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와 장마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만 되면 제일 곤역스러운게 '점심 때우기'와 무지막지하게 달려드는 '모기'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평양냉면'과 '평양온반'이 하루에 수백그릇 팔려나간다지만 그것도 결국 '한 끼 때우기'에 불과하다.
역시 매일매일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는 '오늘은 뭘 먹을까'하는 명제이며, 해답은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
아침을 상습적으로 거르는 현대인들은 점심시간만큼은 ‘밥’에 목숨을 건다. 건너뛴 아침과 '비만'이 도사리는 저녁을 제쳐두면 애매한 점심시간만 매일 고생이다.
10첩 반상을 표방하는 영양만점 도시락. 그러나 정말 맛있다고 해도 질리도록 자주 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는게 도시락의 함정이다.
그래서 '만만한게 조조군사'라고 우리가 중국집이라 지칭하는 곳에서 배달되는 메뉴들은 미식가들에게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매일 점심식단을 점거해 농성아닌 농성을 벌인다.
불어터진 면발 아니면 식어버린 짬뽕 국물, 이런식이다.
그리고 식당 주인의 의기양양한 방백, ‘지가 뛰어봐야 벼룩이지.’
'밥그릇 싸움'이 그치질 않고 있다.
의약분업 시행을 두고 벌어진 싸움이 국민들의 발목을 붙잡더니, 이번에는 금융파업으로 세상이 한때 시끄러웠다. 그런데 약사법 개정을 둘러싸고 의사회와 약사회가 모두 반발하고 있어 또다시 파업징후가 예상되고 있다. 졸도할 노릇이다.
'다 먹고살만한 양반들이 왜 그러느냐'는 국민들의 비통함에 이르러선 그냥 할말이 없어진다.
면발이 불어 터지던 , 국물이 식어버리던 당신들이 그냥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쳐진 삭발한 머리에 질끈 동여맨 머리띠를 한 노조대표와 정부 고위관계자의 굳은 표정. 그들에게서 '국민들을 위한' 타협과 대화의 징후는 조금도 발견할 수가 없다.
도남 조윤제선생이 한국인의 자랑으로 여겼던 '은근과 끈기'는 이제 그빛을 발해가는 것 같다. 단지 사회 각계에서는 호통만 불호령 따위가 판을 치고 있다.
국민들은 묻는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왜?"냐고. 왜 그렇게 자신의 몸무게보다 두배가 넘는 피를 빨아먹는 모기처럼 욕심을 부리느냐고 말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도 할말은 없다. 이 어려운 시절에 편안히 먹고 사는건 전체 국민의 5%에 불과하니깐 말이다.
모 잡지 표지에 실린 '모기'에 대한 글은 지금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심정을 잘 대변해 준다.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 10g도 안되는 너와 더이상 씨름하고 싶지 않다. 압사한 너의 시체에 경악하거나 니가 사라진 장농위를 노려보며 버티는 것도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너 돌아가라. 네 친구들, 파리, 바퀴벌레에게도 조심하라고 일러라. 나 오늘 홈키파 사왔다"<200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