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로와 진주 남강
 
 진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제일 먼저 찾는 촉석루. 촉석루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남강을 바라보노라면 시비(詩碑) 1기가 눈에 띈다. 논개가 석류속 같은 입술로 죽음을 입 맞춘 남강변에 세워진 수주 변영로의 ‘논개’ 시비이다. 1991년 진주문화원이 건립한 것으로 진주가 충절의 고장임을 상징하고 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이 시의 지은이 수주(樹州) 변영로(下榮魯:1898~1961)는 서울에서 출생하여 중앙 학교를 중퇴하고, 1913년에 중앙기독교청년회관 영어반을 수료하였다. 1914년에 ‘청춘’지에 영시 ‘코스모스’를 발표했으며, 1918년에는 중앙 고보 영어 교사가 되었다. 3·1 운동 당시에는 YMCA의 구석진 방에서 ‘독립 선언서’를 영역하여 해외로 발송하였다. 1920년에 ‘폐허’의 동인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감상적인 낭만시를 쓰기도 했으나, 1922년 이후에는 ‘개벽’을 통해 계속 해학이 넘치는 수필과 발자크의 작품 등을 번역하여 발표하였다. 1924년에 발간된 첫 시집 ‘조선의 마음’에는 우리말의 순화에 기여하는 높은 시정신과 함께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과 저항 의식이 짙게 깔려 있는데, ‘논개’가 여기에 실려 있다.
변영로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여러 충신과 열녀들을 작품의 소재로 선택하여 섬세한 전통 정서와 기개 높은 민족 정신으로 형상화시킨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도 이와 같은 그의 시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의 하나로,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을 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殉國)한 의기(義妓) ‘논개’의 우국 충절(憂國忠節)을 노래하고 있다. 동시대 ‘백조’ 동인들이 암울한 시대 상황에 굴복하여 한숨과 눈물만을 토로한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시를 쓴 데 비해, 그는 민족적 패배감에 젖어 있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논개’의 우국 충절을 보여 줌으로써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 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저항적 색채로 말미암아 이 작품이 수록된 시집 ‘조선의 마음(1924)’은 발간 직후 일제로부터 판매 금지 및 압수령이 내려졌다.
수주가 논개를 짓기 위해서는 진주에 들러 남강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것이다. 수주와 진주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기자는 진주의 문화예술계 한 인사로 부터 수주의 부인이 진주여고 자수 선생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수주가 진주와 인연이 있다면 부인이 진주여고에서 자수를 가르치고 있을 때가 아닌가 싶다.
1924년 일제의 서슬퍼런 무단통치 아래서 논개의 충절을 노래할 만큼 올곧은 수주의 시정신은 지금껏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오고 있으며, 진주 남강가 논개시비를 통해 논개는 다시 부활하고 있다.

 
강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