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의 고전산책 61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가 선정됐습니다. 풀어보면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낸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지난 10년간 선정된 사자성어를 통해 바라본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올해의 사자성어인 장두노미(藏頭露尾)가 가진 의미를 먼저 살펴보죠?

▶ 장두노미(藏頭露尾)는
‘진실을 숨기려고 애쓰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속으로는 감추면서 들통이 날까봐
전전긍긍하는 태도를 빗대는 말이기도 합니다.
중국 원나라의 문인 장가구(張可久)가 지은
『점강진․번귀거래사』와 왕엽(王曄)이 지은 『도화녀』라는
문하작품에서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원래 이 말은 ‘머리가 좋지 않은 타조가 사냥꾼에게 쫓기게 되면 머리는 덤불속에 숨기지만 꼬리는 미처 숨기지 못하고 쩔쩔 맨다’는 뜻으로
‘몸통을 감추고 그림자마저 숨긴다’는
장형익영(藏形匿形)도 비슷한 의미로 쓰입니다.
장두노미(藏頭露尾)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힌 것은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한미 FTA협상,
새해 예산안 졸속 통과 등 수많은 사건이 터질때 마다
정부가 진실을 덮고 감추기에 급급했을 뿐
제기된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교수들은 현 정부가 공정한 사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이명박 정부는
불공정한 행태를 반복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고,
천안함 침몰과 검찰의 편파수사 등
의혹이 남는 사건들이 유독 많았던 것도
장두노미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힌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반대 여론이 높은 한미 FTA타결 문제를 두고
정부가 잘한 일이라고 강변하는 모습이
장두노미의 의미와 잘 맞아 떨어진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볼때 교수사회가
장두노미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것은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어두운 시대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장두노미 이외에도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에 대해서도 설명을 좀 해주시죠?

▶ 장두노미(藏頭露尾)에 이어
서린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라는 뜻을 가진
반근착절(盤根錯節)이 선정됐습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처리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건을 이르는 말로《후한서》<우후전(虞詡傳)>에 나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골육상쟁의 관계를 상징하는
자두연기(煮豆燃箕)가 선정됐습니다.
이 말은 콩(豆)을 볶는데(煮) 콩깍지(箕)를 태운다(燃)는 뜻으로 형제끼리 서로 미워하고 들볶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글의 출전은 삼국시대 조조의 맏아들인 조비(曹丕)가
왕위에 올라 셋째아들인 조식(曹植)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사이에 시(詩)를 짓지 못하면
큰 벌을 내리겠다’고 하자
조식은 이른바 ‘칠보지시(七步之詩)라는 유명한 시를 짓습니다.
이 시의 첫 구가 바로 자두연기(煮豆燃箕)입니다.
그리고 ‘안전할 때 위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계우포상(繫于包桑)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이 말은 주역(周易)에 보이는데
『역왈기망기망(易曰其亡其亡)이라야
계우포상(繫于包桑)이라 하니라』라는 글이 있습니다.
풀어보면 ‘역에 가로대 그 망할까 그 망할까 하여야
우북한 뽕나무에 맬 것이라 하니라’라는 뜻입니다.
즉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지금
위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보다는 발전했지만
아직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는 의미의
‘혹약재연(或躍在淵)’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습니다.

○ 지난 10년간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통해 한국사회의 모습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해마다 이 때가 되면 각 계층별로 사자성어를 통해
한 해를 되돌아 보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습니다.
특히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 선정을 시작한
2001년부터 올해까지 선정된 사자성어를 보면
지난 10년간의 한국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2001년에는 ‘깊은 안개속에 들어서게 되면
길을 찾기 어려운것 처럼
무슨 일에 대해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인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선정되었고,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2002년에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선정됐습니다.
2003년에는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정책혼선이 빚어지면서
갈피를 못잡는 모습을 빗댄 ‘우왕좌왕(右往左往)이 선정됐고, 2004년에는 대통령 탄핵과 수도이전을 두고 벌어진
치열한 정치공방을 빗댄 말로
‘같은 파 끼리는 한 패가 되고 다른 파는 배척한다’는 뜻의
‘당동벌이(黨同伐異)’가 선정됐습니다.
2005년에 선정된 상화하택(上火下澤)은
화합하지 못하고 대립과 분열을 일삼은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은 사자성어이고,
2006년에는 ‘여건은 조성됐지만 일이 성사되지 못해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꼬집은
밀운불우(密雲不雨)가 선정됐습니다.
2007년에는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이 선정됐고,
2008년에는 미국산 쇠고기 파문과 촛불시위,
4대강 정비 등을 놓고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빗대서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에 비유한 호질기의(護疾忌醫),
그리고 지난해에는 일을 정당한 방법이 아닌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에 비유한
방기곡경(房岐曲逕)이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한국사회를 사자성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사자성어는 간결하면서도 다양한 이야기와
사회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대중의 설득력을 이끌어 내는데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지난 10년간 선정된 사자성어를 통해 본
한국사회의 모습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보다는
절망에 가까웠다는 사실이
세밑풍경을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내년에는 국민들에게 한국사회의 희망을 전해주는 사자성어가
선정되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