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의 고전산책 5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이 땅의 국민들이 이른바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대는
언제였을까요?
아마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그런 기억은 고사하고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된 지난 시절만 떠올리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불쾌해 하면서 한가지 더 떠올리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 역사속에서
국민들에게 수없이 실망만 안겨준 정치에 대한 기억입니다.
오늘 황경규의 고전산책에서는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 즉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다’는 고사성어를 통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정치란
과연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 이 고사성어의 유래에 대해 먼저 말씀해 주시죠?

▶ 공자의 저서인 노(魯)나라의 역사책 《춘추(春秋)》에서
유래한 춘추시대(春秋時代)는
주(周)나라의 천자(天子)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지방의 봉건(封建) 제후(諸侯)들이 권력을 쥐고 흔들던
혼란기였습니다.
때문에 공자의 사상 가운데 특히 정치사상에서는
각자의 신분 위치에서 제 역할을 올바로 담당하는
'명분론'을 주장하면서 당시의 혼란기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명분(名分)을 잃어버린 당시의 정치 풍조로 인해
정치의 주안점이 백성들에게 있지 못하고
권력과 패권에 있는 것에 일침(一針)을 가한 일화가
바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사납다'는 뜻의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고사입니다.
《예기(禮記)》〈단궁편(檀弓篇)〉에서 출전을 찾을 수 있는
가정맹어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자(孔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泰山) 부근을 지나갈 때
어떤 아녀자가 3개의 무덤앞에서 애절하게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알아보게 합니다.
자로가 그 여인에게 가서 울고 있는 까닭을 묻자
그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전에 시아버지께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또 이번에는 남편과 자식까지 호랑이에게 희생을 당해서
이렇게 울고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이어서 자로가 "그렇다면 어찌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습니까?"하고 물어보니
여인은 뜻밖에도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마을로 내려가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 죽더라도 이곳이 편합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공자는 탄식하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잘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것이다!"
이 외에도 가혹한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습니다.
실학의 집대성자인 다산 정약용은
자신이 젊은 시절 암행어사로 여러지방을 돌아다니며 보고 겪은 부패한 관리들의 횡포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아홉편의 한시를 지었습니다.
그중 유명한 시가 한 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입니다.
다산은 이 시에서 당시 백성들의 생활고를 뼈저리게 느끼고
국민의 공복이어야할 관리들이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시를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갈밭마을 젊은 아낙의 곡소리 기나긴데
관문 앞으로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갓난아이는 배냇물도 안말랐는데
세 사람의 이름이 군적에 올랐다나요.

억울한 하소연 하려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같고，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다네．

자식을 낳고 사는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요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 되는 것이라
거세한 말과 거세한 돼지도 오히려 슬프다 할만한데
하물며 백성이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함에 있어서랴!

부자집들 일년 내내 풍악 울리고 흥청망청　　
이네들 한톨 쌀 한치 베 내다바치는 일 없네．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평하니　
객창에 우두커니 앉아 시 구편을 거듭 읇노라

뱃속의 아이나 죽은 사람에게까지, 심지어 기르는 개에게까지
세금을 물리는 당시의 혹정(酷政)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 원인이 자식을 많이 낳게 만든 자신에게 있다고 개탄하면서 절양한 남편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아내의 절규(絶糾)는
어쩌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정치가 만들어낸
한 편의 비극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고전이 말하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정치란 어떤 것일까요?

▶ 맹자는 공자의 정치이론을 더욱 확장시켜
다음과 같은 정치사상을 주장했습니다.
먼저 왕도정치의 구현을 통해
인의의 덕으로 다스리는 정치를 주장했고,
그 다음으로는 민본주의적 혁명사상을 전개했습니다.
이것은 백성이 가장 귀하고 국가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맹자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 되고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맹자의 이같은 정치사상이
단순히 사전적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이러한 맹자의 정치사상은
현실속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비록 백성들이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잎"처럼
압제에 먼저 몸을 숙이는 듯 보이지만
그토록 무시하는 민초는 사실은 가장 먼저 권력을 탄핵하고
정권을 뒤집을 수 있는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맹자는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소불위라 부르는 조선의 왕들조차도
선비들이 추앙하던 맹자의 "역성혁명론"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역성혁명론의 근거는 맹자가 말한 다음의 말에 있습니다.
"민심은 곧 천심이요, 하늘을 따르지 않는 자는
왕이 아니라 일개 졸부이니 왕좌에서 끌어내려도 죄가 아니다"
현대에 와서 어떤 정치인이
‘정치의 뿌리는 국민에게 있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아마 이 말을 믿는 분은 한 분도 없으실 겁니다.
그만큼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그 뿌리가 너무나 깊습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불신의 뿌리를 캐내기는
이제 어려워졌다는 자탄의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고전에서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줄곧 정치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바르게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해왔습니다.
하지만 공맹으로부터 25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의 정치는
당시와 비교해 볼 때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제는
고전이 말하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의 정의는
새롭게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어떤 정치인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정치가 썩었다고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낡은 정치를 새로운 정치로 바꾸는 힘은
바로 국민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이 말을 한 정치인은 다름아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만약 오늘날의 정치가 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나
정치가 국민위에서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 보다 무섭다고 웅크릴게 아니라
국민이 나서서 그 가혹한 정치의 막을 내려야 한다는
맹자의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는
정치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리고 몸소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이 게시물은 황경규님에 의해 2010-03-10 18:08:33 삐딱소리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