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부분에서 전체를 알 수 있다'는 신(新)과학 프랙탈이론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사물을 보는 세계관과 유기체적인 관점이 전제되지 않는 해부학이 '과학'으로 전화할 수 없듯이 일상의 세밀한 묘사는 자칫 사물의 기계적인 해석에 머물수 있다는 의미인것 같다.
모방송국 프로그램을 보면 사물의 일부분을 크게 확대해 놓고 패널들이 사물의 진짜모습을 추리하도록 하는 코너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을 확대해 놓고 나면 일반인들은 '이게 무엇일까'하고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정답은 신속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흔해빠진 사물들이지만 그것을 200배 혹은 300배로 확대해 놓으면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그것은 도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의 표상이기도 하다. 사막 한 가운데 놓여진 기분이라면 적당한 표현일까.
여당의 총리지명을 놓고 'DJP공조'가 부상하면서 온갖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신문의 정치면은 물론 가십란이나 기자수첩의 단골메뉴가 되고 있다.
제16대총선을 앞두고 '공조불가'를 외치던 정치인이 총리지명으로 허리를 숙이던 모습을 발견하면서 신과학의 프랙탤이론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사물의 기계적인 해석에 쉽게 안주하고 마는 우리 삶의 일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면 오버한 것일까?
우리 속담에 '한가지를 보면 열가지를 안다'는 말이 있다. 프랙탤이론이 주창하는 바와는 이론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시사하는 바는 같은 범주에 있는 듯 하다.
총리지명을 야당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인사청문회'도입이 불가피하게 됐다. 총리에 지명된 이한동총리서리는 인사청문회에 앞서 재산공개, 병역의무 등 청문회준비에 골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또한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는 글도 언뜻 눈에 띈다. 근데, '그런식이면 우리는 못한다'며 공조파기의사를 강력하게 내비쳤던 그가 총리지명을 계기로 다시 '공조'앞에서 순한 양이 된것은 우리 정치수준의 현주소를 보는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다.
지금, '미세한 부분에서 전체를 알 수 있다'는 신과학의 프랙탈이론과,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우리 속담 가운데 어느것이 이 상황에 적합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임에 분명하다.
'가려움의 역치'라는 말이 있다. 가려운 곳을 마구 긁어대면 처음에는 시원하지만, 나중에는 긁은 곳에는 큰 상채기라는 아픔이 꼭 남게 되는 법이다.<200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