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의 고전산책 39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열자(列子)에 취금지시(取金之時) 불견인(不見人)이라 해서
‘돈을 취할 때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눈이 가려져
결국에는 스스로 화를 자초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옛 성현들의 돈에 대한 생각은 어땠을지 궁금한데요?

▶ 사실 유학을 하는 사람이
돈을 밝히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유학을 대표하는 인물인 공자의 삶과
돈을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옛날 선비들을 봐도 굶어죽을지언정
스스로 밥벌이에 나서는 경우가 잘 없었습니다.
선비로서의 체통과 자존심을
굶어 죽는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선비들을 청렴하다고 칭찬하는게 유학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인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유학을 대표하는 인물인 공자는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해집니다.
과연 공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옛날 선비들처럼
체통과 자존심 때문에
굶어 죽는 일이 생기더라도 방에 앉아서 책만 읽었을까요?
논어 술이 편에 보면
돈에 대한 공자의 인식이 어떤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공자는 논어 술이편에서
‘돈을 벌어 부(富)를 구할 수 있다면,
비록 말채찍을 잡는 일이라도
하라고 하면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구절의 참 뜻은
부(富)라는 것은 구해진다고 해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면 공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따르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공자의 경제관이
어떤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자의 제자들 중에는 부자가 된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특히 공문십철(孔門十哲) 중의 한 사람인 자공(子貢)은
재물을 많이 모아
사실상 공자의 경제적인 후견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 그렇다면 공자가 생각하는 돈, 혹은 경제관은 어떤 것입니까?

▶ 경제적 이득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던 공자는
다만 ‘견리사의(見利思義)’,
즉, 이(利)를 추구함에 있어
반드시 의(義)를 전제해야 한다는 말로써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거친 밥을 먹고 맹물 마시며, 팔뚝을 접어 베개로 삼아도
즐거움은 그 가운데 있다네.
의롭지 않은 부귀는 내게 뜬구름과 같다’
즉 공자는 눈앞에 큰 이익이 놓여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의(義)에 반하는 일이면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공자의 이러한 말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기업들의 윤리경영을 보면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열자(列子)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제나라에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아침, 시장으로 나가 장사하는 상인 옆으로 다가가서는
몰래 돈을 훔쳐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때 그 장면을 목격한 관리가
그를 잡아서 돈을 훔친 이유를 다그치자 이렇게 말합니다.
“돈을 훔칠때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그저 돈만 보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중국 진(秦)나라의 재상 여불위(呂不韋)가 선진(先秦)시대의 여러 학설과 사실(史實)·설화를 모아
편찬한 책인『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리고 『허당록(虛堂錄)』이라는 책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축록자불견산 확금자불견인(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
즉,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하고,
돈을 움켜쥐려고 하는 자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이 글은 사람이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다 보면
주위를 돌아다볼 여유마저 잃을 정도로 무모해져서
결국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옛 성현들이 이렇게 수없이 경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욕심 앞에 눈이 흐려져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거상(巨商), 즉 크게 성공한 상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도 바로 이 견리사의(見利思義)에 있다고 봐도 될까요?

▶ 공자는 ‘백성이 잘 먹고 잘 살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첫번째 목표라고 늘 말했습니다.
공자의 이러한 가르침은 제자인 자공에게 전해졌고,
자공의 장사치다운 혼(魂)은
19세기 중국의 거상 호설암(胡雪巖)에게로 이어졌습니다.
호설암은 오늘날 14억 중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상인으로
‘장사의 신’이라 불리는 거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설암은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인물로
눈 앞에 아무리 많은 이익이 보여도
절대 남을 속이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호설암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원칙 아래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익과 신의를 바꾸지 않았고,
이익과 정의를 바꾸지 않았으며,
이익과 정직을 바꾸지 않았고,
이익과 성실을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KBS 드라마가 하나 있습니다.
제주도의 비천한 기녀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거상으로 올라서 어려운 이들을 도왔던
김만덕의 삶을 그린 사극인 ‘거상 김만덕’이라는 드라마입니다.
거상 김만덕은 조선 정조때의 여자 상인으로
제주도에 흉년이 몰아치자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사온 쌀을 구휼미로 기부하여
기아에 시달리는 제주도 민중을 구제해서
조선이라는 시대성을 훌쩍 뛰어 넘어
진정한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위대한 여성이었습니다.
오늘날 이익추구에만 열을 올리고
사회적 기여에는 등을 돌리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지금부터 배워야 할 것은
호설암과 같이 도덕성을 확보하는 일이며,
거상 김만덕과 같이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공자나 열자의 가르침처럼 욕심에 눈앞이 흐려져
결국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