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대'라는 말이 있다. 자로 쓰는 대 막대기 혹은 나무 막대기라해서 '자막대기'라고도 부르는 이 말은 자고로 모든 도덕적인 행위나 사물의 기준을 재단하는 객관적인 근거로 인용되곤 했다.
흔히 '객관적이지 못한 일'이나 '형평성에 어긋난 일'이 있을때 사람들은 이 잣대를 기준으로 잘잘못을 가리곤 한다.
그런데 이 잣대란 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잣대가 적용되는 순간, 그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며 형평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잣대는 곧잘 권력을 가진 불특정 다수자의 전유물로 인식돼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도 만들어냈다.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퇴출대상 도마에 오른 공직자들이 '구조조정 선정기준'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한다.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잣대가 한마디로 요상하다.
'나이가 많은 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순'이 구조조정의 잣대라니 말이다.
이 말을 듣고 보니 동네 어르신들에게서 곧잘 듣던 '나이가 들면 죽어야지'하는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은 단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올바르지 못한 잣대가 적용'됐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둥지를 튼 자리가 오래돼 썪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새 자리를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무협만화의 주인공의 성격처럼 단순·무식·과격하게 '나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우긴다면 '잣대'를 들이대는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이들면 다 죽어야 하느냐'고 반박한다면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구조조정대상자들에게 '이럴수 밖에 없는 입장'을 하소연 하는 것이 어설픈 잣대를 갖다대는 것보다 오히려 덜 민망할 것 같다.
한창 주가를 올린 모 방송국 TV프로그램중에 '스타 서바이벌 게임'이란게 있다.
쉽게 말하면 '짝짓기'놀이인데, 남여 각각 4명이 출연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한사람씩 떨어트리다가 마지막에 남은 연예인 두명이 장난감 칼을 들고 '호랑아 내가 간다' 외친다.
근데 칼을 뽑으면 한사람은 날이 곧추선 칼이 나오지만,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노가리나 대파 등과 같은  '민망'한 것이 칼 대신 달려 있다.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는 이유는 바싹마른 노가리가 칼에 달려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통념상 기준이 되는 '잣대'가 정작 그곳에 없기 때문이다.
행여나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칼에 노가리를 매달고 휘두르지는 않나 싶어 마음이 뒤숭숭하다.<2000.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