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년 전에도 3김(三金)이란게 있었다. 조선 중종때 사람인 최숙생이라는 청백리(淸白吏)의 일화에 이들 3김(三金)이 등장한다. 당시 조선 당대 제일의 3김으로는 김세필·김안국·김정국 등이 좋은 예인데, 최숙생이 충청도 관찰사로 있을 때 이들이 찾아와 청탁을 했다.
청탁내용은 다름아닌 3김의 스승인 이세정에게 수령자리를 하나 마련해 줬는데 뒤를 좀 잘 봐달라는 내용이었다. 3김의 스승인 이세정은 여러 차례의 과거시험 도전 끝에 낙방하고 결국에는 과거보기를 단념하고 3김을 길러낸 것이다.
당시에는 이들의 권세가 강하여 청탁을 거역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숙생은 그 청탁을 물리쳤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건만 최숙생은 단호했다.
이유인즉슨, 이세정은 학식이 뛰어났지만 실무에 밝지 못해서 혼자서 청렴했을 뿐 그 밑에서 백성들을 괴롭히던 여섯 도둑을 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세정의 고과성적표는 상·중·하 세등급 중 '하'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3김의 청탁을 물리치고 이세정을 파직시킨 최숙생은 나중에 대사헌이 되었고, 서울에 상경한 그는 도성안의 무당을 모조리 잡아들여 동대문과 서대문 밖의 빈민구제원인 활인서(活人暑)에 가두어 버린다. 이러한 최숙생의 단호한 행정정책 때문에 서울시내는 삽시간에 질서가 잡혀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조선 세조때 유행하는 말이 하나 있었다. '경진년 무과에 합격했느냐'는 말이었다. 당시 과거시험에는 문과와 무과가 있었는데, 문과에 비해 무과는 양반이 시험보기를 창피하게 생각할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심지어 사대부 집안에서는 무과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했다.
무과는 태종 8년에 처음 설치되었는데 문과는 용방(龍榜)이라 해서 임금이 합격자에게 일산(日傘)을 하사했으나, 무관은 호방(虎榜)이라 하여 그 합격자에게는 검은 깃발을 하사했다. 이것은 문관과 무관을 평등하게 대우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태종의 이같은 뜻은 세조때 가서 무너지고 만다.
세조가 지방을 순시하면서 가는 곳마다 무과시험을 쳐서 일년에 무려 1천8백명이나 되는 무과합격자를 양산해 그 가치를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그 해가 세조 6년 경진년(庚辰年)이었고, 무과에 합격했으면서도 말도 제대로 타지 못하고, 활도 제대로 쏘지 못하는 자를 가리켜 '경진년 무과에 합격했느냐'고 희롱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무과시험이 쉬워지자 활을 조금만 쏠 줄알면 모두 과거에 합격하게 되었고, 율곡도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면서 한 해 6백명의 무과합격자를 냈다. 그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이같은 과거시험의 폐혜는 더욱 심해졌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임란때 영의정이었던 이항복(李恒福)이 손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 하다가 노비를 불렀더니 대답이 없자 이렇게 말했다. "이 놈이 필시 시험장에 나아가 무과시험을 치르고 있는 거로구나"
사람들은 부정부패의 원인을 제도(制度) 탓으로 돌리길 좋아한다. 그러나 역사는 항변한다. 법이나 제도를 운영하는 인간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금이나 예나 다를게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