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의 고전산책 30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우리 사회에는 형식을 각박하게 따지거나,
외모만 보고 사람의 능력을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진 조그만 능력이나 지위를 내세우길 좋아하며,
그런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만끽합니다.
옛날 선비들은 이런 사람들을
중간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절하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의 근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고전이 말하는 예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 ‘지나친 형식은 예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실 상황에 따라 지켜야 할 예절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 이학규의 해동악부라는 책을 보면
고려 때의 명신인 문절공 주열이라는 분에 얽힌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문정공 주열은 성품이 맑으면서도 강직했고
시문과 글씨에 능한 선비였습니다.
그가 아직 벼슬이 높지 않았을 때
공무로 어떤 재상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꼿꼿이 앉은 채로 재상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이를 본 재상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문정공을 이렇게 나무랐습니다.
“재상이 말을 할 때는 엎드려서 들어야 한다.”
그러자 문정공 주열이 대뜸 이렇게 반박을 했습니다.
재상지언 복지청(宰相之言伏地聽)
즉 군상지언 당굴지청호(則君上之言當掘地聽乎)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재상의 말을 땅에 엎드려 들어야 한다면,
임금의 말은 땅을 파고 들어가서 들어야 합니까?’라는 뜻입니다.
이 일화는 신분에 따라 지켜야 할 예절이
엄연히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문정공 주열이 예를 알지 못해서
재상에 대한 예를 지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나치게 공손한 것은 예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글은 윗사람에 대한 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에게 갖추어야 할 예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상호 존중의 정신,
그것이 바로 예의 본질이라고 본 것입니다.

○ 사실 예의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닌데, 어쩌면 우리 자신이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건 아닐까요?

▶ 명심보감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한 집안에 예가 있으면 어른과 아이의 분별이 있고,
규방 즉 가정에 예가 있으면 삼족이 화목하며,
조정에 예가 있으면 벼슬의 차례가 있고,
사냥하는데 예가 있으면 군사의 일이 숙달되고,
군대에 예가 있으면 무공이 이루어진다’라고 했습니다.
이 글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현대로 오면서
집안에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없게 된 근본 이유는
옛날과 달리 집안에 예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정이 화목하지 못한 이유는 가정에 예가 없기 때문이고, 나라가 어수선하게 되는 까닭도
벼슬의 차례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를 실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한 집안에 예가 있다라고 말할 때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는 것을 말합니다.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어버이의 날인데도 길거리에서 굶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형제의 사이가 멀어져 원수처럼 지내는가 하면
부모의 재산을 두고 법정다툼까지 벌이는 일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예라고 하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상호존중의 정신에서 출발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곧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부터 예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예의를 실천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사고의 중심이 자신이 기준이 되다보니
상대방을 이해하는 일이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 사소한 예의범절을 기록해 놓은 책이 있다구요?

▶ ‘사소절(士小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 영정조때 한문학의 사대가로 명성을 떨친
이덕무가 예의범절을 숭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도덕적인 사회생활을 통하여 지켜야 할
사소한 예절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남자의 예법은 물론이고,
부녀자의 예절, 어린이의 규범 등을 기록하면서
‘사람의 사람다운 행실은 사소한 예절을 잘 깨닫고
실천에 옮기는데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덕무가 말하는 남자의 예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자는 안으로 네가지 마음가짐과 밖으로 아홉가지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덕무가 말하는 네가지 마음가짐은
어질고, 의롭고, 예의바르고, 지혜로운 것이고,
밖으로 아홉가지 몸가짐은
발은 무겁게, 손은 공손하게, 입은 신중하게, 소리는 고요하게,
머리는 똑바르게, 숨소리는 고르게, 설 때는 의젓하게,
낯빛은 단정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늘이 마련한 도리여서
이것을 잘 닦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어기면 곧 훌륭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훌륭한 행실은 예법으로 우환을 막아내는 성벽이 되는 것이며
훌륭하지 못한 행실은
욕심으로 착함을 해치는 병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사실 예(禮)에 관한 고전의 기록들은 수를 샐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고전이 말하고 있는 예의 본질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자신을 바르게 닦는 일이 가장 중요하며,
그런 뒤에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 나가는 한편,
아주 사소한 예절이라도 몸에 익히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바로 올바른 예를 배우고 실천하는 길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글귀가 있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나를 귀중하게 여기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남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말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예를 실천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