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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의 고전산책 37(2010년 7월 6일)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있어 공부(工夫)는
성인(聖人)이나 현인(賢人)이 되기 위해
마음을 닦고 이치를 궁구하며
인격을 드높이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공부 담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조선시대 선비들이 말하는 공부(工夫)는 어떤 것일까요?

▶ 공부(工夫)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요즘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조선 명종(明宗)때 임금이 신하들에게
‘공부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조정의 대신들이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임금에게 성인의 학문을 가르치는
최고의 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참찬관(參贊官) 벼슬을 하던
조원수(趙元秀)라는 사람이 공부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공부(工夫)의 공(工)은 여공(女工)의 공(工)자와 같고,
부(夫)는 농부(農夫)의 부(夫)자와 같다.
말하자면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여공이 부지런히 길쌈을 하고, 농부가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풀어보면, 공부란
땀 한방울을 흘린 것이 쌓여서 곡식이 여물어 수확을 하고,
베를 한 올씩 짜서 천을 만들 듯,
그렇게 노력을 기울이면 노력한 것만큼
소득을 거둘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후로 조원수가 임금에게 아뢴 말이
공부의 개념을 말한 훌륭한 답변으로 인정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 조선시대 선비들의 독특한 공부방법이 있다면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조선시대 유학의 거두였던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공부법을 보면
공부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퇴계의 제자중에 월천(月川) 조목(趙穆)이라는 선비는
임금에게 스승의 학문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황 일생근고학문공부 노이익독
(李滉一生勤苦學問工夫老而益篤)’
풀어보면 ‘이황은 일생동안 학문공부를 부지런히,
그리고 고달프게 했는데 늙어서도 더욱 독실히 하였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학자는 빼어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힘들고 고달픈 공부를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학문 역시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각고의 노력을 했는가에 따라
그 성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퇴계는 몸소 보여준 대표적인 선비입니다.
퇴계와 쌍벽을 이룬 남명 조식 선생의 공부방법을 보면
스스로에게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남명선생은 성성자(惺惺子)라는 쇠방울을 차고 다니며
자신의 마음을 경각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성성(惺惺)’이라는 것은
마음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조식선생은 그 방울소리를 들으며
잠시도 정신이 흐린 상태에 빠지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
성호(星湖) 이익(李瀷)은 남명 조식선생의 이런 공부를
우리나라 선비공부의 한가지 특징으로 삼아
악부시(樂府詩)를 짓기도 했습니다.

○ 이외에 다른 선비들의 공부방법도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우암(尤庵) 송시열(宋時烈) 선생은
궤좌공부(跪坐工夫)와 과언공부(寡言工夫)를 했다고 합니다.
궤좌공부는 꿇어앉아서 하는 공부로 정신을 해이하게 하지 않고 마음을 공경하게 하는 공부이며,
과언공부는 말을 적게 하는 공부로
명료한 핵심에 도달해 변죽을 울리지 않는 공부를 말합니다.
그리고 노촌(老村) 임상덕(林象德)이라는 선비는
수묵공부(守黙工夫)를 했다고 합니다.
수묵공부는 ‘침묵을 지키는 것을 공부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임상덕은 마음을 가득 채우지 못한 점을 반성하며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임상덕이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공부를 삼은 것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돌이켜 반성을 했다는 것이며
이것은 진정한 공부에 대한 자기반성문이었습니다.
남명조식의 문인인 동강(東岡) 김우옹(金宇顒)은
절기공부(切己工夫)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선조임금에게 올린 글에서
‘학문은 단서가 많기는 하지만,
마음을 거두어 들여 안으로 향하게 해서
몸과 마음 위에서 자기에게 절실한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즉 절기공부라는 것은 ‘내 몸에 절실한 공부’라는 뜻입니다.
이외에도 인재(訒齋) 최현(崔睍)이라는 선비는
무자기공부(無自欺工夫) 즉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를 주문했고,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라는 선비는
12자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12자 공부는 ‘무자기(無自欺) 신기독(愼其獨)
규모대(規模大) 공부밀(工夫密)’로 자신을 속이지 말고,
혼자만 아는 바를 삼가고, 규
모는 크게, 공부는 정밀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있어서 공부란 어떤 의미였습니까?

▶ 조선시대 선비들이 중시했던 공부는 위기지학(爲己之學) 즉
마음을 다하고 이치를 궁구하며
인격을 드높이기 위한 공부가 최고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공부는 그 자체의 본질은 잊은 채
말단만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대의 변천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긴 하지만,
공부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공부한다는 것은
목적지도 없이 무조건 항해하는 형국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성인들의 공부는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는 곧 마음을 갈고 닦아 선을 가득 채우려고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천리에 순응하게 되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오늘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우암 송시열의 궤좌공부나 과언공부,
또는 임상덕의 수묵공부를 강요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진정으로 공부가 무엇이며,
무슨 공부를 해야 하며,
왜 해야 하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아야만 진정한 공부와 학문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