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감이라는 말이 있다. 혹은 데자뷰라고도 하는데, 말하자면, 처음 접하게 되는 사물이나 풍경 또는 사건인데도 마치 예전에 보았거나 겪었던 것처럼 착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는 체험한 일이 없는 현재의 상황을 전에 체험한 것처럼 똑똑히 느끼는 현상...,
아마도 임곡마을 앞에 서면 그런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 느낌이다.
마을 입구에서 우람한 정자 뒤로 나지막한 산에 포옥 안긴 임곡마을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꼬리에 이어지는 것은 바로 그림이다. 누구의 어떤 그림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시골 마을을 담은 담담한 수채화 한 폭... 마치 그 배경인 것만 같은 느낌. 이것은 마을의 풍경이 모든 시골 마을을 대변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하면서 낯익고 그리고 정겹다는 얘기다.
임곡마을은 1982년 9월 1일에 안간리 내인에서 분동되었다. 숲골, 뿔당, 네리실을 합해 임곡이라 한다. 안간 시장통에서는 200미터 남짓 떨어진 거리다. 옛날에는 집현산 아래 이 지역이 숲이 얼마나 울창했던지 밖에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숲이 울창한 계곡이란 뜻의 임곡이라는 것이다.
뿔당은 숲골 더 안쪽에 있는데 옛날에 절을 지어 불당을 모셔놓았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원래는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리고 내리실은 정작 본마을과 떨어져 있어서 언뜻 보기에는 한 마을로 보기가 힘들 정도다.
임곡마을의 한 해 가장 큰 농사는 바로 담배농사다. 마을 전체 호수의 절반 정도가 벼농사를 짓고 나머진 반은 담배농사를 짓는다.
기계가 들어오기 전에는 하나 하나 잎을 따는 것에서부터 엮어서 굽고 말리는 모든 과정을 모두 손으로 처리해야 했다. 그야말로 핸드 메이드(hand made)였던 것이다. 하지만 벼농사 보리농사 짓는 것보다 수익이 좋아 모든 고생을 참아낼 수 있었다는데, 90년대 들어서면서 담배인삼공사가 수매를 하면서 수매가를 동결해 일하는 재미가 덜해졌다고 한다. 뼈빠지게 담배 농사 지어봐야 품값도 안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작목으로 눈을 돌릴 법도 한데, 어쩌다 젊은이들이 비닐하우스에 뛰어들어도 보지만, 고지대라는 지형상의 맹점으로 인해 번번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이 마을 주민들은 담배농사를 지으면서 거기에서 모자라는 수입을 채워넣기 위해 벼농사와 밤농사를 병행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