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미모 시 잘 짓는 진주기녀 승이교 
우리는 이름난 기녀를 명기(名妓)라고 부른다. 미모로 이름난 기녀가 있고, 가무를 잘해서 이름 난 기녀가 있고, 시사(詩詞)를 잘해서 이름난 기녀가 있고, 해학을 잘해서 이름난 기녀가 있고, 서화를 잘해서 이름 난 기녀가 있고, 신의를 잘 지켜서 이름난 기녀도 있다.
지금 우리들이 명기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황진이, 홍랑, 매창 등 시를 잘하는 기녀들이 유달리 많다. 이들 기녀들의 작품은 당시 어느 시인 묵객들의 작품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 났으며, 우리들이 널리 애창하고 있다. 조선시대 문학의 한 갈래를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녀들의 시는 뛰어난 서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산에 있는 버들가지를 골라 꺾어 보내오니 님에게/주무시는 방의 창가에 심어 두고 보시옵소서/(행여) 밤비에 새 잎이라도 나면 (마치) 나를 본 것처럼 여기소서”
조선 선조 때의 함경도 경성 기녀 홍랑의 시이다. 홍랑은 당대 최고 시인중 한사람인 최경창과 정이 깊었다. 선조 6년 최경창이 북해 평사(北海評事)로 경성에 가 있을 때 친해진 홍랑이 이듬해 최경창이 서울로 돌아가게 되자 영흥(永興)까지 배웅하고 함관령에 이르러 저문 날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이 노래와 버들가지를 함께 보냈다 한다.
얼마나 절창인가. 이별의 정을 이토록 간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조선시대 시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진주 기녀 중에 가장 뛰어난 시인은 누구일까. 단연 승이교(勝二喬)라고 할 수 있다.
승이교. 이름도 특이하다. ‘이교를 이긴다’라는 뜻으로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우선 승이교는 이능화의 ‘해어화사’에 조선시대 명기로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이다.
“진주에 승이교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아명은 억춘(億春)이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기녀가 되기 전에 이름이 ‘억춘’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본명은 억춘, 예명이 승이교인 셈이다. 김복남씨가 앙드레 김으로 불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억춘은 왜 승이교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또 승이교는 무슨 뜻일까.
중국 삼국시대 강동의 영웅 손책과 주유는 동서지간이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교공의 두 딸인 대교(大喬)와 소교(小喬)를 각각 아내로 맞이했다. 손책의 부인이 대교이고 주유의 부인이 소교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승이교는 ‘대교와 소교 즉 이교를 능가한다’는 뜻으로, 그의 미모가 얼마나 뛰어났으면 이렇게 불렀을까.
승이교에게 애인이 있었다. 바로 마관(馬官)벼슬을 하고 있던 김인갑(金仁甲)이란 사람이다.
마관은 ‘찰방’벼슬을 가리키는데 조선시대 관직의 하나로 각 도의 역참을 관리하던 종6품의 외관직이다. 대체로 역리(驛吏)를 포함한 역민의 관리, 역마 보급, 사신 접대 등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이다. 지금의 진주 문산에 소촌찰방이 있었으니, 혹 김인갑이라는 사람이 소촌찰방이 아닌지 추측을 해본다.
승이교는 김인갑의 사랑을 받아 그에게 시를 배웠다.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여 시짓는 법을 잘 이해 하였으며, 작품이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평을 들었다.
승이교의 시는 현재 2수가 전한다.

강양관 안에 서풍이 일어나니
뒷산은 붉게 물들고 앞 강은 맑아
비단 창에 달 밝으니 벌레소리 목메어
외로운 베개 찬 이불에 잠못 이루네
江陽館裏西風起
後山欲醉前江淸
紗窓月白百蟲咽
孤枕衾寒夢不成

갈바람이 치마폭 휘 불때마다
뜬 몸엔 가는 세월 속설은 것을
연당에 가을비 부슬부슬
이슬맺힌 가지엔 매미소리 목메이네
추위에 놀란 기러기 저소리
쓸쓸한 산성을 넘어가누나
님 그리는 꿈에서 깨어나 보니
가을 달빛이 창으로 비쳐드네
西風吹衣裳
衰容傷日月
蓮堂秋雨疎
露枝寒蟬咽
霜雁墜飛聲
寂寞過山城
思君孤夢罷
秋月照窓明

남명과 퇴계의 제자인 권응인(權應仁)은 송계만록(松溪漫錄)에서 “이같은 작품들은 정묘함이 있다고 보겠다”며“아직도 어리면서 이처럼 총명하니 만약 쉬지 않고 정진한다면 옥봉(玉峰)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했다.
권응인은 1562년 문장에 능한 일본 사신이 왔을 때 시재가 뛰어났으므로 특명으로 선위사(宣慰使) 일행의 한 사람이 되어 이를 만났다. 당시 송나라의 시풍이 유행하던 문단에 만당(晩唐)의 시풍을 받아들여 시단(詩壇)에 큰 전환을 가져왔으며, 시평(詩評)에도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당시 시단을 주도하던 권응인이 승이교의 시를 이처럼 높이 평가하고 꾸준히 정진한다면 옥봉의 경지에 오르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했다. 옥봉은 어떤 사람일까.
일찍이 권응인은 옥봉을 두고 “여자로서 시를 잘 짓는 사람은 예로부터 드문데 하물며 재인(才人)을 얻기 어려운 지금에랴”라고 하면서 옥봉의 시를 칭찬했다.
옥봉은 승지를 지낸 조원(趙瑗)의 첩이다. 조원은 진주 금산 출신으로 판서를 지낸 이준민의 사위로 임란때 함양 황석산성에서 순절한 대소헌 조종도의 손아래 동서이다.
옥봉이 사랑하는 이에게 보낸 연정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창가에 달 오르니 그리움이 사무칩니다/꿈 꾼것 만약 흔적이 있다면/그대집 문앞 돌길 모래가 되었겠지요//(近來安否問如何 月到紗窓妾恨多 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半成沙)”
권응인은 승이교의 시를 보고 꾸준히 정진한다면 옥봉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평을한 것은 그의 뛰어난 시재를 알 수 있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승이교의 시를 뛰어나다고 평가한 사람은 권응인 뿐만아니다. 오산학교에서 김소월을 가르쳐 그를 시단에 소개한 김안서가 ‘한국여류한시선집’을 통해 그녀의 시를 번역해 소개했다.
“갈바람이 치마폭 휘 불때마다/뜬 몸엔 가는 세월 속 설운 것을/연당에는 가을비 부슬거리고/이슬 맺힌 가지엔 매암이 우네”
승이교은 미모가 뛰어나고 시를 잘 했던 진주 교방의 기녀였다. 황진이 홍랑 매창과 더불어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는 진주 기녀가 바로 승이교인 것이다.
진주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승이교의 시에 곡을 부친다면 진주의 멋진 노래가 또 한 곡 생기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