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옛날 선비 가운데
처사(處士) 또는 유일(遺逸), 은일(隱逸) 등으로 불린
재야의 선비들은 결코 권력이나 벼슬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벼슬뿐 아니라 부와 명예도 멀리했습니다.
반면에 이들 선비들은 임금의 잘못된 국정에 대해
죽을 각오를 하고 상소를 올려 고칠것을 탄원해
당시 시대의 양심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조선시대 임금을 꾸짖은
반골선비들의 정신과 그들의 삶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금도 처사라는 용어를 가끔 쓰긴 하는데 조선시대의 처사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죠?

▶ 조선시대에 쓰인 처사의 개념은
지금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처사는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草野)에 묻혀 살던 선비, 혹은 세상 밖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살며 일반 사회를 멀리하던 선비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벼슬을 아예 하지 않은 사람뿐 아니라,
관직에 일단 임명되었지만 출사(出仕)하지 않은 사람,
즉 벼슬아치가 되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사람도 처사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관직을 받았지만
모두 사퇴하고 전혀 출사하지 않는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이나 남명(南冥) 조식(曺植),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 등을 처사라고 불렀고,
잠시 출사했다가 은거를 계속한 우계(牛溪) 성혼(成渾),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 등과 같은 선비도
처사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왕조시대에 임금은 곧 법이었습니다.
따라서 임금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당시로서는 큰 죄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처사들은 임금 알기를 우습게 알았습니다.
임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도 예사였습니다.
임금이 과거시험에도 붙지 않은 그들에게 높은 벼슬을 내리고,
아무에게나 내주지 않는 역마를 내리면서까지
서울로 불러 올렸지만,
그들은 꿈쩍 않고 사직의 상소만 계속해서 올렸습니다.
이에 임금이 사정하다시피 하면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고 호소를 해도
그들은 가볍게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처사들은 학문과 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이른바 처사들은
현대인들이 우상처럼 받들어 모시는
권력과 돈과 명예를 탐하지 않고
청빈한 가운데 오직 자기의 신념과 의지대로 살다간
참다운 은자(隱者)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처사인 남명 조식 선생의 단성소(丹城疏)처럼 많은 선비들이 상소를 올려서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잘 아시다시피 남명 조식선생은
명종 10년 11월에 경상도 단성현감에 제수되자
임금에게 소(疏)를 올려 사퇴의 변을 토로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단성소(丹城疏)입니다.
그는 상소의 첫머리에서
관직을 내린 것을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강력하게 임금을 비판했습니다.
그 상소 가운데 일부 표현은
당시 남명 조식 스스로 죽음을 초래할 정도의 강력한 내용이어서 명종과 문정왕후의 노여움을 사 죽음 직전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단성소의 내용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자전(慈殿)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궐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으시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단지 선왕의 한낱 외로운 후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백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인심을 무엇으로 감당해 내며
무엇으로 수습하시겠습니까’
사실 이러한 상소는
목숨을 걸지 않고서는 감히 입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이치럼 남명선생의 단성소는 부정부패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윗사람의 불의한 행동에 분연히 일어나 항의할 수 있는
공직사회가 되어야 하고,
목이 잘릴까 두려워 불의에 눈을 감고 만다면
정의로운 나라는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 진주의 선비인 수우당 최영경선생과 관련한 일화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 수우당 최영경은 본래 한성에 살면서
문을 닫고 자취를 숨겨 그를 아는 자가 드물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진주에 은거하면서 조식선생을 따라 배웠는데,
기절과 의리를 숭상하고 선악을 따지기를 좋아해서
조식선생이 정인홍 다음으로 대우를 했다고 합니다.
수우당 최영경은
선조 6년에 6품직의 벼슬이 내려졌지만 사양했고,
다시 사헌부 지평에 제수되었지만 상소를 올려 사직하고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선조수정실록에 실린 수우당의 상소를 보면
‘지금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는가 하면
붕당이 풍조를 이루고 기강이 날로 무너지니,
분명하게 살피고 위엄으로 진정시켜
편당의 무리들이 멋대로 속셈을 부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이 대간에게 있는데
옛사람이 담당하게 하더라도 수행하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신처럼 아둔하고 무식한 자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내용으로 벼슬을 사직하고
당시의 붕당정치로 인해 문란해진 정치의 폐혜를 꼬집었습니다.
그리고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라는 선비는
당시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상소를 올렸습니다.
‘전하는 왕위에 오른 뒤 도대체 무엇을 하셨습니까’
여헌선생은 인조반정 이후
조정전반이 개혁을 소리 높여 외쳐댔지만
결국 모든 것이 용두사미로 그치고
오히려 개혁 이전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돌아가고만
당시의 정치행태를 이처럼 강력하게 비판을 한 것입니다.
이 일은 400년전의 일이지만
오늘날의 정치행태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의 반골선비인 처사들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바로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고,
시대의 부조리에 반항하며,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려했던 그들의 시대의식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비록 임금이라 할지라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 필요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일신의 영달을 위해 부조리에 눈감고,
정의에 눈을 돌리는 풍조가 만연한 오늘날의 사회가
조선시대 반골선비들의 엄중한 꾸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