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돛 높이 거니 아름다운 배 가볍네 

10.교방의 춤, 선유락

진주목사를 지낸 박원 정현석이 지은 ‘교방가요’에는 14종류의 정재무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한가지가 ‘선락(船樂)’이다.
교방가요에는 ‘선락’이라고 되어 있으나, 선유락(船遊樂)을 가리키는 것이다. 선유락 글자 그대로 배를 가지고 노는 춤으로 궁중에서 연행되어온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이다. 향악정재는 고려 이후 중국에서 들어온 중국의 궁중 무용인 당악정재(唐樂呈才)와 대칭되는 말로 한국 궁중 무용에 붙인 이름이다. 당악정재에 비하여 자연스럽고 형식이 간단하다.
궁중 무용을 ‘정재’라고 하는데 세자 및 신하가 임금에게, 임금이 대비에게 드리는 격식을 갖춘 잔치로서 음식과 술과 함께 예능인들의 재주를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선유락은 임금이나 대비를 위한 잔치때 올려졌던 궁중 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하는 기록들을 참고해 보면, 선유락은 순조 29년(1829) 진찬의궤(進饌儀軌)이후 고종 광무 5년(1901) 진연의궤(進宴儀軌)까지 궁중에 큰 잔치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공연된 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유락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졌을까. 그 단서가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에 나타난다.
연암 박지원이 1740년 그의 삼종형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의 수행원으로 청 고종의 70수를 축하하기 위해 중국에 들어가 성경(盛京) 북평(北平) 열하(熱河)등지를 두루 여행하고 돌아와서 ‘열하일기’를 지었다.
‘열하일기’중 연경으로부터 열하에 이르기까지 5일 동안의 여정을 기록해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이란 편명을 붙였는데, 열하로 떠날 때 이별의 한을 서술한 내용 등이 특히 애처러운 곳이 많이 눈에 띄는데, 선유락에 대한 기록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배타라기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 중 “예로부터 귀향살이 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지만 이들이 가장 괴롭게 여기는 것은 오로지 물가에서 이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땅이 좁은 곳이라 살아서 멀리 이별하는 일이 없으므로 그리 심한 괴로움을 겪는 일은 없으나, 다만 뱃길로 중국에 들어갈 때가 가장 괴로운 정경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대악부 중에 이른바 ‘배타라기곡(排打羅其曲)’이 있으니 우리 시골말로는 배가 떠난다는 것이다. 그 곡조가 몹시 구슬퍼서 애 끊는듯 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볼 때, 선유락은 1740년 이전 즉 영조 이전 시기부터 우리 나라에 전해졌으며, ‘배타라기곡’은 ‘배따라기’ 즉 ‘배떠나기’로서 이 노래는 이역만리 위험한 길을 떠나는 이의 전송 때에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다를 두고 배를 타고 떠나는 이의 전송의 이별을 애닯게 노래하며 춤 춘 것을 아름답게 형상화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연암은 이어 ‘배타라기곡(排打羅其曲)’의 연행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자리 위에 그림 배를 놓고 어린 기녀 한쌍을 뽑아서 죄인을 잡는 사령으로 분장하여 붉은 옷를 입히고 붉은 칠한 모자(朱笠), 패영에 호수와 흰 깃을 단 화살을 꽂고, 왼손에는 활시위를 잡고 오른손에는 채찍을 쥔다. 먼저 군례를 마치고 첫 곡조를 부르면 곧 뜰 가운데서 북과 나팔이 울리고 배 좌우의 여러 기녀들이 모두 채색 비단에 수놓은 치마를 입은 채 어부사를 제창한다. 음악이 반주되고 이어서 둘째 곡조, 셋째 곡조를 부르되 처음 격식과 같이 한 뒤에 또 어린 기녀를 죄인을 잡는 사령으로 꾸며 배 위에 서서 발선하는 포를 놓으라고 노래를 부른다. 이내 닻을 거두고 돛을 올리는데 여러 기녀들이 일제히 축복의 노래를 부른다. 닻 들자 배 떠난다/이제가면 언제 오리/만경창파에/가는 듯 돌아오소(錠擧兮船離 此時去兮何時來 萬頃蒼波去似廻). 이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눈물질 때이다.”
이 글은 연암이 ‘배타라기곡(排打羅其曲)’을 직접 보고 쓴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선유락은 1829년 ‘진찬의궤’속 그림과 1893년(고종 30)‘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 의하면 호령집사기(號令執事妓) 2명, 내무(內舞) 10명, 외무 32명으로 구성되며, 호화롭게 단장한 채선(彩船)을 중심으로 연행하였다.
정현석 목사의 교방가요에 선유락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진주 교방에서도 연행되었던 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방가요에는 연행 모습도 보이는데, 채선을 가운데 두고, 군복에 화살 칼 채찍을 찬 집사 2명과 융복에 칼 채찍을 찬 병방군관, 어린기생 등이 춤을 추는 모습이 화려하다.
선유락 연행 중 부르는 가사는 고려말부터 전해오던 ‘어부사’를 농암 이현보가 재창작한 것으로 9장을 3장씩 초·중·종장으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정현석 목사는 이때 선유락을 보고,

비단돛 높이 거니 아름다운 배 가볍네 (錦帆高掛採船輕)
닻 올리자 포성 나고 북 나팔 울리고 (擧정砲聲鼓角鳴)
이제가면 언제 돌아오나 (系知此去何時返)
황제께 조회하러 바닷길 오르는 것 같네 (洽是朝天駕海行)

라고 읊고 있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밝혔듯이, 선유락이 먼 이국 땅 중국 사신길에 오르는 사신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추었던 춤인 것을 정목사는 알고 있었다.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고 춤추었던 선유락이 궁중으로 전해져 아름답게 형상화 되어 연회 때 빠지지 않고 화려하게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선유락은 국립국악원 무용단에 의해 재현되어 1984년 대한민국 무용제에 공연한 바 있다.
19세기말 진주교방에서 추었던 그 선유락은 지금 다시 볼 수는 없지만, 교방가요에 그 모습이 전해오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