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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의 고전산책 18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예로부터 현자, 즉 어진 사람은
웃음에서 울음을 보고, 발전에서 퇴보를 보며,
삶에서 죽음을 본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양이나 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양과 음이 어우러진 태극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아름다움에서 추함을 보고, 선에서 불선을 볼 수 있어야
진정으로 그것을 아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현자들의 삶의 지혜'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동전의 양면을 읽을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 근사록이라는 책에
'모든 존재가 홀로 있지 않고 반드시 그 짝을 이루는 것이
천지만물의 법칙이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양과 음이 어울려 태극을 이루고,
자석에 N극이 있으면 S극이 있으며,
긍정과 부정은 상호 짝이 되며
상호 안팎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현자들은
'좋기만 한 것도 없고, 옳기만 한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다시 풀어보면
'매우 좋은 것에는 반드시 매우 나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경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미녀가 화려한 옷을 입고 어떤 집을 방문했는데,
그 여인은 부(富)의 여신이었습니다.
집주인은 기뻐서 그를 극진히 대접을 하고 있는데,
잠시후에 얼굴이 못생긴 여인 한명이
초라한 차림새로 들어왔습니다.
주인이 누구냐고 묻자 그 여인은
빈곤의 여신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깜짝 놀라면서 그 여인을 쫓아내려 하자
그 추녀는 먼저 온 미녀가 자기 동생이라면서
평생같이 살게 돼 있기 때문에 혼자 갈수 없다고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주인이 추녀를 억지로 쫓아내자마자
곧바로 미녀도 흔적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매사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어우러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점이 없는 나쁜 일은 없습니다.
그와 반대로 나쁜 점이 없는 좋은 일도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완벽하게 한 면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앞에 발생한 상황을 두고
어느 한 면만 보았다면
아직 완전한 이해를 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좋은 것의 나쁜 점을 보고, 나쁜 것의 좋은 점을 봐야만
진정한 이해가 이루졌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만약 이러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남다를 것 같은데요?

▶ 회남자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화여복(禍與福)은 동문(同門)이요
이여해(利與害)는 위린爲隣)이라'
즉 '화와 복이 같은 문으로 들어오고,
이익과 손실은 바로 이웃해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이같은 이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만나게 되는 길흉화복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복이 찾아와도 환호작약하지 않고,
반면에 화가 찾아와도 비탄에 깊이 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화가 복이 될 수 있고
복이 화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원나라의 희회기(熙晦機)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다음과 같은 시(詩)를 썼습니다.
'인간만사는 새옹지마니
배개를 밀치고 빗소리 들으며
잠이나 자세'
이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른바 평정심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정심이 바로 이런 지혜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고 만약에 이런 평정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길흉화복이 목전에서 전개되고 있어도
잠을 청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원이라는 책에는
'이익되는 바를 얻었으면 반드시 그 손해 보는 바를 생각하고, 이루는 것을 즐겼으면 반드시 허물어지는 것을 돌아보라'라고
했습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이러한 것을
되돌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지라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어찌보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행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강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주의깊게 들어봐야 할 말이 아닌가 싶은데요?

▶ 장자는
'저것 아닌 것이 없고, 이것 아닌 것도 없다.
이것은 또한 저것이고 저것은 또한 이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다소 철학적이긴 하지만 풀어보면
특정 시간과 공간, 그리고 관계로 얽힌 그물 속으로 규정되는
인간사에 있어 늘 옳은 진리가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냥 특정 시간, 특정 공간, 특정 관계에서
잠시 유효한 것일 뿐입니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이것은 저것이 되고, 저것이 또한 이것이 되는' 까닭입니다.
가끔 일반적인 진리라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 그리고 문화적 컨텐츠도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인 논리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상황과 시점에 따라 한정된 적합성을 가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유일한 불변의 진리라고 강변한다면
그것은 협소하고 배타적인 지적 체계를 가졌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송나라 시인 구양수는
자신의 주장만이 진리라고 말하는 사람을 두고
이런 시를 썼습니다.
'자연의 이치에는 변화가 있고
인간사의 이치도 늘 완전한 것이 아니네
옳고 그름은 서로 바뀔 수 있고
버리고 취하는 것은 용단에 달려 있다네'
그리고 회남자는 다음과 같은 글로써
자기주장을 강변하는 사람을 희롱했습니다.
'천하의 옳고 그름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옳음을 구하는 자는 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것을 구하는 것이고,
그름을 배척하는 자는
그릇된 것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편한 것을 배척하는 것이다'
사실 이 구절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던져봐야할 물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특히 요즘처럼 다양성의 시대를 살면서
혹시라도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이
자신의 합리화를 위한 것이 아닌지,
그리고 자신이 싫어하고 배척하는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불편한 것들이 되어 돌아올까 걱정되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를
스스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현자들이 말하는 삶의 지혜는 어떤 것일까요?
노자는 천하 개지 미지위미 사악이요(天下皆知美之爲美斯惡已)
개지 선지위선 사불선이(皆知善之爲善斯不善已)라고 했습니다.
풀어보면 '온 천하가 다 아름답다 라고만 하는 것은 나쁜 것이고, 선을 선이라고만 아는 것도 좋지 않은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장자는 '사물이란 본디 서로 관련되어
이로움과 해로움은 서로 불러 들인다'라고 했고,
한시외전에는
'세가지 이익이 있으면, 반드시 세가지 근심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현자들은 한 가지 이익에 기뻐하지 않고,
한가지 근심에 슬퍼하지 않는 중용의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살림살이를 온전히 지켜내기가 쉽지 않는
이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만약에 현자가 바라보는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아울러 가져 봅니다.

[이 게시물은 황경규님에 의해 2010-03-10 18:09:05 삐딱소리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