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방의 성악곡 ‘가곡’ 

정현석 목사의 ‘교방가요’에는 당시 진주 교방에서 추었던 춤들을 그림으로 표시해 놓아 굳이 글을 읽지 않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일례로‘검무’조를 보면 융복(戎服)을 입은 젊은 기녀 2명과, 황삼(黃杉)을 입은 어린기녀 2명이 검을 들고 춤을 추는 모습과 악사 6명이 징 장고 피리 해금 등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교방가요’에 실린 그림들은 당시 교방에서 행해졌던 악가무의 모습을 지금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와 함께 교방가요‘가절(歌節)’부분에 기녀 6명과 악사 5명이 연주하는 모습이 그림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바로 교방에서 가곡을 연주하는 모습이다.
가곡은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시조시를 노래하는 한국의 전통 성악곡으로‘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상류사회에서 애창된 시조 및 가사와 함께 정가(正歌)에 드는 성악곡으로서 판소리 ·민요 ·잡가와 같이 하류 사회에서 불려진 성악곡과 구별된다.
시조의 시를 5장 형식에 얹어서 부르는 가곡은 피리·젓대·가야금·거문고·해금의 관현 반주에 맞추어 불리며, 그 예술성은 시조와 가사에 비하여 아주 뛰어났다.
‘교방가요’에 기록된 가곡 연주 모습을 살펴보면, 노래 부르는 기녀 4명에, 거문고 연주하는 기녀 1명, 철사금 연주하는 기녀 1명 등 기녀가 6명이고, 악사는 세필률 연주자 2명, 대금 연주자 1명, 해금 연주자 1명, 장고 연주자 1명으로 총 5명의 악사가 연주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진주교방에서의 가곡 연주는 총 7명의 관현반주(管絃伴奏)에 맞추어 기녀 4명이 시조시를 노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래하는 기녀 4명을 가운데 두고 나머지 기녀와 악사들이 앞뒤로 둥글게 배치되어 있다.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교방가요에는 총 97조의 가곡이 실려 있다. 작품은 한역이 먼저 제시되고 그 다음 한역과 동일한 우리말 사설이 적혀있다.
어떤 내용일까.
정현석 목사가 당시 진주 농민운동 직후 허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풍속을 바로 잡고자 하는 뜻에서 ‘교방가요’를 편찬하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여기에 실린 가곡의 내용 역시 민심을 수습하고 풍속을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할 것이다.
“天皇氏 중국 천하 처음 열고/堯舜 임금이 기틀 세웠는데/어지러운 漢唐때 무너진 지 오래되니/聖君 모시고 다시 고쳐 되돌렸으면”
교방가요에 실린 가곡 중 1곡이다. 중국 요순임금의 덕을 칭송하고 우리도 요순시대처럼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는 노래이다.
이런 내용의 노래만 불렀다면 너무 교훈적이라서 아무래도 흥이 잘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좀 가벼운 내용이면서 흥이 날 수 있는 연정 등 남녀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가곡도 함께 연주했다.
“꾀꼬리는 북이 되고 버들은 실이 되어/삼년 세월동안 나의 근심만 짜네/누가 녹음방초 시절을 일러/봄바람 꽃피는 때보다 좋다고 하는가”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기녀들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한 곡조 뽑고 나면 흥이 절로 나왔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어떻게 불렀을까.
성호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보면 “우리 나라 가사에는 대엽조(大葉調)가 있다. 그러나 대개 장단의 구분이 없다. 그 가운데 또 만(慢)·중(中)·삭(數)의 세 가지 조(調)가 있는데 이것은 본래 심방곡(心方曲)이라 한다. 만은 극히 느려서 사람들이 싫어하여 없어진 지 오래고, 중은 조금 빠르나 역시 좋아하는 이가 적고, 지금 통용되고 있는 것은 삭대엽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가곡의 원형으로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이 있으나 만대엽은 극히 느려서 사람들이 싫어하여 없어진 지 오래이고, 중대엽은 조금 빠르나 역시 좋아하는 이가 적고, 당시 통용되고 있는 것은 삭대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곡은 ‘우조’와 ‘계면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조의 악곡으로는 ‘우조 초삭대엽’부터 ‘우조 소용’까지의 여러 곡과 ‘우롱’ ‘우락’ ‘언락’‘우편’ 등이 있고, 계면조 악곡으로는 ‘계면조 초삭대엽’ 부터 ‘계면조소용’까지의 여러 곡과 ‘언롱’ ‘평롱’‘계락’‘편삭대엽’‘언편’‘태평가’등이 있다. 또한 한 곡 안에서 우조와 계면조로 조가 바뀌는 곡으로는 ‘반엽’‘편락’‘환계락’ 등이 있다.
가곡의 역사는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음악적으로는 1572년의 악보인 ‘금합자보(琴合字譜)’에 그 원형인 ‘만대엽(慢大葉)’이 수록되어 전하며, 1610년의 악보인 ‘양금신보(梁琴新譜)’에 의하여 ‘만대엽’‘중대엽’ ‘삭대엽’이시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조 때 이미 너무 느린 ‘만대엽’을 사람들이 싫어하여 없어진 지 오래라고 하였다. 이후 17~18세기는 ‘중대엽’과 ‘삭대엽’이 널리 불렸고, 19세기 이후는 ‘중대엽’도 도태되고, ‘삭대엽’이 가곡의 주류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가곡은 남성을 위한 남창 가곡과 여성을 위한 여창 가곡이 있어서 따로 따로 부르기도 하지만 남녀가 함께 부르는 남녀창이 그래도 흥이 겹다.
교방가요에는 남자가 부르는 부분은 ‘창운(唱云)’으로 표시해 놓고 여자가 부르는 부분은 화운(和云)으로 표시해 놓았다.
남녀창의 경우는 남녀 각 한사람씩으로 하되 언제나 남창이 선창이고 여창이 후창으로 받아 부르는 형식임을 알 수 있다.
가곡을 전문적으로 부르는 성악가를 가객(歌客)이라 하였으며, 이름을 남긴 가객으로는 ‘청구영언’의 편자인 김천택(金天澤), ‘해동가요(海東歌謠)’의 편자인 김수장(金壽長), ‘가곡원류(歌曲源流)’의 편자인 박효관(朴孝寬) 등이 유명하다.
원래 남자들이 주로 불렀던 가곡을 이들이 중심이 되어 여성들에게 전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19세기에 들어오면 여자들이 가곡을 많이 불렀으며 그 모습이 교방가요에 그림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현행 가곡의 전통은 최수보와 박효관에게 사사한 바 있는 하규일에 의하여 이왕직아악부 소속인 아악부원에게 전승되었는데, 그의 제자로 이병우, 이병성, 이주환, 성경린, 장사훈, 김기수 등이 있다. 국립 국악원의 설립 이후 가곡의 전통은 이주환에 의하여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그 결과 그의 제자 홍원기, 김월하, 이동규, 김경배, 등이 맥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