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의 질서의식은 제로에 가깝다' '한국 사람들은 쉽게 흥분하고 실망하며 빨리 잊어 버린다' '한국에선 전과자가 떵떵 거린다' '한국사람들은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 하고 있다'
만약 어느 누군가가 공공연하게 이런 말을 했다간 한국인의 정서상 분명 돌 맞을 일이다. 근데 이런 글이 적힌 책을 읽고, 내심 반성하면서도 불쾌했던 기억을 가진 이들도 있으리라.
기묘년 정초부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씨가 쓴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을 기억하시는가. 
그의 한국인 비판의 핵심을 볼라치면 대충 이렇다.
'신호등과 같은 기초질서도 제대로 못지키는 나라에서 무슨 수로 사회 구석구석에 잔재해 있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느냐'는 게다.
다음 비판을 보면 내친김에 밟혀죽을 각오를 한듯하다.
'아이가 차도에 뛰어들어도 되레 운전자에게 삿대질이요, 법을 어기고도 걸리면 재수없다고 생각하며, 아파트 윗층에서 쿵쾅거리고도 미안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큰소리 치고…'
여기까지 이르면, 일단 한숨이 절로 난다.
외국인에게 비춰진 한국인의 자화상이 고작 이정도인가 하는 회한이 들 정도니 말이다.
근데 다음 대목에 가서는 화가 치민다.
'한국사람들은 정치와 경제문제에 관심이 많아 술집이나 식당 어디를 가도 그것들로 인해 흥분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지만 그게 전부'라는게다.
쉽게 풀이하자면, 목청만 돋울 뿐이지, 아무 결론이 없다는 얘기다.
독자들은 아마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이런 생각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책의 제목처럼 정말 '맞아 죽을 각오를 했나'라는 생각이 아니면, 난도질 당하다시피한 한국인의 자존심의 끝을 부여잡고 '틀린 말은 아니네'하고 말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향기롭고 그윽한 녹차 한 잔'을 마신 기분이 들지 않아 서운했지만, 이케하라 마모루씨가 이 책을 쓰면서 한가지 간과한 점이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싶었다.
사물을 보는 세계관과 유기체적인 관점이 전제되지 않는 해부학이 '과학'으로 전화할 수 없듯이, 일상의 단편적인 묘사는 자칫 기계적인 해석에 머물수 있다는 점이다.
즉, 이같은 편향적인 관점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질서의식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수고에 누가 됨을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다.
매주 요일을 정해 이른 아침부터 시내 곳곳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질서의식 함양'을 외치는 이들은 아직도 건강하고 질서있는 우리사회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우리는 다시한번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지금 자라나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이 '질서의식'을 배우기 보다는, 기성세대들이 무질서한 국민임을 먼저 확인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일이다.
질서란 예절에 다름아니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자신을 아끼듯 남을 아끼고, 공중질서를 지키며 언행에 책임을 지는 것이 곧 질서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만약 아이들의 눈에 비친 미래의 우리사회가 '동방예의지국'이 아닌 '동방몰염치 무질서지국'으로 각인된다면, 우리는 이케하라 마모루씨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 할것이다.<2000.10.18 촉석루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