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의 고전산책 59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예기(禮記)라는 책을 보면
‘군자는 이익을 홀로 다 차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몫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말연시가 다가오는데도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손길이 적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고전이 말하는
진정한 도움의 손길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어려운 이웃을 위한 배려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요청되는 일이 아닌가 싶은데요?

▶ 동서양을 불문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글귀들은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성경과
공자가 지은 시경(詩經)에도 서로 비슷한 글이 있습니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책에 이처럼 비슷한 글귀가 있다는 것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는
동서양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전(大田)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추수를 하면서 저기에 볏단을 남기고
여기에 벼 이삭을 남기는 까닭은 살림이 어려운 과부를 위함일세’
구약성서 <레기위>에도 이와 비슷한 뜻을 지닌 글이 있습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발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서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며,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해 버려 두라’
실제로 나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오랫동안 행해져왔습니다.
이것이 동양에서 말하는 이른바 중행(中行)이고,
서양에서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즉
고귀한 자의 책무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대표하는
경주 최부자 집의 가훈(家訓)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집의 가훈을 보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한 해 만석 이상의 수입을 얻지 말라.
사방 백 리 이내에는 굶는 자가 없게 하라.
재산이 있으니 높은 벼슬을 하지 말라.’
이러한 가훈은 곧 없는 자와 있는자의 균형을 추구하는
중행(中行)이 되는 것입니다.
최부자집이 삼백년 이상 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중행의 지혜를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역경(易經)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군자는 많은 것을 취하여 적은 것에 보탬으로써
사물의 균형을 유지하고 공평하게 한다’
이렇게 한다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허물이 적어지고
적어도 올바른 삶을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웃과 나누는 삶을 실천하라는 명언들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소개를 좀 해주시죠?

▶ 격언연벽(格言聯璧)이라는 책에
‘재난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때맞춰 내린 비 보다 달고,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은 응달의 얼음보다 차갑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베품의 삶을 실천하지 않을 경우
당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한 경계의 말도 있습니다.
순자(荀子)라는 책에는
『유이불시(有而不施)면 궁무여야(窮無與也)라』라는
글이 있습니다.
‘있을때 베풀지 않으면 궁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한다’라고 해서
늘 베품의 삶을 실천하도록 독려하는 글입니다.
그리고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글도 있습니다.
여공이라는 책에는
 ‘마땅히 헐벗고 굶주린 사람의 처지를 알아야 하며
여우 털옷이 따뜻하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명예욕을 가진 존재입니다.
따라서 자랑스러운 것은 드러내려 하고
부끄러운 것은 감추려고 하는 것이 명예욕입니다.
때문에 남을 돕는 사람은 그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남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숨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의 인지상정을 넘어서
남의 인지상정을 배려해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앞서 말한것 처럼
때 맞춰 내린 비 보다 달콤한 삶을 사는 사람이자
진정한 나눔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고전이 말하는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 송명신언행록(宋明臣言行錄)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인생하처불상봉(人生何處不相逢)이리오』
풀어보면 ‘인생이란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글귀의 뜻을 잘 말해주는 것이
묵자(墨子)가 말한 다음의 명언입니다.
묵자는 ‘벼슬자리에 있다고 해서 늘 귀하지도 않고,
일반 백성이라 해서 언제까지나 비참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즉, 수시로 입장이 변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모름지기 박하게만 살지 말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접을
상대방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된다’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늘 양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음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은 자신이 칼자루를 쥐고 있지만
다른 어떤 날에는 자신이 칼날을 쥐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의 갑(甲)이 내일의 을(乙)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곤궁해질 것을 대비해서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일이 삶의 일부가 되어야만
어려울 때 비로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회남자(淮南子)라는 고전에서는
모름지기 군자(君子)는
‘남의 약점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지도 않고,
또한 남의 잘못에 편승해 궁지에도 몰아넣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올바른 삶의 태도를 지닌 가운데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좌전(左傳)이라는 책에서도
 ‘원한이 어찌 밝게 드러나겠는가,
드러나지 않은 원한을 대비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챙기는 삶보다는
나누는 삶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부 모금단체의 비리로 인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손길이 줄어들면서
실제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나누는 삶이란 어떠한 조건을 전제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와 도움을 펴고자 한다면
그것으로 족(足)한 것이 바로 나눔의 정신입니다.
올 겨울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의 손길이
가득해지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