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의 고전산책 20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우리나라 속담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 알아보는 일이 어렵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충분한 시간만이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고전속에 나타난
'사람을 제대로 알아 보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짧은 시간 안에 사람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어차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 명심보감 교우(交友)편에
'길이 멀어야 달리는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오래되어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그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실 잠깐동안 달려서는
천리마와 평범한 말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평범한 말이라도 짧은 거리는 잘 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리나 되는 먼 길을 잘 달릴 수 있는 것은
천리마 뿐입니다.
먼 거리를 달려봐야 평범한 말인지,
천리마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짧은 시간동안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숨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또한 짧은 시간동안은 잘못 볼 수 있지만
긴 시간은 사람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사람과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만나면 만날수록 진국인 사람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 안에 사람에 대해 내린 판단은
상대방의 위장(僞裝)에 의한 것이거나,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잘못된 것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고전에서는 사람에 대한 판단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겪어 본 후에 내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이해상충을 겪어 본 뒤나, 어려운 일을 같이 해 본 뒤라면 더욱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문자(文子)라는 사람은
'행일기 부족이견지(行一棋不足以見知)요
탄일현 부족위비(彈一弦不足爲悲)'라고 했습니다.
풀어보면 바둑 한 수로 그 실력을 알기에 부족하고,
현 하나 뜯는 것으로 슬픈 곡조를 이루기에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역경(易經)에서는
 '닭이 하늘에 오른들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라고 했고,
악부희 증육대부십이장(樂府戱贈陸大夫十二丈)이라는 글에서는 '녹색의 부평초와 연꽃 잎은 함께 물 속에 있지만,
바람이 불면 연꽃잎은 그대로 있지만,
녹색의 부평초는 이리저리 떠다닌다'라고 했습니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오래 사귀어야 진정한 사람됨을 알 수 있다는 고전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 옛날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가지 않는 그런 세태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는 말씀인가요?

▶ 세상살이가 각박해지는 오늘날에 더 심해지고 있는건
혹시 아닐까요?
사실 호시절에 어떤 존재를 올바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좋을 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련의 순간은
어떤 한 존재의 참모습을 알기 좋은 순간입니다.
만약 상대가 시련에 처한 상황이라면,
그 시련에 대처하는 그의 지혜나 인내력,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상대가 나를 대하는 진정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한유(韓愈)가 쓴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의 한 구절을 보면
당시 세태의 각박함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야
비로소 절의가 드러나는 법이다.
아무런 걱정이 없이 살 때에는
서로 아껴주며 술자리나 잔치자리에 부르곤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눈길을 돌리며 모르는 사람 대하듯 한다.
함정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기는커녕,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돌을 던지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널려 있다.'
이런 글귀를 읽으면서 나 자신은 물론이고
지금 현재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지를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바르게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고전에는 많은 가르침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논어 자한편을 보면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라 해서
'추위를 겪은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고 했고,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광풍이 불어야 억센 풀을 알 수 있고,
혼란한 시대가 와야 충신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많을 것 같은데,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라는 책에
진정한 친구에 대해 정의를 내린 글이 있습니다.
 '一死一生 乃知交情 이요
一貧一富 乃知交態요
一貴一賤 交情乃見'이라 했습니다.
풀어보면
'한번 죽고 한 번 사는일에 있어서는 사귀는 정을 알 수 있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할때는 사귀는 모양을 알 수 있고,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하면 그 사귀는 정을 본다.'는 뜻입니다.
옛날 한나라에 적공(翟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정위라는 높은 벼슬에 앉아 있을때는
사람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 마치 시장같았는데,
사임을 하자 말자
대문앞에 참새가 둥지를 틀만큼 쇠락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시 복직이 되자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드는 모습을 보고
적공이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문구를
대문 앞에 큼직하게 써 붙였다고 합니다.
'인간의 교제는 생사, 빈부, 귀천에 따라 변한다.
즉 그사람이 살아서 돈도 많고 높은 지위에 있을때는
사귀려고 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죽으면 그뿐이다.
몰락해서 돈도 지위도 잃으면 이와 더불어 발길도 끊어진다.'
이 글은 당시 사람들의 얄팍한 마음을 꼬집은 말입니다.
사실 이같은 적공의 한탄은
시대를 지나도 변함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곱씹으며 살았을까요?
아마 지금 이 시간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따라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인정을 가지고 대한다면
상황이 좋다고 해서 신명이 나고,
상황이 나쁘다고 해서 가라않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 번 귀하고 한번 천하면
그 사귐을 아는 것이 요즘 세상이기 때문에
사람을 제대로 사귀고 알아보는 법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홀로 살아갈 수 도 없는 상황이라면
일면만 가지고 사람을 빨리 판단해 버리는 습관을 버리고
느긋하게 자신과 상대방을 살피며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사람을 제대로 사귀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자는
'내게 아첨하는 사람은 나의 도적'이고
'나를 거스르며 싸우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아첨하는 사람이 많게 되면
스스로 자기만족에 빠져 스스로를 잃게 되고,
자신의 명령을 거스리는 사람이 많으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스스로를 잃게 되는 일이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나에게 도적은 누구이며
나를 거스리는 사람은 또 누구인지
한번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게시물은 황경규님에 의해 2010-03-10 18:09:05 삐딱소리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