뿐이다. 또 있다.
지역감정의 올가미, 색깔론의 침소봉대, 왜곡, 오보, 적반하장, 끊임없는 기만, 권력 남용,  그리고 천박한 곡학아세와 시대정신에 눈 먼 타락한 지성. 안타깝지만 아무리 뒤집어봐도 그들에게서 염치는 찾기 어렵다.
새삼스럽게 맹자(孟子)가 설파했던 '천시(天時)'의 개념을 적어 본다. 돌이켜 보면 '천시'란, 민심(民心)과 어울리는 정치(政治)의 시간이 아니던가. 한마디로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적시성을 강조한 뜻이리라. 지겹게도 '정치(政治)의 시간학'을 떠벌리는 까닭은 자명하다.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할 때이기에 그렇다.
지난 날의 일들은 다 접어 두더라도, 오늘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보면 참담 그 자체다. 이 핑계 저핑계로 때맞춰 제때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 결과는 실로 무참했다. 철저한 불신과 가혹한 민심의 등돌림, 그리고 화살처럼 쏘아대는 '저질'의 자국만 업보처럼 남았을 뿐이다.
왜 이 땅의 정치 혹은 리더를 자처하는 그들은 왜 독단에 가까운 비수를 꺼내들고 박쥐같은 밀실거래 만으로 이 땅의 민심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가. 왜 하늘에 묻지 않고, 그들 스스로 하늘인 양 위장하고 있는가.
대담하게 결론짓자면, 아직 이 땅에서는 대의염치(大義廉恥)가 되살아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위험한 진단일수도, 뼈아픈 오판일수도 있다. 그러나 비판보다는 공감의 목소리가 높으리라 믿고 싶다.
사실 이토록 오늘날의 정치(政治)를 몰아치고, 세상의 몰염치를 재단하는 자리에 끼어 들만한 자격은 없다. 어쩌면 내 자신이 더욱 아픈 화살을 맞아야 할 정치의 길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깨어난 인간이라야 어둠의 역사를 빛으로 구원한다'는 함석헌 옹의 말을 빌리고 싶다. 지금 이 순간, 하늘을 여는 정치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그 누군가가 공감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깨어나야할 때다.
/김권수(경상남도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