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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의 고전산책 21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예기(禮記) 곡례편에 보면
'공식불포(共食不飽)'라는 말이 있습니다.
'더불어 먹을 때는, 혼자서만 배불리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같이 나눔에 있어 홀로 많이 취하지 않는다'는
선현의 가르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공식불포가 단순히 먹는 것에만 한정되는 말 같지는 않은데요?

▶ 옛날에는 먹을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여럿이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고,
혼자 많이 먹어서, 남의 몫을 부족하게 만드는 것을
가장 예의가 없는 행동으로 여겼습니다.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재물을 나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원이라는 책에서는
임재분화(臨財分貨) 내지기염(乃知其廉)이라 해서
재물을 나눌 때의 행위 그 자체로,
그 사람의 염치를 알 수 있다고까지 했습니다.
이같은 말은 단순히 먹고 재물을 나누는 행위 자체로
그 사람됨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늘 삼가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삶의 모든 영역이 권리와 의무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권리는 되도록 많이 누리고
의무는 되도록 적게 지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지상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이러한 인지상정은
오히려 횡포가 되고 맙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사회가 이처럼 각박하게 변해가는 것도
이같은 인지상정이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부딪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남보다는 내 몫을 더 챙기고 싶어하고,
나에게 유리한 분배방식을 제도화하기 위해 다투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편안한 날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식불포라는 말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진정한 나눔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선현의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논어(論語) 이인(里人)편에 보면
방어이이행다원(放於利而行多怨)이라고 했습니다.
풀어보면 '제멋대로 이익을 취하는 행동을 하게 되면
원망이 많이 따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취할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아야 책망이 없고,
다툴것이 아니면 다투지 않아야 원성이 없다'는 말을
늘 가슴에 두어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저절로 지니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재물을 취하는데 있어서도 바른 길이 있지 않나 싶은데요?

▶ 사실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재물은 얻으려고 하고
어려움은 피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기 곡례편에
임재무구득(臨財無苟得)이요 임난무구면(臨難無苟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어 보면 '재물은 구차히 얻지 말고,
어려움은 구차히 면하지 마라'는 뜻입니다.
구차하다는 것은 정정당당하지 못하다는 뜻이고,
당당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행동에 허물이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재물을 구차하게 얻었다는 것은
내 몫 이상의 재물을 얻었다는 것이고,
어려움을 구차하게 면했다는 것은
내 몫 이하의 어려움을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말을 뒤집어 보면
나의 불공정한 이익은 남의 불공정한 손해를 의미합니다.
때문에 남의 불공정한 손해는
반드시 균형을 취하려는 조치가 따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원망과 보복입니다.
따라서 구차하게 얻은 재물과 구차하게 면한 어려움의 끝에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원망과 보복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저절로 삼가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한서 가의전(賈誼傳)편에
이불구취(利不苟取)요 해불구거(害不苟去)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롭다고 구차하게 취하려고 하지 말고,
해롭다고 구차하게 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관직에 임해서는 공평한 것만 한 것이 없고,
재물에 임해서는 염치를 지키는 것만 한 것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사심없이 공정하게 행동하니 꿈자리 마저도 한가롭다'는
작자 미상의 글에서
선인들이 가졌던 예의염치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살다보면 상대방과의 이해가 엇갈릴때가 많은데 이럴때는 어떤 처신이 맞는 것일까요?

▶ 맹자에
'가이취(可以取) 가이무취(可以無取) 취상염(取傷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어보면 '내가 가질 수도 있고, 갖지 않을 수도 있는 경우에
만약 취하게 되면 덕을 상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유리함과 불리함을 구분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일 때
나에게 유리함을 주장하게 되면
순간의 이익은 얻을 수 있어도 덕은 잃게 됩니다.
반면에 불리함을 취하면 순간의 이익은 잃을 수 있어도
덕은 얻게 됩니다.
여기서 덕이란 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 것이 현명한가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완벽하게 다른 사람을 다룰줄 알았던 링컨이
많은 사람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양보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링컨은 자신에게 약간의 정당성밖에 없다면
아무리 중대한 일이라도 상대방에게 양보하라고 했고,
설령 자기에게 정당성이 있는 경우라도
작은 일에는 양보하라고 했습니다.
양보의 미덕이 오히려 자신을 큰 사람으로
키워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서(唐書)라는 책에서도
'평생토록 길을 양보해도 백 보를 넘지 않고,
평생동안 땅을 양보해도 일 단의 면적을 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록 평생동안 양보하는 삶을 산다하더라도
실제로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일 수도 있고,
자신의 덕을 두텁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명심보감 성심편에도
'이익은 같이 누려야지, 혼자 누릴 수는 없는 것이니
혼자만 우뚝 서면 망하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같이 나눔에 있어서 홀로 많이 취하지 않는다'는
고전의 가르침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나눔의 기쁨이 어떤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취하고 양보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염치가 어떤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각박한 세상을 다른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한번쯤 되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게시물은 황경규님에 의해 2010-03-10 18:09:05 삐딱소리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