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교방의 술 권하는 노래 

진주교방의 술 권하는 노래

요즘처럼 각박하지 않았던 시절, 선술집에서 얼큰하게 한잔 먹고 나면 흥이 절로 오른다. 이쯤되면 흥에 겨워 젓가락 장단에 구수한 노래 한 가락 나오게 마련이다. 그저 흥에 취해 부르는 노래이니 만큼 박자와 가사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흥에 겨운 노래 한가락에 술잔 부딪치는 소리는 높아만 갔으니, 술맛을 돋우는데 노래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술맛을 돋우는 노래. 바로 권주가다. 아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 ‘술 취한 신선(醉仙翁)’이라고 불렀던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의 ‘술을 권함’ 즉 장진주(將進酒) 라는 시를 한번쯤은 술자리에서 화젯거리로 삼았을 것이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황하의 물이 천상에서 내려와/마구 흘러 바다로 들어가서는/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그대 또 보지 못하는가/높은 집 환한 거울 놓고 흰 머리 슬퍼함을/아침에는 푸른 실이/저녁에는 흰눈이네//인생에 뜻 얻었을때/부디 한껏 즐기어라/금항아리 그 술이/저 잔을 헛되이 대하게 하지 말라//하늘이 내 재주를 내셨을 때는/ 반드시 쓰일 데 있으려니/천금을 다 쓰고 나면/반드시 다시 돌아오나니//양을 삶고 소를 잡아/ 또 즐겨나 보세/한번 시작하면/삼백잔은 마셔야지//
잠부자여 단구생아/이 술 권하노니/ 부디 잔을 멈추지 마라//나 지금 그대 위해 /한 가락 부르리라/ 그대 부디 나를 위해/귀 기울여 잘 주시게나//(중략)
술 한잔에 이백의 ‘장진주’ 한 구절 읊는데 무슨 형식이 필요했겠는가. 그냥 흥에 따라 읊고 더 흥이 겨우면 노래가 되는 것을.
권주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니 이보다 훨씬 이전에 흥에 겨워 불렀던 이름없는 노래들이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아무튼 술이 나타나고부터 술 권하는 노래가 존재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가사 문학의 대가라고 불리는 송강 정철 역시 풍류를 알았던 선비로 이태백을 닮고자 한 잔술을 들고, 술 권하는 노래‘장진주사(將進酒辭)’를 읊었다.
“한 잔 먹새 그려 또 한 잔 먹새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 묶여 (무덤으로) 실려 가거나, 곱게 꾸민 상여를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 가거나,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에 한 번 가기만 하면 누런 해와 흰 달이 뜨고, 가랑비와 함박눈이 내리며, 회오리바람이 불 때 그 누가 한 잔 먹자고 하겠는가?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가 놀러 와 휘파람을 불 때 (아무리 지난날을)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선비들의 이러한 풍류. 풍류와 멋의 산실인 교방에 어찌 없었겠는가. 교방의 주인공들인 기녀들이 불렀던 술 권하는 노래, 권주가는 장구 장단이 없는 불규칙한 박자로 불리는 무정형의 자유스런 곡이었다. 흥에 맞춰 부르면 되는 노래였던 것이다.
기녀들이 부른 권주가 하면 아마 판소리 ‘춘향전’에 나오는 한 대목이 생각날 것이다. ‘어사또 출두장면’바로 전의 한 장면. 남루한 옷차림의 이도령이 변사또 생일 잔치에 불쑥 들어가 내키지 않은 술 상을 받고는, 운봉 영장에게 “여보 운봉 나 기생하나 불러 권주가 하나 시켜 주시오”하니 이때 기생중에 늙고 제일 못생긴 기생이 나와 술을 붇고 권주가를 하는데, “진실로 이잔 곧 잡으시면 천 만년이나 빌어 자시리라”라고 하는 대목이다. 비록 고약한(?) 권주가 이지만 순간적인 재치가 돋보이는 내용이다. 만약 거지 차림의 이도령이 아니고, 정식 어사또 차림의 이도령이었다면 그 기녀는 술을 올리면서 어떤 내용으로 불렀을까. 이런 내용의 권주가를 불렀을 것이다.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잔 잡으시오 불노초로 술을 빗고 신선이 사는 연못 복숭아로 안주삼아 만수무강 하십시오
천지는 술을 좋아하여 주성과 주천을 만들었고 성현도 술을 좋아하여 수천 수백 술잔을 잡으니 인간세상 아름다운 녹봉이 아닌가
예로부터 영웅호걸 술 아니면 일 못하고 예로부터 문장가 학자 술 아니면 글을 못 지으니 권할 때 잡으시오
자연 속의 누각 아름다운 경치라도 술 없으면 흥이 없고 맑은 노래 절묘한 춤 풍류 있는 곳에 술 없으면 맛 없으니 술만 먹고 노십시오.(필자 해석)

남원 관기가 이런 내용을 불렀는지는 고증을 할 수는 없지만, 진주 교방의 기녀들은 이렇게 불렀을 것이다. 정현석 목사가 지은 ‘교방가요’에 실려 전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1930년 경성제국대학에서 발간한 육당본 청구영언에 실린 ‘권주가’는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슐 한 盞 잡으시오 이 슐 한 盞 잡으시면 千萬年이나 사오리다 이 슐이 슐이 아니라 漢武帝 承露盤의 이슬바든 슐이 오니 쓰나 다나 잡으시오”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니, 지방마다 다르게 불려졌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정현석의 ‘교방가요’에 의해 19세기 말 진주지방에서 불려졌던 교방의 권주가는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있어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권주가’는 원래 조선시대 12가사(歌詞) 중의 하나였다. 가사는 가사체(歌詞體)로 된 장가(長歌)를 노래하는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이다.
오늘날까지 전래되고 있는 곡이 12곡이므로 12가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시조·가곡(歌曲)과 함께 정가(正歌)의 하나이며, 사설은 가곡이나 시조보다 훨씬 긴 것이 특징이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12가사는‘권주가(勸酒歌)’를 비롯해‘춘면곡(春眠曲)’‘백구사(白鷗詞)’‘황계사(黃鷄詞)’‘죽지사(竹枝詞)’‘어부사(漁父詞)’‘길군악’‘상사별곡(相思別曲)’‘수양산가(首陽山歌)’‘양양가(襄陽歌)’‘처사가(處士歌)’‘매화타령(梅花打令)’이다.
교방가요에는 ‘권주가’‘춘면곡’‘처사가’‘양양가’‘상사별곡’‘매화타령’‘행군악 ’‘관동별곡’등의 가사명이 실려 있는 것을 볼 때, 진주교방에서는 이들 곡들이 불려졌을 것으로 추측이 되며 그중 하나가 바로 권주가이다.
권주가는 누가 지었으며 언제부터 불러졌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술자리에서 술을 서로 권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구가(舊歌)와 신가(新歌) 2종류가 있으며 가락은 계면조로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고 무한한 부귀와 장수를 비는 내용으로만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가사가 언제부터 불려지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지금의 12가사의 전통이 성립된 시기는 조선 말기 무렵인 금세기 초라는 것이 정설이며, 일제 강점기에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 처음으로 가사가 전승되었는데, 1926년부터 하규일(河圭一)이 ‘권주가’ 등 8곡을 불러 전하였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권주가의 장단은 어떠했을까. 일반적으로 가사의 장단은 6박자를 한 주기로 하는 장단과 5박자를 한 주기로 하는 장단의 2가지가 있다. ‘상사별곡’ 처사가’ ‘양양가’는 한 장단 5박자이고, 나머지 8곡의 가사는 한 장단 6박자이다.
그런데 ‘권주가’는 일정한 장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위기와 흥에 따라 박자도 달랐던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교방 기녀들은 가냘픈 목소리로 분위기에 따라 가사도 약간 바꾸어 가며 간드러지게 권주가를 불렀을 것이다.
지금 그 모습, 그 분위기는 머리속 ‘느그림’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다. 사라진 진주의 또 다른 문화 교방문화의 한 장면이 지금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일까.
/강동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