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다보니 별 우스운 꼬라지 다 보게 된다. 멀쩡한 사람 죽여 놓고도 '난 죄없소' 하고 발뺌 하는 놈이 없나, 쫄병 시켜서 '유감' 표명하는 천하의 상놈 흉내 내더니, 전국을 환하게 밝히는 촛불시위를 보고 '이거 위험한데…'라며 본사에 전통치는 놈도 천지 삐까리다 이 말씀이다. 길게 안 써도 이쯤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하시리라.
이건 진짜 실화다. 이른 아침 신문에 들어있던 학습지 샘플이 보이길래 어린 아들녀석에게 풀어보게 했다. 단숨에 쓱쓱 풀어버리는 영특함에 흐뭇해 하며 쭉 훑어보던 어머니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며 킥킥 웃는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문제4>호기심과 탐구심을 가지고 항해하여 지금의 미국땅을 발견한 사람은? 아들녀석의 답은 '안데르센'. 안데르센이 미국을 발견했다고? <문제5>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의 이름은? 아들녀석의 대답은 아프가니스탄. 하긴 먹을게 많으니까. <문제6>콜럼버스는 어느나라 사람일까요? 대답은 미국.
애들은 정말 모른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또 하나. 아내가 느닷없이 식혜를 만들었다. 아내가 한 대접 가득 들고와 남편에게 권한다. 아내의 정성이 가득 담긴 식혜를 받아든 남편. 쭉 들이키고 나서는 텔렌트 최민수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말한다. "음…좋은데"
자신감을 얻은 아내, 이번에는 아이에게 한 대접 내민다. 꼴짝 꼴짝 삼키던 아들녀석의 반응은 정반대다.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더니 '우우우웨∼웩' 한다.
아이는 계속 웩웩거리고 남편은 아내 몰래 싱크대에 몰래 갖다 버리는데, 아내는 한솥가득 담긴 식혜를 보며 한탄한다. '어쩌지, 한 들통이나 망쳤는데…'
우리의 아이들은 솔직 담백할 뿐이다.
이런 생각도 든다. 전국의 가정에서 아이들을 앞에 불러다 놓고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이 추운 겨울 날씨에 수 백만명의 국민들이 왜 손에 촛불을 들고 떨고 서 있는 가?'를 말이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과 솔직 담백한 아이들에게 사실을 사실대로만 전해주자. 그러면 된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사기꾼이자 폭력배인 K씨의 생활신조는 '착하게 굴어'이다. 새해를 맞아 책읽기로 작심한 K씨가 담배를 꼬나 물고 서있는 똘마니에게 물었다. "너, 이 책 읽었냐?" 똘마니는 묵묵부답. "하이고 답답해! 아직도 이 책을 안 읽은 인간이 있단 말야?"하는 말이 귓전을 때리는 순간 똘마니의 눈에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이 들어온다.
두목의 계속되는 질문은 들은 척 만 척 하고 똘마니가 모금함에 천원짜리 지폐를 한 장 넣고 막 돌아서는 찰라. 화가 난 두목이 똘마니의 멱살을 거머 쥐었다. "야!, 말이 말같지 않냐? 말이 말같지 않냐고오∼" 마구잡이로 신나게 두들겨 패는 두목에게 똘마니가 속으로 한마디 한다. "니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못됐어"
연말 술자리를 대충 끝내고 돌아오던 택시안에서 기사분이 미선이와 효선이의 넋을 위로하는 촛불시위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뭐하고 있는기고. 인자는 국민들 아이모 아무일도 안되는기라"
어쨌든 대패 들고 관 짜고 삽 들고 무덤 파는 사람들이 판쳤던 한 해는 갔다. 이래저래 새해에는 신문이나 꼼꼼히 살펴봐야 겠다. 학습지 샘플이나 들어있으면 금상첨화일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