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의 까만 날에 출근해서 여덟 시간을 일하고 그 대가로 소정의 금액을 받기로 회사와 약정한자'.
우리는 이들을 '직장인'이라 부른다.
해마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 이들의 외침은 물어보지 않아도 언제나 한결 같다.
"휴가비 따따불에다, 일주일 정도는 시간을 줘야지"
물론 사장님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 외침인게 그들의 아킬레스건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 불쌍한 우리들의 샐러리맨들이여.
유럽에서는 휴가와 공휴일을 합쳐 일년의 삼분의 일은 노는 날이다. 삼분의 일은 일, 삼분의 일은 휴식, 삼분의 일은 잠을 자야 정상으로 굴러 간다는게 그들의 믿음이다.
'이번 휴가는 캐나다에 가서 연어낚시라도 해볼까'하는 그들의 휴가관념을 부러워 하지는 마시라.
시쳇말로 그쪽은 잘사는 동네니까 그렇다 치지만 한국의 사정은 항상 '아니올시다'다. 
왜냐는 물음에는 백의민족이며 동방예의지국의 한국인이라면 다 아실터이다.
가족들의 황금휴가를 책임지는 충실한 운전기사이면서 짐꾼이자, 자금책이면서 처가와 본가의 여름휴가까지 빠듯이 챙기는 일꾼이 아니던가. 그 많은 짐들을 끙끙대며 들고 가는건 백이면 백, 다 우리의 아버지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직장인 혹은 아버지에게는 끝없이 펼쳐진 금빛 백사장에 비키니의 물결이 넘실대는 바닷가는 그림의 떡이요, 매미소리 울리는 계곡의 숲가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보글보글 끓고 있는 백숙을 지켜보는 아내의 흰 목덜미가 유난히 하얗게 보이는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은 단언코 없다.
아예 길가에서 자리 펴고 열심히 동양화를 그리는 한심한 행락객들을 지나치다, 허기진 배를 라면하나로 후딱 채우고 다시 나서는 그 지독한 여름 휴가철의 고속도로.
뒷좌석에서 칭얼거리는 아이들의 투정은 그런대로 받아줄만 하지만, 옆에서 꼬박꼬박 조는 아내를 바라보면 말문이 탁 막힌다. 아! 잔인한 여름이여.
여름휴가를 계획하는 샐러리맨들이여! 올해만큼은 자신을 위한 계획을 짜보자. 가뭄에 콩나듯이 어쩌다 한번씩 만나는 달력의 빨간 날에도 마음을 졸이는 우리가 아닌가.
그렇다고 가족들 다 팽개치고, '나홀로 여행'을 갔다간 본가·처가의 난리부르스에 목숨 부지가 어려울테니, 집 가까운 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가져보자.
휴가란게 꼭 멀리떠나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할아버지 이름 석자도 외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 고장의 명소를 다녀보는 것도 좋은것 같다.
매일 보고 지나치는 곳인데 일년에 한번인 휴가맛이 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대여!. 그대는 우리 고장의 명승지에 대해 단 5분이라도 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지 자신에게 되물어보라.
만약 그렇다면 저 지독한 여름 휴가철의 고속도로를 지나, 발디딜틈 없는 해변가에 도착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 꽁무니를 따라 다니시라는게다.
아니면 걸어서 10분, 차로 5분인 지역의 명소를 찾아, 맛나게 준비한 점심 도시락을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안고 사랑하는 아내와 멋진 폼으로 추억에 남을 사진이라도 찍읍시다. 그게 한국인의 진짜 사는 맛이 아니겠는가.
<200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