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청 이전과 진주(1)


진주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역사적 사건은 경남도청의 부산 이전이다. 1896년(건양 1) 8월 경남도청 소재지인 관찰부(觀察府)가 진주에 설치된 이래, 1925년 4월 1일 경남도청의 부산이전에 이르기 까지 28년간의 진주도정시대는 우리나라 근대사의 영욕과 애환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다.
경상남도 청사는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한 1925년 4월까지 지금의 진주성(晋州城) 내 진주시 남성동 73-10~11번지에 있었고, 건물이름은 선화당(宣化堂)이었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 관찰부는 도청(道廳)으로 개명되었고, 관찰부의 최고 책임자였던 관찰사(觀察使)는 도장관(道長官)에서 다시 도지사(道知事)로 불리게 되었다. 초대 관찰사에는 진주부사로 재임하던 이항의(李恒儀)이며, 관찰사(도장관, 도지사)는 한국인 16명과 일제강점기 일본인 4명 등 모두 20명이었다.

진주사람들의 주체정신과 배일사상

진주도정시대(晋州道政時代)는 관찰부시대(觀察府時代)와 진주도정시대(晋州道政時代)로 나누어진다. 진주는 1896년부터 만 14년 6개월 동안 관찰부(觀察府)로서의 역할을 했다. 12명의 관찰사가 거쳐 가는 동안 진주는 경남의 중심지로서 그 기능을 다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1910년 10월 조선 마지막 관찰사였던 황철(黃鐵)을 대신해 일본인 카가와 아키라(香川 輝)가 도장관(道長官)에 부임하면서 관찰부 시대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식민통치의 서막을 알리는 진주도정시대에 돌입했다.
진주도정시대는 ‘도청의 부산 이전 작업’의 시작점임과 동시에 일제의 식민지배에 항거하는 진주 사람들의 처절하고도 한 맺힌 시절의 연속이었다. 을사늑약 이후, 마산·부산 등 경남 해안지방과 달리 일본인들의 진주 진출은 여의치 않았다. 진주사람들이 왜인(倭人)과 이웃하는 것을 수치라고 여길만큼 주체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임 카가와 아키라 도장관은 일본인 도직원의 숙소를 진주성 안에 짓고 헌병을 보초로 세우기도 했다. 진주성 밖에서는 일본인 살해와 구타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일본인들은 무리를 이루어 외출하거나 집안에 일본도나 몽둥이를 비치해 두기도 했다.
심지어 하야시다(林田芳彦)라는 일본인은 사제폭탄을 만들어 마루 밑에 숨겨두었는데, 어느날 그의 아들이 뇌관을 건드리는 바람에 폭탄이 터져 집이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이른바 ‘진주사제폭탄 사건’이다.
진주 사람들의 일제에 대한 저항은 1912년 제2대 도장관인 사사키가 부임한 후 무시무시한 헌병정치를 자행해 진주 사람들의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은 불가피하게 점차 사그라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주 사람들의 이러한 일제에 대한 저항은 1919년 독립만세운동으로 이어졌고, 1925년 일제가 계획한 도청의 부산이전에 반대하는 시민정신으로 이어졌다.
 

조선총독부의 ‘도청 부산 이전’ 의 전모

조선총독부는 언론을 이용해 경남도청의 부산 이전 움직임을 기정사실화하려했다. 일본어신문인 조선시보가 1909년 당시 경남관찰사였던 황철이 ‘도청을 교통이 불편한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라는 내용의 발언을 인용보도한 것이 도청이전과 관련한 최초의 발언이었다. 이어 1911년 부산일보에 「도청 부산 이전 결정」, 1916년 제2대 총독이 취임한 직후, 경성일보(京城日報)에 도청이전문제가 거론됐다.
경남도청(慶南道廳) 부산이전설(釜山移轉說)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도된 것은 조선일보(朝鮮日報)와 동아일보(東亞日報) 등의 신문이 발간된 직후인 1920년 4월 8일 이었다. 동아일보 4월 8일자 보도에서 ‘경상남도청의 이전은 오래된 현안이었는데 총독부에서 최근 이전을 결정했고, 이전지는 부산 남해안 대정공원 부근이 될 듯 하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진주시민들은 격렬한 반대운동에 돌입했다. 1920년 4월 10일, 반대시민대회(反對市民大會)를 개최했고, 일부에서는 철시시위(撤市示威)까지 벌였다. 시민대회 결정에 따라 「진주도청이전방지동맹회(晋州道廳移轉防止同盟會)」라는 간판을 걸고, 반대청원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1923년 형평운동이 일어난데 이어, 1924년 부산에서 약 1만여명에 달하는 노동자에 대한 일본입국제한 조치가 시행되면서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도청이전문제는 거의 잊혀져 갔지만, 1924년 중반쯤에 이르러 진주시민들은 총독부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하게 된다.
도청 부산이전에 대한 의구심은 총독부의 지방비예산의 미집행과 관련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1923년도 지방비예산에 계상되어 있고 또 신축부지까지 결정해 놓은 진주사범학교(晋州師範學校)와 금융조합연합회 도지부(金融組合聯合會 道支部) 건물이 회계연도가 1년이 넘었는데도 아무런 이유없이 기공(起工)도 하지 않고 시일(時日)만 지연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시민대회를 열자는 논의가 생겼고, 1924년 7월 26일 아침 8시부터 진주청년회관에서 개최된 시민대회에서는 도청이전반대 진정위원 6명을 총독부에 상경시키기로 했다.
진정위원들은 정무총독을 만난 자리에서 ‘도청이전문제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상부에서는 이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이에 신문들은 일제히 「진주문제 일단락, 도청이전설은 총독부도 반대」라는 제하의 기사를 쏟아냈으나, 이 역시 일제의 어처구니없는 기만정책에 불과했다.
조선총독부는 도청이전반대 진정위원들의 총독부 방문 이후 4개월이 지난 1924년 12월 6일 밤 12시, 당시 경남지사였던 화전(和田)과 부산부윤(釜山府尹)인 소서(小西)에게 다음과 같은 연락을 취한다.
「도청의 이전이 결정되었으며, 12월 8일자 관보로 발표한다. 민심 수습에 만전을 기하라」
이에 경남지사는 12월 7일 오후 1시, 1924년 12월 8일자 조선총독부령 제76호에 의거,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중 「경상남도 위치 진주」를 「경상남도 위치 부산」으로 개정하고 1925년 4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진주시민들은 조선총독부의 도청 부산이전 발표에 맞서 격렬한 반대운동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