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보면 ‘왜 이제서야 이 책을 만났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책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드릴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인데요,
바로 신영복 작가의 ‘강의, 나의 동양고전독법’이라는 책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의 엽서’ 등으로
알려진 신영복 작가의 소개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먼저 맛보기를 해보죠?
▶ 작가 신영복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숙명여대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이후,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2006년 정년 퇴임 후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우리들에게 너무 많이 알려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의 엽서’ ‘처음처럼’이 있고
역서로는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은 작가가 성공회 대학교에서
고전강독이라는 강좌로 진행됐던 강의를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따라서 책의 내용이 딱딱할 것 같이 보이지만
이 책은 단순히 동양고전의 내용만을 말하는 책은 아닙니다.
작가는 강의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사회를
동양고전이라는 수술대에 올려 놓은 후
날카롭게 해부하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전에 대한 개론서라기 보다는
기존의 지식과 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은
옛것이라는 것이 과연 오늘날에 무슨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서문과 시(詩) 또 주역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번째 부분에서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노자(老子)에 대해 비교적 자상하게,
또 장자, 묵자, 순자에 대한 설명 그리고 한비자의 역할과
그를 보는 법에 대한 강의내용이 나오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제자백가 이후 불교의 전래가
중국사상체계에 미친 영향과
유교의 재정립에 대한 개괄적 풀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가 동양고전 강독을 하고 이것을 책으로 엮어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 저자가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저자가 처했던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분단과 군사독재에 저항하면서 열정을 쏟았던
학생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도 무기징역이라는 긴 세월을 앞에 놓고 앉아서
자신의 정신적 영역을 간추려 보는 지점에
동양고전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의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은
감옥에서 자기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교도소 수감 당시, 교도소 규정에 재소자는
책을 세 권 이상 소지할 수 없어서
한 권을 가지고 오래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이
바로 동양고전이었다는 겁니다.
○ 사실 동양고전은 일반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책은 어떻습니까?
▶ 사실 동양고전을 섭렵한다는 것은
평생이 걸려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자 역시 동양고전을 읽겠다는 것은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고전에서 문안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시경’ ‘서경’ ‘초사’에서 문안을 뽑기도 하고
‘주역’을 다루기도 하지만,
주로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과 ‘중용’의 독법과 함께
송나라 신유학에 대한 논의도 일부 추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관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하는데,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입니다.
따라서 이 책에는 당대 사회의 당면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를 재조명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관점으로 삼고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양고전을 읽는데 있어서 가장 머뭇거리게 하는 것이
한자입니다.
요즘 세대는 대부분 한문을 공부하지 않는 세대라서
관련된 책을 사는데서부터 주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책은 한자 투성이의 원본과는 달리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성찰과 모색이라는 논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최소한의 원문만을 싣고 있습니다.
따라서 작가는 시집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암기하듯이
원문을 해독하고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좋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 이 책에는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의 학설을 기초로 하고 있어, 일반인들이 읽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갖기 쉬울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아마 평소에 잘 보기 어려운 문장을 앞에 놓고
고민만 한다면 이 책을 읽어 나가기가 어려우실 겁니다.
하지만 작가는 문장의 해석보다는 문장이 가지고 있는 함의를
시대적 상황과 연결시키고
또 자신이 처한 현실과 관련지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는 힘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작가는 논어 위정편의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하고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는 문장을 통해
이론과 실천의 통일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문장을 풀어보면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게 되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작가는 이 문장을 통해
사람들의 주관주의를 경계하는 한편
자기의 처지에 눈이 달려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시각과 이해관계에 매몰되기 쉽다면서
사회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학과 사를 적절히 배합하는 자세를 키워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말하면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며
동시에 특수한 경험에 매몰되지 않는
이론적 사고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영복 작가의 이 책은
막연하게 동양고전을 어렵게만 여기는 독자들을
오히려 고전과 친숙하게 만들어 주는 힘을 가진 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주 훌륭한 선생님을 개인교사로 모시고
편안하게 성현의 가르침을 접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
그런 책입니다.
○ 이번 주 고전의 향기는 어떤 내용입니까?
▶ 논어 안연(顔淵)편을 보면
자공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정치를 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경제와 군사와 백성들의 신뢰라고 대답합니다.
다시 자공이 세가지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고 묻자,
가장 먼저 군사를 버리고
그 다음에는 경제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로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남강댐 물문제를 보는
정부의 시각이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국토해양부가 남강댐 물 부산공급과 관련해
청와대에 ‘경남이 동의를 해놓고 이제와서
정치적 이유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는 것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소위 바를 정(正),
곧 뿌리를 바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정치인 즉, 뿌리를 바르게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바르게 행동하고 처신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하에서
국민들을 잘 살게 해 주기를 기대하기란
우물에서 숭늉찾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이 게시물은 황경규님에 의해 2010-03-10 18:10:04 삐딱소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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