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당시 선조는 수랏상에 오른 닭고기를 보면서 한줄기 눈물을 흘렸다. “아침에 닭 울음 소리가 없어 시간을 모르겠더니, 그녀석이 수랏상 위에 올랐구나” 하며 쫓기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는 것이다.
닭에 얽힌 이야기를 하자면 천하의 풍류객 정수동을 빼 놓을 수 없다. 그의 닭 잡아 먹는 솜씨를 보면 기가 막힌다. 어슬렁 어슬렁 길을 가다 남의 집 멍청한 장닭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정수동이 한마디 한다. “이놈! 네 애비가 죽었다”
정수동은 그 멍청한 장닭이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는 데도 울지 않자 ‘불효 막심한 후레자식’이라며 잡아 먹었다. 이뿐 아니다. 그런 수동이 다른 집에 가서는 닭이 낮에 운다고 ‘귀신 붙은 닭’이라며 잡아 먹기도 했다.
닭이란 본디 신새벽, 어둠을 가르고 ‘양(陽)’의 도래를 알리는 동물이다. 그래서 닭을 ‘파사(破祀)’의 동물로 신성시했다. 신라 개국시조 박혁거세의 부인이 알영부인이고, 그 입이 닭의 부리를 닮았다는 데서도 미루어 짐작되는 신성한 동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닭은 운세를 점치는 12간지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닭을 잡아 그 피로 귀신을 쫓는 처방을 했고, 동짓날 팥죽을 끓여 곳곳에 뿌리는 것도 이에서 연유한다. 새알을 빚어 넣는 것도 닭의 생명력을 빌어오는 일종의 주술적 의미로 볼 수 있다.
한때 닭을 키우는 농가들이 계란 값 하락으로 울상을 짓고 있는데, 한쪽에선 애완용 닭이 날개돋친 듯 팔린 적이 있다. 이 애완용 닭은 제법 비싼 값에 팔리는데, 정작 문제는 이 녀석이 글쎄 밤낮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 제끼는 것이다.
아마도 정수동이 살아 있었으면 잡아 몸보신 하기에 바빴을 성 싶은 이 닭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래도 ‘시절이 하수상한’ 요즘을 경계하는 울음이 아닌가 싶다.
하긴 정신차리고 주위를 한번 ‘휙’하고 둘러보면 밤낮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닭’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니까 그럴법도 하다.
선비의 고장 산청에서 군민들에게 이웃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는 신문이 생겼다는 소식에 죽었던 풍류객 정수동이 살아 돌아오는 듯한 설렘을 가져 본다.
이 참에 그동안 발행이 뜸했던 지역의 다른 신문들도 슬슬 기지개를 펴 볼 모양이니 이러다가 신문 춘추전국시대가 되는건 아닌지. 하기야 산청소식을 전하는 신문이 열개, 아니 스무개가 되어도 나쁠건 없다. 아랫마을 산청댁 숟가락은 열 두개인데 젓가락이 다섯모 밖에 없다는 소식이면 어떠랴. 다 우리 군민들 소식인데 말이다.
근데 심히 걱정스러운게 있다. 혹여나 죽었던 정수동이가 갑자기 여기저기서 나타나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온 동네 닭을 다 잡아 먹지는 않을지…. 게다가 밤낮 가리지 않고  꼬꼬댁 거리며 울어대면 피곤한건 어차피 군민들인데.
이야기가 나온 참에 한마디 하고 싶은게 있다.
닭도 낮에 운다는데 자기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할 수 있는게 요즘 세상이다. 무엇을 하든지 자유의사이며 의지만 있으면 누군들 못하랴. 능력이 안되서 못하는게 다반사일뿐이다. 근데 중요한건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해 놓고는 힘들다고 중지하거나, 돈안된다고 약속을 밥먹듯 어기면 결국 신새벽을 여는 닭이 아닌 햇빛이 쨍쨍 나는 낮에 우는 닭이 되고 만다.
꽁하고 가다렸다가 낮에 우는 닭은 잡아 먹어야지.
황경규<도서출판 사람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