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 새소식 > 불구부정(不垢不淨)

불구부정(不垢不淨)이라 했다. 세상에는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다는 뜻이다. 단지 이 모든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맑거나 탁한데서 기인한다. 맑은 눈으로만 바라보는 세상, 어쩌면 세상 모든 이가 바라는 모습일 지도 모른다.
한 바가지 맑은 물로 독거노인들의 삶의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 주는 사랑의 손길이 있다.
깨끗하고 더러움이 없는 터에 씻어 낼 그 무엇도 없다. 하지만 목욕봉사를 통해 묵묵히 세
상의 묵은 때를 씻어 내는 자원봉사자들.
이동목욕봉사자 정영도·신석부·강창원씨가 그들이다.
목욕봉사를 받는 수혜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 늘 방에 누워 지내야 하는 노인들이다. 대소변을 받아 내 줄 가족이나 친척들이 가까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늘 방에 누워 기저귀에 의존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선지 이들에게 이동목욕봉사자들은 그야말로 '효자'들이다.
운동이 부족한 노인들에게는 배변 장애가 많아 목욕을 시키다 보면 대변을 손으로 직접 씻
어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항상 방에 누워 있다 보니 등이나 다리에 욕창이 생겨
목욕시키기도 쉽지 않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 봉사자들은 푹푹 찌는 더운 날씨에 굵은 땀을 연신 흘리면서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는다. 오히려 시원한 물 한바가지를 퍼서 끼얹으며 말한다.
"할배, 시원하지예?"
가좌사회복지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동목욕봉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진주중앙로타리클럽 국제 R.I 3590지구가 2천여만원을 들여 이동목욕차량을 제공했고, 자원봉사자와 수혜자 모집 등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4월부터 시작했다.
봉사를 시작한지는 오래 되지 않았지만 현재 이동목욕봉사 혜택을 받고 있는 독거노인들은 지역에서 20여명에 달하고 있다. 이들은 혼자 살거나 대중목욕탕을 다니기가 어려운 형편에 놓인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선지 좀 더 많은 분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싶지만 제반 여건이 뒤따르지 않아 어려움도 적지 않다.
먼저 한 대 뿐인 이동목욕차량으로는 폭넓은 봉사활동을 펴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봉사받기를 원하는 분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목욕차량도 부족한 터에 자원봉사자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형편인 것이다.
그래서 수혜자를 선정할 때도 가족이 있거나 힘들지만 몸을 가눌 수 있는 분들보다는 봉사
자들의 손길이 아니면 한 달은 고사하고 6개월에 한 번 목욕가기가 어려운 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운행중인 이동목욕차량이 가정집에서 물을 끌어다 와서 사용해야 하는 번거러움이 있는데다, 도심에서는 차량을 주차시키는 데도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운행중인 차량의 경우에는 차량내부에 수도시설과 전기시설 등을 모두 갖추고 있어 봉사활동 하기가 쉽다. 질주하는 차량들과 상관없이 수혜자를 차량에 태우고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이동목욕봉사의 봉사활동 장소가 차량 안으로 한정되어 있다 보니, 자원봉사자를 확보하기가 어렵고 봉사환경도 썩 좋지 않다. 사실 여름철 이동목욕봉사는 차량내에 에어컨이 없어 문을 열어 놓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후덥지근한 공간에서 움직이다 보면 옷은 땀으로 흠뻑 젖고 때로는 땀으로 목욕을 하기도 한다. 그래선지 어떤 봉사자들은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도 한 번 해보고 나서는 다시 하려고 하질 않는다.
자원봉사자 정영도씨는 "봉사환경이 열악한 편이라 힘들기는 하지만 눅눅한 방안에 혼자 누워 우리를 기다리는 독거노인들을 생각하면 아무리 바빠도 봉사에 빠질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동목욕봉사를 하다 보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견뎌 낼만 하지만 때로는 마음 상하는 일
도 적지 않다.
엄연히 가족들이 있는대도 한 달에 한 번은 고사하고 몇 달 동안 내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아 인연을 끊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어떤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는 2달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방에 누워만 있기도 했다.
자원봉사자 강창원씨는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지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부모를 멀리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내몰라라 하는 사람이 어디있느냐"며 "때로는 그 사람을 찾아가 혼을 내 주고 싶을 정도다"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동목욕봉사자들이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한가지 있다. 방에 누워 있는 수혜자를 업거나 휠체어에 태우고 나와 차량에 태우는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목욕을 시키다 보면 등이나 발목 무릎 부근에서 발견되는 상처나 욕창으로 고통을받을 때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원봉사자도 부족한 형편에 봉사활동을 할 때마다 의사와 동행한다는 것은 꿈도꾸지 못할 일이다. 그냥 상처를 발견하고는 '약 좀 바르세요'라는 상투적인 말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그들에게는 큰 아픔이다.
자원봉사자 신석부씨는 "사실 이동목욕차량을 운전해 줄 봉사자가 부족해 직원들이 나서서 차량을 운전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좀 더 많은 봉사자들이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불이(不二)라 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랜만에 세상의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 낸 뒤 새 옷을 갈아 입는 노인의 해맑은 웃음과 땀
방울을 씻어 내며 즐거워 하는 봉사자들의 모습은 둘이 아니었다. 벌써 한 가족이 되어 있
었다.
"할배! 시원하지예? 편하게 한 잠 주무시이소"
<황경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