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규의 고전산책 47

이어서 황경규의 고전산책입니다.

○ 오늘 고전산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 얼마전 한 편의 공익광고가
전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 든 적이 있습니다.
공익광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 입니까?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 참된 교육의 시작입니다.」
이 공익광고는 부모가 가지는 마음과
학부모가 가지는 마음의 모순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늘 고전산책에서는
고전이 말하는 자녀교육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부모에게는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과 자식의 출세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함께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아마 이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을 겁니다. 말로는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건강은 당연한 것이고
남들보다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채근하게 되는 것이 요즘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그리고 독서를 늘 강조하면서도
막상 아이가 독후감 상장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입으로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책만 읽고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지기도 합니다.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교육현실이 문제라고 혀를 차면서도,
외고나 특목고 이야기가 나오면 솔깃해서
어느 학원인지 눈길을 주는 것이 요즘 부모들의 모습입니다.
결국 요즘 세상에는 부모보다는 학부모가 대다수라는 말입니다.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안의 자녀들이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였기 때문에
부모들의 성화 역시 지금 못지 않았습니다.
특히 대대로 벼슬을 해온 집안 자녀의 경우에는
과거시험 스트레스는 엄청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들어 발간되고 있는
명문가의 자녀교육 방법을 담은 책들이
단기간내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들어가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 명문가의 자녀 교육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 얼마전 500년 명문가의 자녀교육이라는 책이 발간되면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습니다.
자녀교육의 해법을 일깨워주는
훌륭한 지침서로 정의된 이 책에는
뛰어난 인재를 키워낸 조선시대 명문가들의 특별한 교육법이
적혀 있습니다.
풍산류씨 서애 류성룡 종가는
평생 책읽는 아이로 만드는 것이 자녀교육의 노하우였습니다.
서애는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절에 들어간 두 아들에게
‘어린시절 산사의 적막한 등불 아래서 읽은 책들이
평생 동안의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다’는 퇴계의 시를 들려주며
공부에 매진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성이씨 석주 이상룡 종가는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논어(論語)를 가르치는 가풍을 이어
자긍심있는 아이로 키웠고,
재령이씨 운학 이함 종가는
‘밑지고 살아라, 그러면 세상을 얻는다’는 독특한 철학으로 때로는 손해 볼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진성이씨 퇴계 이황 종가는
훌륭한 친구와 함께 공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해남 윤씨 윤선도 종가는 자녀를 ‘문화(文化)의 바다’에 빠트리고, 나주 정씨 다산 정약용 종가는
아버지가 자녀교육의 매니저로 직접 나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양 조씨 호은 종가는
‘죽을 먹을 지언정 더 넓은 세상으로 유학을 보내,
최상의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한다’고 강조하면서
지혜의 전령사인 할아버지 할머니를 이야기꾼으로 모셔
따뜻한 사랑과 인간다운 성품을 길러낼 것을 강조했습니다.

○ 고전이 말하는 참된 교육의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옛 사람들은 역자교지(易子敎之)라 해서,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고 남과 서로 바꾸어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교육의 방법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온전하게 유지하면서도
자식을 잘 가르치고자 했던 옛 사람의 지혜에서 나온 것입니다.
책읽는 바보로 불렸던 이덕무는
자녀교육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위인친지도(爲人親之道)는 엄여애지간호(嚴與愛之間乎)아’
풀어보면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방법은
엄격함과 사랑함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정갑손(鄭甲孫)이라는 선비는
자녀교육에 있어 엄격함의 필요성을 보여준 선비입니다.
정갑손이 함길도 감사로 갔다가 도성으로 가는 길에
자신의 아들이 과거 합격자 명단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서둘러 도성에 도착한 뒤
과거시험을 주관한 시관(試官)을 찾아가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늙은 놈이 감히 나에게 아양을 떠는구나,
내 아들놈은 아직 공부가 되어 있지 않거늘,
어찌 임금을 속이고 과거에 합격을 시켰느냐’
정갑손은 그 자리에서 아들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마침내 시관도 파면시켰다고 합니다.
아들의 이름을
과거 합격자 명단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아버지가 될 수 있어야
정직하고 훌륭한 아이로 키울 수 있다는게
정갑손이 말하는 진정한 자녀교육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고 이준경이라는 선비 역시 영의정에 재직하고 있을때
홍문관의 교리와 수찬을 임명하게 되었는데,
그 명단에 자신의 아들이 포함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내 아들놈은 아직 홍문관 관원이 되기에 부족함이 많다.
아들은 아비가 잘 아는 법’이라고 말하면서
그 자리에서 아들의 이름을 지워버렸다고 합니다.
요즘은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으로 인해
자식을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이 사소한 처벌이라도 받게 되면 학교에 찾아가
교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공공장소에서 자식이 제멋대로 행동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쳐도 아이의 기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제지하지 않는 부모도 있습니다.
고전이 말하는 자녀 교육법의 공통된 분모는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에 엄격함과 사랑함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도록 항상 생각하고 노력해야
자식도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공익광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들은 아이들의 ‘부모’가 되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학부모’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