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남 조윤제 선생이 우리민족의 두드러진 품성으로 자랑했던 "은근과 끈기"는 이미 빛을 잃어 가는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벼락같은 불호령과 앞 뒤 가리지 않는 숨가쁜 돌진 따위가 기세를 떨쳐 간다. "문민정부"에 이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군사문화 찌꺼기가 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대결을 뒤어 넘는 대화의 문화는 좀체로 자리잡지 못한다.
 "흑백논리", 그것은 이 땅을 주름잡아 왔던 정치문화의 부끄러운 증상이기도 하다.
직장의료보험조합에 이어 지역의료보험조합도 전면파업을 결의했다는 소식이다. 세월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이같은 대립의 골은 좀체 메워지지 않고 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했던가.
그래서인가. 언론들은 이 호기를 놓치지 않고 민노총과 한국노총과의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고, 이들은 여기에 편승해 공공연히 위세를 드러낸다.
통합농협 출범을 결사반대하며 길바닥에 몸을 누이는 축협 직원에서부터 의보통합에 목숨을 거는 오늘날의 일련의 사태들. 길바닥에 누워 통합반대를 부르짖는 그들의 외침에서 도남 선생의 은근과 끈기는 찾을 수 없고 벼락같은 불호령과 숨가쁜 돌진만을 발견할 수밖에...
마주 달리는 두 기관차, 평행선의 흑백논리를 이겨내고 넘어서는 길은 없는 것인가. 답답한 나머지 중재의 길을 제시하고픈 열정이 타오르는 터이지만, 그 이전의 길이 먼저 트여야 한다. 열려야 한다.
잘라 말하건대 그것은 대화의 길이다.<200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