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의 고전산책 19

○ 오는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요즘 공교육이 무너지고 교사의 지위도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탄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명성이 높은 선생이 있으면, 그를 쫓아 권력에 빌붙으려고 하고, 반대로 신분이 낮은 선생은 제 집에서 먹고 자게 해서
애완용 짐승 기르듯 데리고 있으면서
때로는 부려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상'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 고전에서 스승에 대한 글이 아주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가장 많이 알려진 글이 한유(韓愈)의 사설(師說)입니다.
중국 당나라의 문인인 한유는
반드시 스승을 좇아 도(道)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남의 제자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당시 세태를 개탄했습니다.
한유는 사설을 통해
사람은 모름지기 도(道)가 있는 군자를 스승으로 삼아
옛 성인의 도를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옛날 도가 세상에 행해졌을 때는
배움에 노소(老少)가 없고, 귀천이 따로 없어,
누구든 도가 있는 사람이면 기꺼이 스승으로 삼았는데,
당대(唐代)에 이르러 사람들이 스승을 삼고 제자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풍조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한유는 이 잘못 돌아가는 세상 인정을 개탄하고
이 점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이 글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큰 학문을 이룬
연경재(硏經齋) 성해응(成海應)이라는 선비 역시
사설(師說)을 지어 바람직한 스승상을 이야기 했습니다.
연경재 성해응은 이 글을 통해
권력을 쫓아 스승을 구하는 것은 위인지학을 하는 사람이고,
덕을 쫓아 스승을 구하는 것은 위기지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위기지학을 원하는 사람은 적고
위인지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만 넘쳐나니,
사표(師表)가 절로 땅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유의 사설과 성해응의 사설을 비교해 보면
한유는 다소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과시하는 오만함이
행간에 드러나 문인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성해응은 자신의 현실에 밀착해 당대의 세태를 보여주고
스승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더 큰 가르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성해응이라는 선비가 말하는 바람직한 스승상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 성해응의 사설을 읽다보면
당시의 민간교육제도에 대해 알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17세기 무렵 조선시대에는 집안에서 숙식을 제공하면서
아이를 가르치게 하는 입주 가정교사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관사(館師) 혹은 숙사(塾師)라고 했습니다.
성해응은 이러한 관사의 폐해를 지적했습니다.
관사를 마련해 아이를 가르키는 집안의 자제들은
평소 교만한데다 또 사육하는 듯이 권세를 가지고 스승을 대했고, 스승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는 권위를 세울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꾸짖을 수도 없고 회초리를 들 수 도 없어
그저 묵묵히 자기 일만 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제자들이 스승을 비하하면서 그 가르침을 받게 되니
자제들의 학업 역시 진보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스승이 힘이 없다고
책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스승에게 썩은 고삐를 주고서
사나운 말을 몰도록 하는 것과 같아서
똑똑한 자제들은 이러한 사람을 스승으로 여기지 않고,
또한 스승된 사람은
다만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만 있게 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 이런 습관을 가지게 되면 장성한 후에는
명망이 높아 권력을 쥘만한 사람을 스승으로 삼지만,
한 해가 다 지나도록 학업을 익힐 생각은 않고
다만 그 문인이 되었다는 이름만 빌려서
대중들에게 호가호위하며 떠벌리기만 잘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 스승을 재앙으로 모는 이들도 많은데,
이는 사모하는 바가 권력에 있고,
그 덕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해응은 자제를 가르칠때는
스승에게 가서 공부를 하도록 하고,
관사에 맡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릴적부터 스승의 도리가 엄중하다는 것은 안 다음에
비로소 배움으로 나아가야 옳다는 것입니다.
사실 임금과 아버지는 그 지위가 정해져 있지만,
스승은 정해진 지위가 없습니다.
오직 도가 있는 바를 스승으로 삼기 때문에
그 귀천과 존비를 가릴 수도 없습니다.
덕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고, 권력은 남에게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배우는 사람이 자신을 위한 위기지학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남을 위한 위인지학을 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연경재 성해응은 반듯하지 못한 신분임에도
큰 학문을 이룬 선비입니다.
그리고 성해응의 조부 성효기라는 선비 역시
서얼출신으로 은거하면서 후학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았고 비록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덕으로 학생을 지도해서 큰 성과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 스승에 대한 고전의 가르침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노자(老子)는
'불귀기사(不貴其師)하고 불애기자(不愛其資)면
수지(雖智)나 대미(大迷)호리라'라고 했습니다.
풀어보면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면,
지혜롭다 할지라도 크게 미혹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더불어 노자는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 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을 도와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착한 사람이 자신의 선을 자랑하기 시작하면
바로 거기에서 악이 생겨나고,
악이 들끓으면 악을 몰아낼 수 있을만큼의 선이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어제는 오늘의 스승'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비단 사람만이 스승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스승이 된다는 뜻입니다.
한시외전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앞에 가는 수레가 엎어졌는데
뒤따르는 수레가 경계하지 않으니
뒤따르는 수레도 엎어지고 만다'
앞에 가는 수레가 엎어졌을때는
반드시 그 까닭이 있기 때문에
뒤따르는 수레 역시
그 까닭을 피해야 엎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는 이치가 대체로 이와같습니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앞에서 일어난 일은
현 위치의 내가 바로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앞선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은
그 역시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실패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의 실패로부터 배우는가에 따라서
현자(賢者)가 될 수도 있고, 평범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현자는 남의 실패로부터 배우고,
범인은 자신의 실패로부터 배우며,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실패로 부터도 배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과연 무엇으로부터 배울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신의 스승이 될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황경규님에 의해 2010-03-10 18:09:05 삐딱소리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