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의 고전산책 24

일반적으로 세상 물정에 대한 바른 생각이나
판단을 하는 것을 우리는 분별(分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두고는 분별있게 행동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을 두고는, 분별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진실로 완벽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이같은 평가는 불가피합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언제나
그림자처럼 뒤따라붙는 '분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 완전한 사람이 없듯이 사람을 분별하는데 있어서도 완벽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 물론 그렇습니다.
여씨춘추에 '인고난전(人固難全)'이라 해서
'사람은 진실로 완전하기 어렵다'라고 했고
'척지목 필유절목(尺之木 必有節木)이요
촌지옥 필유하적(寸之玉 必有瑕　)'이라 해서
'한 자 되는 나무에는 반드시 마디가 있고,
한 치되는 옥에는 반드시 흠집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쓰임새가 있는 모든 사물에는 흠이 있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흠이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부족한 점이 있고,
남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의 흠은 반드시 있습니다. 따라서 무릇 사람에 대한 판단과 응대는
반드시 인간의 이러한 근원적인 불완전성을
전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장점을 제쳐두고 단점만 가지고 살펴보면
중국의 요임금같은 성인도 부족한 법이 있고,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한가지 실수가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도 천가지 생각을 하면
그 중에서 반드시 얻을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18세기 영정조시대에 활동한 서얼출신의 문인인
성대중(1732∼1809)이라는 선비는
그의 책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분별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착시라는 글에서
'나약함은 어진 것처럼 보이고, 잔인함은 외로움과 혼동된다.
욕심이 사나운 것은 성실함과 헛갈리고
망령됨은 곧음과 비슷하다'라면서
모름지기 분별을 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좀더 풀어보면
속도 없이 물러 터진 사람과 어진 사람은 전혀 다른 것이고,
원리원칙을 지킨다면서 결론적으로는 융통성없이 굴어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잔인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잔인함과 의로움이 혼동되면 아랫사람이 괴롭게 됩니다.
사실 세상을 살다보면 나 아니면 안된다면서
세상의 모든 일을 거머쥐고 욕심사납게 구는 것을
성실함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만약에 이런 사람이 욕심과 성실을 착각하게 되면
'나는 죽어라 일하는데 남들은 놀고 있다'는
푸념만 늘어놓게 됩니다.
그리고 나설 자리와 나서지 않아야 할 자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중뿔나게 나서서 헛소리를 해대는 것도
강직하다고 말하기 곤란합니다.
따라서 망령됨과 곧음을 잘 분간해야만
그 말에 힘이 실리고 행동에 신뢰가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분별하는데 있어서 이런 착시현상은 늘 있어왔습니다.
다만 그 원인은 차이에 대한 인식의 부재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데 있습니다.

○ 항상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씀인가요?

▶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성대중은 질언(質言)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청렴하되 각박하지 않고,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
엄격하되 잔인하지 않고, 너그럽되 느슨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대개 처신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에는 대체로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귀결됩니다. 내가 청렴한 것도 좋지만,
그것으로 남을 탁하다고 내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화롭게 품어 안는 것과
한통속이 되어 휩쓸리는 것도 확실히 다른 문제입니다.
하지만 좋은게 좋다 보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나중에 하향평준화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준을 세워서 엄격하게 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못할 짓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러운 것이 순리입니다.
품이 넉넉해야 하지만 물러 터진것과 혼동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관대한 것과 줏대없는 것은
분명 같지 않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을 마주 대하다보면 착각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송나라의 조형(晁逈)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만함을 고상하다 여기고, 아첨을 예의로 여기며,
각박함을 총명함으로 착각하고,
옹렬함을 관대함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다.'
이 말은 실제로 요즘 세상에 딱 들어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오만한 것, 즉 남에게 뻣뻣하게 구는 것은 건방진 것이지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윗사람 입맛에 맞는 말만 하고
좋아할 일만 골라서 하는 것은 아첨이지
예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판단을 제대로 못해서 흐리멍텅하게 넘어가면서
스스로 마음이 넓다고 흐뭇해한다면
이것은 관대한 것이 아니라 멍청한 것입니다.
결국 성대중의 이 글은
비슷한 두가지를 잘 분간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며
또한 자기에게 좋은 쪽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글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 최근 각종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바 있는 고위직 공무원 예정자의 도덕성 문제와 관련한 글이 있다면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지금의 고위직 공무원에 해당되는
옛날 지체 높은 선비나 사대부는
다음의 세가지 경중만 구분할 수 있다면
훌륭하다고 이를만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면 부귀는 가볍게 되고,
도덕과 의리를 무겁게 하면
문장으로 이름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성명(性命)을 우선하면
재화나 여색같은 것은 우습다'라는 것입니다.
옛날 사대부들은 명예와 절개만 세울 수 있다면
부귀영화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길을 뚜벅뚜벅 걷는 것이
글 잘한다는 명성을 듣는 것 보다
백배는 낫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또한 사람의 도리와 천명에 귀를 기울인다면
재물이나 여색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달리 풀어보면
부귀에 목숨을 걸면 명예와 절개는 멀어지고,
문장으로 이름을 얻으려는 사람은 도덕과 의리를 우습게 보며,
재화와 여색에 빠진 사람은
천명이니 인성이니 하는 말은 귓전으로 흘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를 대입해 보면
오늘날 고위직 공무원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 쉬우실 겁니다. 이처럼 경중의 구분은 사소하지만
그 결과는 서로 거리가 멀다는 것이
성대중이 말한 세가지 경중의 구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대중이라는 선비는
사람을 세 등급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따르면 좋아하고 거스르면 성내는 것을
사람의 일반적인 등급으로 보았고,
따르면 좋아하고 거슬러도 성내지 않는 것은
남보다 한 등급 높은 사람으로
사물을 이롭게 하고 백성을 기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은 따라도 기뻐하지 않고, 거슬러도 성내지 않는 것은
지극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군대의 장수나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이 될만 하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보다 더 많은 등급의 사람이 있겠지만
지금 이 시간 나 자신은 이 세가지 가운데
어떤 부류의 사람에 드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게시물은 황경규님에 의해 2010-03-10 18:09:05 삐딱소리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