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의 고전산책 38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조선시대에 있어 정자(亭子)는
선비들의 정신적 휴식을 통한 재충전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신이 어지럽고, 시각이 옹색해질때
누정에 올라 마음을 다스렸고,
때로는 벗들과 함께 정담을 나누었으며
바람과 달의 주인이 되어 시(詩)를 짓기도 했습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소요처이자 안식처였던 정자(亭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있어 정자는 어떤 의미였습니까?

▶ 옛날 선비나 처사, 은일자들은
비록 정자가 누추하고 오르기 불편해도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저 산수를 울타리 삼고,
운무(雲霧)를 병풍 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별서 정원은 물론이고
사찰과 서원, 지방 관아에도 정자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정자는 수행과 강학, 휴식 공간으로 활용됐을 뿐만아니라 향리를 찾은 사신이나 관리들의
휴식과 연회를 위한 공간으로도 사용됐습니다.
사실 일반 살림집의 경우에는 고대광실이라도
건축의 내력을 쓴 기문(記文)이 없는 경우가 허다한데,
누각과 정자의 경우에는
반드시 그 이름을 알리는 편액이 결려있고,
창건기나 중수기 또는 탐방객들이 남긴
제영(題詠)도 없는 곳이 드뭅니다.
진주촉석루기(晋州矗石樓記)를 지은 하륜(河崙)은 기문에서
“누관(樓觀)을 경영하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의 여사(餘事)이기는 하나,
그 흥하고 폐하는 것으로써
인심(人心)과 세도(世道)를 짐작할 수 있다.
누관 하나가 폐하고 흥하는 것으로써
한 고을의 인심을 알 수 있고,
한 고을의 인심으로써 한 때의 세도를 알 수 있는 것이니,
어찌 여사로만 돌리고 작게 여길 수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향리의 누각은 향시를 치르는 장소로도 사용됐으며,
세도가들의 자제들이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여름 논밭에서 땀 흘리고 고생하는 백성들이
잠시 햇볕을 피해 쉬는 휴식처로 애용되었는가 하면,
춘삼월 호시절에 꽃구경 나온 사람들이
봄바람을 쐬며 즐기는 곳으로도 이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정자나 누각은 우리 민족의 생활속에서
주거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 건축물로
대자연과 교섭하면서 우주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을 찾으려는 정적인 풍류의 공간이자
육체적 휴식과 집단 풍류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 올 여름 휴가 때 가까운 정자나 누각을 찾아 보는 것도 괜찮을것 같은데, 몇 곳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우리나라 옛날 정자의 대부분은 계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계곡을 낀 지역은 대체로 수목이 무성하고 돌이 깨끗하며
분위기도 그윽해서 예부터 은인군자들이 선호한 곳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선비들에게 있어서 계곡물은
단순히 자연 풍광의 하나가 아니라
도(道)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는 도체(道體)로써 존재했고,
또한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로 인식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풍광이 뛰어난 계곡 인근에 정자 짓기를 선호했고, 그곳에서 계곡물을 관조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풀기위해 사색했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이번 휴가때는
함양군 안의면과 사하면 사이의 화림동(花林洞) 계곡에 있는
거연정(居然亭)과 군자정(君子亭), 동호정(東湖亭)을
한바퀴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거연정의 주인은 화림재(華林齋) 전시서라는 사람이
1640년경에 지은 정자입니다.
전시서가 정자의 이름을 거연정으로 짓게 된 것은
중국 송나라의 성리학자인 주자(朱子)의 시 ‘정사(精舍)’에 나오는 거연아천석(居然我川石)이라는 구절중에 나오는
거연을 따서 이름 지은 것입니다.
거연(居然)이라는 말을 굳이 풀이하자면
‘오래 전부터 나와 자연이 하나된 속에 그렇게 살고 있다’정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거연정은 대개의 정자가
풍광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 있는 것과 달리
자연의 풍광속에 들어앉아 있습니다.
정자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계곡에 즐비한 기암괴석과 계곡을 따라 멀고 가까운 산들이
정자주변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정자를 가운데 두고 다투어 흐르는 맑은 시냇물과
군데군데 보이는 소나무,
희고 넓은 암반들이 계곡의 운치를 더하는 곳이
바로 거연정입니다.

○ 군자정과 동호정 역시 옛 선비들의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곳이죠?

▶ 함양 화림동 계곡가에 있는 군자정(君子亭)은
커다란 바위 위에 서 있습니다.
이 바위는 조선 초기 문신인 정여창이
처가인 이곳 봉전마을에 머물렀을때부터
‘영귀대(詠歸臺 )라는 이름을 가진 풍류의 상징물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잘생긴 바위에
고사와 관련되거나 풍류가 깃든 이름을 붙이고,
그곳을 즐기는 자신을 성현들의 행적과 풍류에 투영하여
자족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바위에 흔히 붙였던 이름으로는
군자정 앞의 바위인 영귀(詠歸)를 비롯해서
장자(莊子)가 말한 어락(魚樂)의 경지를 상징하는 ‘관어(觀魚)’, “창랑 맑은 물에 갓 끈을 씻겠다”고 한
어부사의 주인공 굴원과 관련된 ‘탁영(濯瓔)’,
그리고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한다는 뜻의
산청 덕천서원 앞에 있는 세심정(洗心亭) 등이 있습니다.
군자정이 영귀대 바위 위에 세워진 것은
1802년 거연정의 주인인 화림재 전시서의 후손들이
정여창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조상의 충절을 기리는 마음이 빚어낸 공간인 동호정(東湖亭)은
선조때의 충의지사인 동호(東湖)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후손인 장대진, 장대헌 등이 1985년에 세운 정자입니다.
동호정 안에는 은퇴한 선비나 재야지식인들의 독서당 답게
공자를 비롯한 유교성현들의 일화를 담은
고사인물화가 즐비합니다.
이것은 동호정이 은퇴한 선비들의 소요처인 동시에
독서하는 곳과 강학하는 곳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동호정은 비록 장만리의 후손들이 지은 근대 정자이지만
조상의 정신세계를 계승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산청군 덕산면 덕천서원 맞은 편에 있는 세심정(洗心亭)과
함양의 농월정(弄月亭),
거창군 위천면에 소재하고 있는 요수정(樂水亭)도
여름 휴가철에 꼭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