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의 고전산책 43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인문학의 위기가 대학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대학은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상아탑이 되기보다는
자본을 숭상하는 금자탑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고전을 통해 풀어 본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최근 대학들이 인문학중에 철학이나 사회학 등 비인기 학과의 퇴출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 인문학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를 하는 학문입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인문학은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문학은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물사이,
사람과 자연사이, 사물과 사물사이 등
여러 가지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학문의 기초가 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학들은
오히려 인문학 죽이기에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명분은 대학의 세계화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돈 안되는 인문학의 퇴출’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새 기업의 하청업체가 되어버린 대학은
학생들이 하나의 주체적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부품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근 인문학의 위기는
퇴출위기에 놓인 학과의 위기도 아니고,
인문학이라는 학문의 위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위기이며, 나아가 국가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 오늘날의 교육과 옛날교육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잘 알려진
중국 제나라의 정승인 관중(管仲)이 쓴 관자(管子)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일년지계 막여수곡(一年之計 莫如樹穀)이요,
십년지계 막여수목(十年之計 莫如樹木)이며,
백년지계 막여수인(百年之計 莫如樹人)이라’는
유명한 글귀가 있습니다.
풀어보면 ‘일년을 계획하는데는 곡식 심는것만큼 좋은 것이 없고, 십년을 계획하는데는 나무를 심는것 만큼 좋은 것이 없으며,
백년을 계획하는데는 사람을 심는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일수일획자곡야(一樹一穫者穀也)
즉, 하나를 심어서 하나를 얻는 것이 곡식이고,
일수십획자목야(一樹十穫者木也)
하나를 심어서 열 개를 얻는 것이 나무이며,
일수백획자인야(一樹百獲者人也)
하나를 심어서 백을 얻는 것이 교육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교육은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위인(爲人) 즉 교육을 통해서
어떤 사람을 만들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중세기의 교육은 훌륭한 성직자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이었고,
조선왕조의 교육은 선비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교육은 성직자를 기름도 아니고
선비를 기르기 위함도 아닙니다.
단언컨대, 오늘날의 대학교육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부품을 생산해내는
공장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지금 선진국의 예를 들면서
대학교육의 선진화를 이야기하는 대학들을 보면서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교육의 기초적인 상식조차
모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교육의 본질은 우수한 학생을 뽑는데 있지 않고,
우수한 학생을 길러내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버드가 좋은 대학이라면
그것은 입학기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좋은 교육을 베푸는데 있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인문학의 위기가 곧 인문학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이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기만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무의미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릇’만 있고 ‘내용’이 없으면
진정한 학문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릇에 담아야 할 내용물인 인문학이 버려지고
오로지 그릇만 챙기게 된다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인문학이 위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고대 이래로 인문학이 위기였던 적은 없습니다.
인문학은 가장 오래동안 학문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학문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문제는 인문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에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지금 대학은 인문학의 가치를 생각하기 보다는
학생을 철저히 등급화시키고 효율성의 제물로 만드는데만
광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학부제를 강요해서 학문간의 서열을 조장하고
대학평가를 통해 교육의 본질을
외형적인 조건에 부속시키는 일 따위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한 것은 인문학의 위기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젊은이들이 성인들의 탐욕이 빚어내는 인간서열화를
그대로 두고 보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아직 대학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서(四書)중의 하나인 대학(大學) 서문을 보면
사람이 태어나 15세가 되면 대학에 들어가면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책의 그 어디에도 학생들의 등급을 나누거나
기업의 부속품이 되기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옛날의 교육은 경전을 자신을 다스리는 도구로 삼아
성인군자 또는 현인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었을 뿐입니다.
높은 벼슬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그 다음의 일에 불과했습니다.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회사를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가 아니고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 있는 회사라고 했습니다.
그는 1월 아이패드, 6월 아이폰 출시 발표회에서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애플의 혁명이
그저 기술만 갖고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첫해에 중퇴하긴 했지만,
진보적 인문학 전통이 강한 리드대학 출신입니다.
그는 대학중퇴 후에도
이 학교의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청강했는데,
그것이 훗날 맥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비록 외국의 경우이긴 하지만
인문학의 위기가 곧 인문학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