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침수동․벌당동․호동․정성동․삭성동의 각 일부를 병합해 벌당이라 칭했다. 벌당이라는 이름은 벌판에 신당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신당을 중심으로 집의 위치에 따라 신당 옆이라고 해서 당엽, 신당 넘어라고 해서 당너메, 벌당의 사투리식 발음으로 뻘뎅이 등등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은 천차만별이다.
또한 발음이 주는 늬앙스와 유사한 단어에 대한 상상력 때문에, 마을 이름을 두고 웃지 못할 상황이 곧잘 벌어지곤 한단다.
를 들어, 집이 어디냐는 물음에 ‘당옆’이라고 말하면 ‘닭옆’으로 알아듣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쯤이야 우스개 소리로 웃어 넘기면 그만 아니겠는가.
정호마을은 1947년 1월 1일 벌당리에서 분동되어 나왔다.
그 내력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호마을은 여우와 관계가 깊은 지역이다. 관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과 여우가 상호 작용을 했다는 말인데, 서로를 완전히 배척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않는 오묘한 상태로 느껴진다.
신촌 동쪽에 호동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 한 가운데 여시골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은 살벌해도 살림은 야무지고 단단했는지, ‘진양 강씨 집 하녀가 밥 짓느라 씻는 쌀뜨물이 대곡 단목까지 흐른다’는 말이 사람들 입에서 떠돌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그곳에 진양 강씨가 살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다만, 한때 땅에서 기왓장이 많이 나왔다고 하니 사람들의 얘기를 근거로 추정만 해 볼 뿐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지금도 그것에 여시바우가 남아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여시골이 있는 바로 그 호동마을에서는 꽹꽈리 치고 북치고 장구 두들기는 일이 절대 없었다. 풍물은 금지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소리에 놀란 여우가 행여 도망이라도 갈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여우가 도망을 가면 마을이 망하고, 사고와 질병이 끊이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여우가 마을을 지켜준다고 생각했는지, 집집마다 대문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새집을 지어도 역시 대문을 달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일종의 전통처럼 지켜지고 있는 풍습인데, 이것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전해지는 모든 얘기가 반드시 여우에게 친근한 것만은 아니다.
벌당리와 반지리의 경계를 삼는 고개가 있는데 그 이름이 참 재미난다. 이른바 몽둥골재. 이름이 지어진 사연은 이렇다. 이 고개에는 백년 묵은 여우가 살고 있었는데, 어찌나 영악하고 꾀가 많던지 고래를 넘는 사람 백이면 백 모두를 골탕먹이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고래를 넘은 뒷얘기를 하기가 민망스럽기도 하고, 또 한순간 정신을 잃어 무슨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언제나 노심초사 했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바로, 여우의 행패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 항상 몽둥이를 들고 다니자는 것이었고, 그 이후로 사람들이 하나같이 몽둥이를 들고 넘는 고개라 해서 몽둥골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상황을 그대로 전하는 고개의 직설적인 이름이나 사람의 몽둥이에 제압을 당하는 여우나, 상상하면 모두 순박하기 그지 없다.
사람의 몸둥이에 겁을 먹을 정도라면, 이 골짜기에 사는 여우는 아무리 백년 묵은 여우라 해도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으스스한 모습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