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後期

인조 10년(1632)에 종래의 4면 111리를 4면 62리로 통폐합했을 당시 서면 원당리(元堂里), 수곡리(水谷里), 이하리( 下里) 등 3개리로 개편되었다. 
조선후기로 넘어오면서 수곡면은 정치․사회․경제적인 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된다. 당초 남명학파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던 경상우도의 사림들은 동서남북 분당 이후 주로 내암 정인홍의 주도하에 북인계열에 속해있었다. 북인세력은 인진왜란 이후 서서히 정계를 장악했고 특히 광해군때는 다른 정치세력들에 의해 거의 배제되는 지경에 놓인다.
인조반정으로 인해 북인세력들은 대대적으로 거세가 되었고 게다가 영조때에 일어난 정희량의 난은 경상우도 사림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게 된다. 이후 우도 사림들은 독자적인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남인이나 서인으로 흡수돠면서 침체되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생산력의 발전에 수반해 새로운 상품경제가 발달하고 전국 곳곳에 정기적인 시장이 형성되어 간다. 수곡면에서도 서면일대에 세곡을 모으는 창고가 백곡에서 창촌으로 옮겨오면서 수곡장이 생긴것이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진주목 조를 보면 경남지역의 큰 시장을 언급하면서 진주장(2, 7일장), 반성장(3,8일장), 문산장(1, 6일장)과 함께 수곡장만 소개할 정도로 수곡장은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각서원 창건

1610년(광해군 2)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인 하항(河沆)을 모시기 위해 대각사를 세웠다. 이후 손천우, 하응도, 김대명, 이정, 유종지, 하수일 등 일곱 명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9월 중정일에 향사하고 있다. 1869년(고종 6)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8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의 배치는 대문채와 서원을 직선 배치하고 그 사이에 동재, 서재를 두어 전체적으로 口자형의 구성을 보인다. 서원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후 툇집 형식이며 정면의 기둥은 배흘림을 둔 두리기둥이다. 가구는 5량 구조로 장식이 되어 있고, 양 툇간에는 퇴보를 걸었으며 홑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동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규모는 작지만, 평면 및 입면 각 부의 비례가 잘 이루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서원과 동일한 부재를 사용하였으며 5량 가구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서재는 동재에 비해 격이 떨어진다. 동재와 규모나 실의 구성은 같으나 마루를 꾸민 형식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그것은 부엌을 둔 구성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5량 가구에 우진각 지붕형식이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에 우진각 지붕형식이다. 담장의 아랫부분은 돌각담의 형태로 위에 토담형식을 가미하였다.
대각서원은 전체적인 건물 배치가 무난하고 부재의 사용과 비례의 적용 등 조선 후기 건축의 여러 기법들을 잘 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


낙수암 창건

낙수암은 송정 하수일을 위한 재실로 1789년(정조 13)에 송정의 7세손인 함와(涵窩) 하이태(河以泰)가 창건하였다.
낙수암은 진양하씨 재실로 송정 하수일을 위해 세워졌다. 낙수암에는 진주 사곡리 진양하씨송정종택소장책판이라는 진양하씨 송정종택에서 보관하고 있는 4종의 책판 판목이 한 때 보존되어 왔던 곳이기도 하다. 이 책판들은 16세기 후반 남명학파의 면모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최근 진양하씨 후손들이 송정 하수일을 기려 낙수암 입구에 '송정하선생사적비(松亭河先生事蹟碑)'를 세웠다.

수곡과 진주농민항쟁

조선 철종 13년(1862) 2월 14일 진주지역에서 일어난 최초의 농민항쟁인 진주농민항쟁은 수곡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최고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유계춘이 바로 수곡사람으로 남명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조계(潮溪) 유종지(柳宗智)의 9대손이었다.
농민항쟁 거사를 위한 첫 도회가 당시 진주 서면의 수곡리 덕천강변 수곡장터에서 열렸다.
진주농민항쟁 전개과정을 살펴보자진주의 농민항쟁은 그동안 누적된 삼정문란과 경상도우병사 백낙신(白樂莘)의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유계춘(柳繼春) 등이 농민들을 이끌고 일으킨 대규모 농민운동이었다. 엄격한 신분제와 자급자족적 경제체제에 바탕을 둔 지주(地主)·전호제(佃戶制)가 근간을 이루고 있던 조선왕조의 봉건적 사회체제는 17, 18세기에 들어와 점차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농업기술과 상품경제가 발전하면서, 많은 부를 축적한 일부 평민·천민들의 신분 상승운동, 노비들의 도망, 그리고 몰락 양반층의 증가로 점차 신분제가 동요되고 있었다.
이 같은 사회 변화와 함께 부세(賦稅) 체계도 변화하였는데, 공물 수취를 토지세로 전환한 대동법(大同法)과 농민의 군포 부담을 경감하는 균역법(均役法)이 시행되면서 일반 백성들의 부담이 줄어든 듯했지만, 반면에 여러 폐단이 생겨났다. 게다가 농민들에게는 환곡(還穀)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부담이 덧씌워졌다.
원래 환곡이란 춘궁기에 관청에서 농가에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가 가을 수확기에 거두어들이는 농민 구황책이었다. 다만 운영과정에서 원곡이 축나는 분을 보충한다는 명목으로 1할의 이자를 붙여(모조, 耗條) 거두고 있었다. 그런데 17세기 이후 국가재정이 부족해지자, 환곡 모조의 일부를 재정에 충당하기 시작하였고, 세도정권기에 가서는 중앙의 각 기관은 물론 지방의 기관들도 독자적으로 환곡을 설치, 운영하여 주요한 재정원으로 삼았다.
그런데 환곡의 운영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창고의 곡식이 줄어들게 된다. 이를 포흠(逋欠)이라 하였는데, 그 주된 요인은 서리와 수령들의 중간횡령이었다. 이처럼 환곡이 줄어도 중앙에 납부해야 할 환곡의 이자와 축난 곡식은 반드시 마련해야 하였다. 이를 채우기 위해 시행된 것이 도결(都結)이다. 도결이란 관의 각종 재정이나 부세의 모자라는 부분을 충당하기 위하여 토지에 새로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정은 진주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환곡의 포흠분이 주민의 토지에 전가되어 징수되기 시작한 것은 1855년(철종 6) 때부터였다. 그런데 징수가 계속되고 양이 많아지면서 주민의 불만이 커졌고, 1861년에 부임한 목사 홍병원(洪秉元)도 도결을 시도하였다. 그러던 중 진주에 위치한 우병영에서도 이를 틈타 병영의 환곡 포흠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병영의 재정도 조선 후기에 와서는 병영곡을 확보하여 이를 예하의 각 읍에 분급하여 환곡으로 운영하고, 그 모조를 중요한 수입원으로 삼게 되었다. 진주는 병영의 소재지였기 때문에 그 양이 다른 고을보다 훨씬 많았다. 그런데 이런 병영곡의 운영과정에서도 포흠분이 증가해 병영 재정은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갖가지 탐학으로 진주민에게 원한을 샀던 경상우병사 백낙신은 1862년 1월 약 6만냥을 통 단위로 부과시키는 통환(統還)을 결정하였다. 진주목의 도결 결정 직후 병영의 통환이 결정되자 주민들은 더없는 충격을 받았다.
한편, 조선 초기부터 많은 인물이 배출되고 있던 진주에서는 유향소(留鄕所)를 중심으로 한 사족들의 지배체제가 형성되고 있었다. 사족들은 향회(鄕會)를 통해 유향소의 좌수·별감 등을 선출하였고, 그들을 통해 향리들을 통제하고 부세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조선 성리학의 극성기인 명종·선조연간에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더불어 영남 성리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어 학계를 주도해왔던 남명(南冥) 조식(曺植)은 진주 지리산 자락의 덕산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학풍은 관직에 연연하지 않는, 은둔적인 산림학풍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현실 참여에 있어서는 과격하고, 때로는 저항적인 기질이 강하였다. 그의 학문은 경상우도 사림 전체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남명을 위해 세운 덕천서원(德川書院)은 남명학파의 총본산으로서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서원이 있는 진주는 우도 사림을 결속하는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경상우도에 거점을 둔 남명학파는 선조 이후 전개되는 붕당정치에 하나의 축으로 참여하면서 당시 정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곽재우(郭再祐) 등 우도 사림들의 눈부신 의병활동으로 입지가 강화되어, 선조 말년에서 광해군대에 걸쳐 그들은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광해군 대에 남명의 수제자인 정인홍(鄭仁弘)을 중심으로 한 대북정권은 임해군(臨海君)·영창대군(永昌大君) 등 형제를 죽이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에 유폐하는 패륜을 저지르게 된다. 이 때문에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 광해군은 왕위에서 쫓겨나고 정인홍을 비롯한 대북파 인사들은 철퇴를 맞았다. 이와 함께 이 세력의 근거지인 우도지역은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억압과 소외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의 입지 확보를 위해 경상우도 사족들은 대거 남인화(南人化) 되어 갔다.
게다가 1728년(영조 4년)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에 안음현(安陰縣)의 정희량(鄭希亮)을 비롯한 우도 사족의 일부가 깊이 개입됨으로써 우도 사족들은 큰 타격을 입는다. 남명학파의 위세가 침체되자, 우도 사림들은 남인·노론으로 분화되어가면서 전반적으로 침체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경(敬)과 의(義)를 중시하고 저항적인 성격이 강한 남명학풍의 전통을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18세기 이후 사족 중심의 향촌지배체제가 약화되고, 수령 및 향리층과 신흥계층이 결탁한 새로운 수탈구조가 형성되었다. 사족들도 그 수탈의 대상으로 전락될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그들의 불만은 고조되어갔다. 남명학풍의 맥을 이어가고 있던 진주 사족들은 이런 수탈체제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진주농민항쟁의 초기 단계를 사족, 그 중에서도 몰락 양반층이 주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진주농민항쟁의 주도세력은 안핵사 박규수(朴珪壽)의 조사 보고서에 잘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진주농민항쟁과 관련하여 100명 정도의 죄인을 제1급 3명, 제2급 7명, 제3급 19명, 제4급 24명, 제5급 24명, 제6급 16명 등 6등급으로 나누어 각각의 죄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주요한 인물들로는 제1급에 유계춘과 김수만(金守萬)·이귀재(李貴才), 제2급에 이계열(李啓烈)·박수익(朴守益)·정순계(鄭順季)·곽관옥(郭官玉)·우양택(禹良宅)·최용득(崔用得)·안계손(安桂孫) 등이 거론되고 있었다. 초기부터 항쟁을 계획하고 진행시킨 인물들로는 이명윤(李命允)·유계춘·이계열 등이 있다. 이들은 각기 사족, 몰락 양반층을 대표하고 있었다.
진주농민항쟁의 최고 지도자인 유계춘(1815~1862)은 바로 몰락 양반에 속했다. 그는 문화유씨(文化柳氏)로서, 남명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조계(潮溪) 유종지(柳宗智)의 9대손이었다. 유종지는 두 번이나 참봉직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은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도성에 끌려가 신문당하다가 44세의 나이로 억울하게 죽게 된다. 그 후 그는 성균관 유생들의 상소 등에 의해 누명이 벗겨지고 대각서원(大覺書院)에 배향됨으로써, 그 가문의 지위는 다시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의 후손대에 가서 가문 위세가 점차 침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손들은 대대로 수곡리·원당리에서 거주하고 있었지만, 재지기반이 거의 없는 잔반으로 몰락해 있었던 것 같다.
유계춘은 35세 되던 해 홀어머니 진양정씨(晋陽鄭氏)를 따라 원당리에서 가까운 축곡리 내평촌으로 이주하였다. 이 무렵부터 그는 환곡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향론을 주도하고, 읍과 감영, 그리고 나아가 비변사(備邊司)에까지 등소(等訴 : 여러 사람이 연명하여 관청에 상소함)를 올리는 등 진주지역 내에서 중요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진주농민항쟁 때 논의를 이끌고 실질적인 항쟁준비를 지도한 것도 그였다.
1861년 겨울 목사 홍병원이 도결을 계획하자, 진주 주민들은 진주목과 영에 이것의 부당함을 호소하였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 우병영에서도 덩달아 통환을 결정하였다. 이에 진주 주민들은 이 조처를 취소시키기 위해 다른 방법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쟁의 초기 논의는 1월경에 박수익(朴守益) 및 사노 검동(儉同)의 집 등 주도 인물들이 거주하던 축곡리에서의 몇 차례 회합, 즉 이회(里會)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유계춘·이명윤 등 여러 명의 동리 사람이 참석하였다. 이때 집회 장소를 수곡(水谷) 장시로 정하고, 각처에 통문을 발송하였다.
이때까지의 이회(里會)는 등소를 목표삼아 읍회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통문을 발송한 이후 지도부의 계획이 바뀌었다. 이 무렵 인근 단성현(丹城縣) 사족들의 관에 대한 투쟁 소식이 진주에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2월 2일 박수익 집의 모임에서 이런 변화가 보이는데, 유계춘은 이 날 새벽, 이명윤과는 아무런 상의가 없이 읍의 장날을 이용하여 사람을 읍내에 보내 새로 작성된 통문을 장시 내에 붙였다. 통문의 내용은 이전에 발송한 통문과는 달리, 철시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이는 이명윤 등 유력 사족층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었으므로, 이명윤은 이에 반발하여 모임에서 이탈하였다. 그러나 유계춘 등은 이미 준비되었던 읍회를 대중집회로 확산하기 위해 통문을 여러 벌 베껴 돌리고, 초군 좌상 이계열의 요청에 따라 초군에게 돌릴 회문(回文 : 여러 사람이 돌려 보도록 쓴 글)도 작성하였다.
이후 2월 6일 첫 도회가 열렸는데, 그곳은 진주 서면의 수곡리 덕천강변 수곡장터였다. 수곡도회는 읍 전체의 회의였으므로 고을 내의 각지에서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그런데 도회 개최과정에서 참석한 자들의 논의도 “읍에 정소를 하고 안 되면 감영에 정소하자”는 측과 “철시하자”는 측 등 두 계열로 나뉘었다. 수곡도회 초기에는 앞의 견해를 내세운 자들의 의견이 채택되어 의송 대표를 뽑아 감영으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중도에 유계춘이 계획한‘철시’의 주장이 다시 제기되면서 논의가 새로이 진행되었다. 이후 지도부의 계획이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면서‘주된 여론’으로서 확산되어갔다.
1862년에 일어난 진주농민항쟁과 수곡면은 따로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1862년 2월 2일 내평리에서 첫 모임을 가진 뒤 들불처럼 일었던 진주농민항쟁이 수곡장터 집회를 계기로 운동방향의 극적 전환을 가져 온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곡면은 진주농민항쟁에 있어 분수령이 된 수곡장터 집회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1862년 2월 2일

덕천강가에 자리잡은 진주목 관아 서쪽 내평마을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령과 향리들의 계속된 주민 수탈 때문에 진주지역 주민들이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고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한 모의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채택된 방법이 철시(撤市), 즉 주민들이 상인과 함께 시장을 철거하고 집단시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1862년 2월 2일 덕천강가 내평마을 박수익의 집에서 일어난 이 일이 바로 그 유명한 ‘진주농민항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진주농민항쟁의 시발지 유곡집회

진주농민항쟁의 시발지는 진주읍에서 서남방으로 30리쯤 떨어진 유곡동이었다. 이곳에 살던 유계춘, 김수만, 이귀재등이 농민봉기에 대한 최초의 모의를 가졌다. 이 최초의 모의일시는 기록에 보이지 않아 확실히 알길이 없으나 아마도 1862년 1월중에 있었던 것 같으며 그 장소는 같은 마을에 사는 박수익의 외방객실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이들 주모자들은 농민을 불러 일으키는 방법과 그 모인 군중을 이끌어 나아갈 행동 계획도 논의한 듯 하며 또 언방(諺榜)도 지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부정한 지방관리에 항거하여 봉기할 것을 결정하게 되기까지에는 복잡한 사정과 오랜 시일을 요했을 것이므로 최초의 발논일시(發論日時)를 꼬집어 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것은 적어도 전년 가을부터는 농민의 불평불만이 높아져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할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곡동에서 리회(里會)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 회수와 참가인원수도 확실치 않다. 다만 성공적인 거사를 위해서는 적어도 3차 이상은 모의를 하지 않을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곡동 리회(里會)에서 농민봉기를 결의한 주동자들은 보다 규모가 큰 會合[회합]을 갖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2월중순에 유곡동의 서편에 있는 수곡장시에서 재회합을 가졌는데 그 참가인원은 적어도 10명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곡장시에서 도회가 열린지 며칠 안되어서 드디어 부정관리에 대한 본격적인 농민항쟁이 시작되었다.

수곡집회와 운동방향의 극적 전환

농민항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대중의 힘을 동원해야 만했다. 이를 위해서는 농민대중이 공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집회가 필요했다.
대중집회를 통해 고을의 일을 함께 논의하고 의견을 수렴하며 여론을 확산시키고 나아가 항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계춘이 계획한 도회(都會 대집회)는 옛날의 향회와는 달리 농민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집회였다. 즉 이 집회는 일종의 민회(民會)의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1862년 2월 6일 첫 도회가 열린 곳은 진주 서면 수곡리 덕천강변의 수곡장터였다.
진주지역에서는 서면과 남면이 동면과 북면보다 농경조건이 나았다. 조선후기에 번창하고 있던 장시의 수가 동면은 2개, 서면은 5개, 남면은 6개, 북면은 2개로 상업활동에 있어서도 서면과 남면이 더 왕성했던 것이다. 사족들도 특히 서면쪽에 몰려 있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수곡장터가 있는 수곡리 창촌 부근에는 수곡창이 세워져 있었다. 수곡창은 원래 수곡리 북쪽의 백곡리에 있었는데 17세기 초 광해군 때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 수곡창은 수곡리 뿐만 아니라 주위의 서면의 동곡, 운곡, 종화, 북평 등 하동군 옥종리 일대와 단속, 파지, 소남, 사월, 백곡 등 지금의 산청군 단성면 일대, 시천(산청군 시천면), 삼장(산청군 삼장면), 이하, 가서, 원당 등 수곡면 일대, 대야천리(지금의 하동군 북천) 등 17개리의 세곡을 옮겨와서 보관하는 창고였다.
따라서 이곳은 세곡과 함께 다른 물산들도 많이 몰리면서 어느 장시보다도 장이 번성했다.
당시 진주지역 안에는 13곳에서 5일장과 10일장이 서고 있었다. 그 가운데 진주목 관아 근처에서 열리는 읍내장이 2일, 7일에, 엄정장(금곡면 엄정동 근처)이 5일과 10일, 수곡장이 1일과 6일에 서고 있었다.
그밖의 장시는 3, 8일이나, 4일 9일에 서는데 서로 날짜가 겹치고 있었다. 진주에서는 1일장과 6일에는 수곡장 외에 다른 장시가 서지 않을 만큼 수곡장시에는 많은 물량이 몰려들어 유통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이 몰리는 곳이었다.
수곡도회가 결정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수곡도회는 읍 전체회의 였기 때문에 고을 안의 각지에서 사람들이 참여했다. 거주지가 확인되는 인물만 하더라도 축곡리의 유계춘, 이계열, 부화곡리(지금의 사천시 축동면)의 김윤화, 북평리(지금의 하동군 옥종면)의 김계용, 가이곡리(진주시 귀곡동)의 정자약(정수교) 등이 있었다.
그밖에도 조학면, 김세업, 성계주, 강화영, 장진기, 장진권, 하달명, 조학오, 강우묵, 하임원, 조성진 등 대표자 300여명이 모여 앉았고, 그 주위로 수많은 군중들이 에워싸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수곡도회 초기에는 유계춘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본래 도회과정에서 1월 29일 ‘읍에 정소를 하고 안되면 감영에 정소하자’는 통문과 이후 2월 2일 ‘철시’를 주장하는 통문 등 두 종류의 통문이 발송된 것이다.
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논의도 이와 마찬가지로 두 계열로 나뉘었다. 참가자들 모두가 진주 고을의 당면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즉 진주목의 환곡 폐단이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으며 특히 올해와 같이 도결과 통환이 병행된다면 농민들이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다는데 뜻을 모은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일부는 처음에 발송된 통문과 같이 먼저 감영에 정소를 내고, 그밖에도 감사가 망궐례(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각 지방관이 궐패에 절하는 의식)를 행할 때 길을 막고 직접 감사에게 호소하자는 주장을 했다. 관에서 읍민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도결과 통환을 결정했기 때문에 그 상위기관인 감영에 직접 호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온건한 방법이었고 주로 유력사족 또는 부민에 의해 제기되었다. 수곡도회에서는 가이곡의 사족인 정자약의 참여에서 보듯이 사족들도 일부 참여했다. 이들은 유계춘 등의 적극적인 행동에 반대하면서 그들의 입장을 강하게 내세웠다.
유계춘 등은 더욱 강화되는 환곡 포흠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층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봤다. 따라서 그는 온건론자의 주장과는 달리 읍내에서 집단시위를 할 것을 주장했다.
초기에 수곡도회를 주도한 사람들은 대체로 온건론자들의 견해에 동의를 했다. 그동안 유계춘 등의 지도부에서 통문을 통해 대중들의 호응을 불러 일으키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도횡서는 주도권을 잡지 못했던 것이다. 같은날 도회에 참석했던 김윤화의 공초(심문조서)에서도 나타나듯이 유계춘은 자신의 의견을 집요하고도 강력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수곡도회 초기에는 정소 등 온건한 방법을 내세운 사람들의 의견이 채택되어 장진기, 조학오 등을 대표로 뽑아 감영으로 파견했다. 그러나 유계춘 등 지도부의 급진적인 항쟁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도회과정에서 한차례 반전으로 나타났다.
중도에 유계춘이 계획한 ‘철시’의 주장이 다시 제기되면서 논의가 새로이 진행된 것이다.
이러한 반전과정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집회 대중들에게 지도부가 계속한 선전활동의 결과로 보인다. 즉 이들이 만든 한글 방문이 집회장소에 반입되면서 제기되었다. 일설에는 부화곡에 사는 유학 김윤화가 한글 방문을 소매에 넣어왔다고 한다.
먼저 수곡에 사는 성계주가 처음으로 철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하임원, 하달명, 김세업 등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했다. 결국 수곡도회에서는 동리의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감여에 대한 의송이 결정되고 대표가 파견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유계춘이 의도한 철시가 제기되고 나아가 고을의 폐단의 책임자와 도결 결정에 참가한 자의 집을 부수자는 주장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집회는 다음날까지 이어졌고, 여기서 지도부의 계획이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면서 철시가 ‘주된 여론’으로 확산되어 갔다.
따라서 수곡도회는 대중과 함께 진주의 현실을 인식하고 투쟁의 방향과 방법을 합의함과 동시에 진주농민항쟁의 운동방향의 전환에 대한 필요성 제기와 상당부분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도회가 되었던 것이다.


수곡장시 장악

수곡도회 이후 열린 수청가회의는 항쟁에 참여할 대중들을 규합하고 조직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수청가 회의 이후 곧바로 농민들의 행동이 시작된 것으로 봐서 이 회의는 덕산장시 공격이 일어나기전에 열린 것으로 보인다.
수청가회의에서는 사람을 더욱 모아 철시를 선동하여 분위기가 고조되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참가한 사람의 대부분이 초군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이처럼 수청가회의는 초군이 중심이 되어 열린 대중집회이고 여기서 지도부의 주장이 거의 받아 들여져 항쟁으로 이어졌다.
드디어 2월 14일 회문을 돌려 초군들이 집결하면서 항쟁의 서막이 올랐다. 각 면리별로 조직적인 활동이 이루어졌는데, 일차 목표는 예정대로 장시였다.
이들의 초기 활동 무대는 진주의 서북지역이었다. 먼저 마동리(지금의 대평)와 원당리(수곡면)의 농민들이 1차 집회가 열렸던 수곡장시를 장악했다. 백곡리와 금만리의 농민들은 서쪽 변경지역인 삼장리, 시천리 등지를 옮겨 다니며 세력을 규합하여 2차 집회가 열린 수청가 인근의 덕산장시를 공격하였다.
1862년 진주농민항쟁운동은 이렇게 그 서막을 올리며 덕천강을 따라 진주읍으로 돌진했다.1862년 2월 18일 진주목의 농민은 불의에 항거하여 횃불을 들었다. 봉기 첫날인 2월 18일 각 면 단위로 농민들이 진주 읍을 향해 모여 들었고, 읍내 5리 밖에 구름떼같이 모여든 농민들은 "이포를 백성에게 징수 말라" , "도결과 통환을 혁파 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점차 읍내로 들어오기 시작했었다.
이포란 관청의 재정 결손액을 말하는 것이고, 도결은 전세, 대동제, 기타세목을 다 합해 금전으로 환산하여 일괄 부과하는 것을 말하고, 통환이란 관청의 환곡미 결손분을 각 호에 분담시키는 것을 말한다.
농민들은 진주 목사에게 도결 혁파를 서면으로 약속할 것을 요구했었고 목사는 서면으로 작성하고 날인까지 해주었다. 손쉽게 요구사항을 쟁취해낸 농민들은 흩어질 줄 모르고 농민 수탈의 원성이 높았던 진주 병영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이방, 호방 등 조세징수 관리의 집들은 부수고 불태웠다. 2월 19일에 농민들은 진주 병사 백낙신을 감금하고 이어 이방 권준범을 처단했다. 또한 진주 읍의 이방 김윤두를 찾아내 몽둥이로 두들겨 패 죽였다.
2월 20일 농민들은 읍 외곽지대를 돌며 대지주들 및 관과 결탁해 농민들을 괴롭히던 부유층의 집을 습격, 부수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23일 밤이 돼서야 농민들은 일단 해산하였다.
경상감사 이돈녕의 보고를 받은 정부는 민란에 대한 수습대책을 논의하여 진주민란의 원인과 피해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박규수를 안핵사로 파견하였다.
1862년 진주농민항쟁운동은 10여일 만에 끝났지만 이것이 발단이 되어 농민항쟁은 전국적으로 파급되어 갔다. 3월에는 진주의 북쪽에 있는 함양과 거창에서 항쟁이 일어났고, 그리고 그 파장이 소백산맥을 넘어 바로 인접한 전라도 장수와 무주 등의 고을로 미쳤고, 다시 무장, 영광, 익산, 능주, 정읍 등 전라도의 많은 고을로 농민항쟁이 확산되었다.
진주농민항쟁 가운데서도 수곡장시는 봉건적 사회체제의 해체기에 그 해체를 촉진시키는 농민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