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 황경규의고전산책 > 황경규의 고전산책

황경규의 고전산책 26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인지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최근 막걸리가 인기입니다.
그야말로 세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이 하얀 탁주(濁酒)의 매력에 푹 빠져있습니다.
농사철 논두렁 풀밭이나 허름한 뒷골목 대포집에서나 보던
싸구려 술이 이른바󰡐웰빙酒󰡑로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고전에 나타나는 술에 대한 이야기와
술 마시는 예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요즘 정말로 막걸리 좋아하시는 분들 많은 것 같은데, 그 역사도 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 막걸리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술 중의 하나입니다.
설화에 따르면 단군시절 추수 직후, 햇곡으로 만든 술과 떡,
그리고 소를 잡아서 제단에 올렸는데,
이 술이 바로 막걸리입니다.
‘신농주(神農酒)󰡑라고 불렸던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배꽃이 피면 누룩을 만든다고 해서󰡐
이화주(梨花酒)󰡑라고 불렸고,
탁주(濁酒), 곡주(穀酒), 재주(滓酒), 회주(灰酒), 백주(白酒),
합주(合酒), 탁배기, 가주(家酒), 농주(農酒), 부의주(浮蟻酒) 등이 모두 막걸리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옛날에는 막걸리를 비롯한 일반적인 술은
다른 이름을 갖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아버지가 식사를 하시면서 소화를 돕기 위해 마시는 술을 반주(飯酒)라고 했고,
잠이 오라고 마시는 수주(睡酒),
여름철에 땀 흘리고 출입했다 돌아왔을 때 마시는 술은
약소주(藥燒酒)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손님접대용 술이나 봉제사, 접빈객용 술로는
소동파의 부인의 말처럼
“우리 집에 담근지 오래된 말술이 있으니
언제라도 손님이 와도 좋다”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현부인으로 꼽았다고 합니다.

○ 고전속에도 술에 대한 기록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 술의 종류를 기록하기 보다는
술을 마시는 예절에 대한 기록들이 적지 않습니다.
먼저 논어 향당(鄕黨)편에
‘육수다(肉雖多)나 불사승사기(不使勝食氣)하시며
유주무량(唯酒無量)하사되 불급란(不及亂)이러시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풀어보면 ‘고기가 비록 많지만 밥 기운을 이기게 하지 않으시며, 술은 일정한 량이 없으셨으나 어지러움에 이르지 않게 하셨다.’
라는 뜻입니다.
주자의 주석을 보면
‘술은 사람을 기쁘게 하므로 양을 정하지 않고,
다만 취하는 것을 절도로 삼아,
어지러움에 이르지 않게 하신 것이다.
다만 몸을 훈훈하게 하고 마는 것이 가하다’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자문에도
‘현가주연(絃歌酒讌) 접배거상(接杯去觴)’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뜻은 ‘거문고와 비파로 노래하며 술로 잔치하고
잔을 잡고 잔을 들어 권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현악기와 노래를 차례로 연주함은 술을 권하는 것이고
술잔을 서로 돌리는 것은 기쁨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맹자에는 유연황망(流連荒亡)이라는 글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술과 관련된 글은 망(亡)이라는 글자인데,
망이란 곧 술을 즐기고 싫증을 느끼지 않아서
술과 한치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곧 술을 마시는 것으로써 낙을 삼는 것인데,
여기서 망은 실(失) 즉 잃는다는 뜻으로
때를 폐하면서까지 술을 마시는 것을 말합니다.
맹자는 이 글에서 유연황망
즉 뱃놀이와 사냥과 술을 예로 들면서
임금 혼자서 이같은 것을 즐겨하기 보다는
백성들과 함께 이런 즐거움을 나누라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 술에 대한 폐해가 있다면 당연히 술을 마시는 예절에 대한 글도 있을 것 같은데요?

○ 옛 선인들의 음주예절에 관한 기록은 상당히 많습니다.
먼저 향리에서 술을 마시는 예법인
향음주례(鄕飮酒禮)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서(漢書) 예기(禮記)에 따른 옛 선비들의 음주예절로
구한말까지 향교나 서원에서
학생들에게 교과과목으로 가르치게 했던 예절입니다.
옛 선인들에게 술이란 천지 귀신에게 제사지낼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숭고한 음식이고
늙고 병든 이의 혈기를 돋구는,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약물이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술을 한갓 환락의 도구나
객기의 근본으로 오용해서 가산을 탕진하고
부모를 섬기지 않고 건강을 해치는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성현들이 이를 막기 위해 향음주례를 제정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 향음주례는 일제 강점기때에
의병모의를 하는 모임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일제는 우국지사를 모으는 방법으로
이 의식을 이용하는 것을 적발해
그후에는 이 의식 거행을 금지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술좌석에서 잔이 한바퀴 도는 것을 한 순배(巡杯)라고 하는데,
술이란 대개 석잔은 훈훈하고 다섯 잔은 기분 좋고
일곱잔은 족하고 아홉잔은 지나치므로
일곱 잔 이상은 권하여 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른과 술을 마실때의 예법도 있습니다.
논어(論語) 향당편에도
‘향인음주(鄕人飮酒)에 장자출(杖者出)이어든
사출의(斯出矣)러시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지방사람들이 술을 마실적에 지팡이를 짚은 분이 나가면
따라 나가셨다는 뜻입니다.
이 문장의 뜻을 보면 장자 즉 지팡이를 짚은 분은 노인이고
60세가 되면 향당에서 지팡이를 짚을 수 있기 때문에
노인이 나가기 전에는 감히 먼저 나가지 못하고
이미 나가면 감히 뒤에 남아 있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기(禮記)에 보면 50세에는 집안에서 지팡이를 짚고
60세에는 향당에서 지팡이를 짚고
70세에는 나라안에서 지팡이를 짚고
80세에는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는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지팡이를 짚은 사람은
지역에 따라서 가장 어른이기 때문에
행동거지를 이와 같이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향락적이고 위 아래없는 술문화를 뒤돌아본다면
교훈이 될만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합천의 부음정(孚飮亭)이라는 곳이 술과 관련해 재미있는 기록들이 있다고 하던데요?
▶ 지난 토요일에 부음정을 다녀왔는데요,
부음정은 내암 정인홍이라는 학자가 기거한 정자의 이름으로
기문을 읽어보면 술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음정의 부음(孚飮)은 원래 주역에 나오는 말로
본래 부음무구(孚飮無咎)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孚)자는 믿을 신(信)자로 해석을 하는데요.
따라서 전체적으로 풀이를 해보면
‘믿음을 가지고 마시는 술은 허물이 없다’라는 그런 뜻입니다.
기문을 보면 술을 마시는 경지는
‘하늘에 원망함이 없고 다른사람에게 명예를 구함이 없이
마음을 살펴서 한가롭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가롭고 고요하게 자기를 다스려서
다른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면서
거친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 고량진미를 원하지 않는 것이
술의 진정한 맛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옛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성인들의 말과 행동을 알고
벗이 찾아와 서로 더불어 이택, 즉 도움이 되는 것을
술이 주는 도움이라고 했으며,
푸른하늘과 맑은 날, 주야, 춥고 더운날이 술을 마시는 때이며,
산에 걸린 구름과 물에 담긴 달,
흐리고 맑은 날이 서로 변화하는 것이 술의 안주가 되며,
추운날 홀로 푸르른 소나무와 곧은 대나무,
하늘을 나는 매와 물에서 뛰어 오르는 고기는
술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암은 기문의 말미에 술을 마시는 것은
술을 의지해서 이 어둡고 아득한 세상을 피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기문에 적고 있습니다.
요즘은 선인들의 격조 높은 음주문화는 찾아보기 드물고
폭음과 주사(酒邪)가 예사입니다.
폭탄주를 돌리고 '위하여'를 외치며 술을 마셔대는
기성세대의 무절제한 음주행태를
이제는 젊은 사람들도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시는 분은 물론이고
술과 친숙해지기 시작할 시기에 있는 사람들 역시
주도(酒道)를 제대로 배워
덕과 예를 갖췄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왜냐하면 술 예절은 이제
글로벌시대의 필수과목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게시물은 황경규님에 의해 2010-03-10 18:09:05 삐딱소리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