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 메인홈 로그인 | 메일재인증 | 회원가입 | 사이트맵
 
 
logo.gif
bn1.gif
      
2024년 02월 22일 05시 47분
 
   
     
 
황경규의고전산책
황경규의책이야기
삐딱소리
진주성
KBS시사논단
촉석루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진주책전시회  더 보기  
14  제8회 진주 진주사람 진주…
13  (new) 제7회 진주 진주사람…
12  (new)제7회 진주 진주사람 …
11  제6회 진주 진주사람 진주…
10  제5회 진주 진주사람 진주…
최근게시물 최근 3일 : 0건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
Home >  글마당 >  황경규의책이야기 >>  일반
   
황경규의 책 이야기 - 21 김중섭의 형평운동
글쓴이 : 황경규 날짜 : 2009-06-12 (금) 09:23 조회 : 9487
○ 경상남도 진주가
우리나라 역사상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는 대표적인 인권운동인
형평운동의 발원지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오늘 황경규의 책이야기에서는
김중섭 교수의『형평운동』이라는 책을 통해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누리고
평등한 대우를 받아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형평운동의 이념에 대한 사회적 의의를 찾아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저자 소개와 함께 형평운동이 무엇인지 소개를 해주시죠?

▶ 지은이 김중섭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마친 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고 영국 헐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경상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는 지은이는
진주지역의 역사와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일제하 3.1운동과 지역사회운동의 발전>과
<일제하 경남도청 이전과 주민저항 운동> 등
여러 편의 논문을 썼으며
저서로는『형평운동-일제침략기 백정의 사회사』
옮긴 책으로는 <안토니 기든스의 정치사회이론 연구>가
있습니다.
형평운동은 1923년 4월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衡平社)의 활동을 말합니다.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社]󰡑라는
뜻을 가진 형평사의 주목적은
가장 차별받던 백정들의 신분해방이었습니다.
이때 백정들 가운데는 일반인을 능가하는 자산가가 많았고,
교육을 통해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분의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시대적 각성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봉건적 성향이 농후한 영남지방에서
신분의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형평운동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형평운동의 일차적인 목적이
󰡐백정󰡑이란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 철폐와
인권 존중, 평등 대우를 주창하는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인간의 권리와 존엄성, 평등󰡑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일깨우는 활동이었다는 점에서
형평운동은 우리 역사상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는
대표적인 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드릴 이 책에는
1923년 진주에 살았던 백정들의 희망,
형평사가 만들어진 목적과 조선의 신분질서 내에서
백정들의 위치와 겪었던 차별
그리고 백정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형평운동의 발상지가 진주가 되었던 이유와 함께
형평운동의 전개로 인한 신분제의 붕괴와 
인간평등 의식의 확산으로 나타난 백정들의 운동과정,
지역사회 활동가들의 참여가 만들어낸 형평사 창립과정,
그리고 형평운동이 남긴 역사적 의의 등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른바 신분해방운동인 형평운동의 발상지가 진주가 된 이유가 있겠죠?

▶ 김중섭 교수는 형평운동의 발상지가
왜 진주가 되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평운동은 전통적인 신분질서를 무너뜨리고
평등한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입니다.
이것은 비단 진주만의 문제가 아니고
당시 사회 전체가 근대사회로 넘어가기 위해
꼭 해결해야 할 과제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놓고 볼때
진주는 19세기 말부터 신분해방 운동과
백정 차별 철폐를 위한 역사적 흐름의 중심에 놓여 있었습니다. 형평사는 비록 1923년에 창립되었지만,
백정해방 분위기는 그 이전부터
이미 진주에서 조성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백정해방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
전국 곳곳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났지만,
진주에서처럼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진주에는 백정해방과 인간 평등 분위기가
부분적으로 형성돼 있었습니다.
더불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추진세력이
1923년 즈음에 진주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형평운동이 다른 지역보다 앞서간
선각적인 위치에 놓일 수 있었고
형평운동의 발상지가 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백정 신분해방 운동의 실천단체인 형평사의 창립은 누가 주도했습니까?
▶ 형평사는 의심할 여지없이 백정 권익을 위한 단체였습니다.
백정들이 주축이었지만,
백정 출신이 아닌 사람들도 참여를 했습니다.
형평사 발기 총회 당시 선출된 임원 가운데
백정출신이 아닌 강상호, 신현수, 천석구 등
진주의 사회활동가를 비롯해 진주노동공제회 회원들이
발기회나 창립총회에 참여했고
진주청년회가 형평사 모임을 위해 회관을 빌려 주었다는 점에서 진주의 사회운동단체들이
형평사 창립을 적극 지원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형평사는
진주의 백정 마을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젊은 백정들이 적극 참여하는 가운데 창립되었습니다.
이렇게 형평운동의 역사는 억압받고 피해 받아 온
당사자들의 아픔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사는 진주사람들의 깨어있는 의식이 어우러지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 지은이가 생각하는 형평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어떤 걸까요?

▶ 김중섭 교수는 형평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인간존중과 평등 대우의 귀중한 정신을 실천했다는 점에
두고 있습니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
제도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한 행동이
바로 형평운동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형평운동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정 공동체와 인류사회 전체의 권익을 위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은이는 또 오늘날에도 여러 형태의 불평등이 존재하고
또 차별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형평운동의 정신이 오늘날 더욱 요구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성별이나 나이, 직업과 종교 등 여러 조건에 따라
갖가지 차별이 난무하고 불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부당한 차별을 없애고 인간평등을 이루기 위해
또다시 형평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오늘 고전의 향기는 어떤 내용입니까?

▶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자신에게 세 가지의 보물이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첫 번째 보물은 인자함이고, 두 번째 보물은 검소함이며,
세 번째 보물은 남의 앞자리에 서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자가 언급한 이 세가지 보물은
도(道)와 덕(德)의 사회적 실천을 말합니다.
당시 잔혹한 전쟁을 수차례 경험한 노자는
나라를 태평하게 하는 것이
이 세가지 보물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인자함은
남을 너그럽게 대하고, 남을 해치는 언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자는 만물에 대해 인자함을 갖는다면
생명을 아껴 살생을 피할 수 있고,
평화로운 기운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검소함은 절약과 억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 제59장에서
‘사람을 다스리고 자연을 섬김에 있어서
아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욕구에 검소하면 정신을 모을 수 있고,
생각에 검소하면 번뇌를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보물인
 ‘남의 앞자리에 서지 않는다’라는 것은
두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낮추어 남과 다투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낮은 곳으로 물러나 자신을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노자는 사람들이 이 세 가지 보물을
실생활에서 잘 운용할 수 있게 되면
무슨 일이든 성공할 수 있지만,
만약 그 반대라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사실을
이 글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게시물은 황경규님에 의해 2010-03-10 18:10:04 삐딱소리에서 이동 됨]

이름 패스워드
비밀글 (체크하면 글쓴이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의 글자를 입력하세요.
   

 
 
사람과나무소개 |  이용약관 |  개인보호정책 |  제휴안내 |  광고안내 |  온라인문의 |   로그인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진주향당 | jjhd.kr
52723 경남 진주시 강남로201번길 3 사업자등록번호: 613-80-58348 T.055-752-8290 HP.010-9669-8290
Copyright ⓒ 진주향당 2001-현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