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에서 가장 정감가는 부분을 찾으라면 서슴없이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흙담을 꼽겠다.
도심의 집들이 답답한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한다면, 시골농가의 흙담은 맑은 공기 속에서 스스로 호흡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뺑하니 집을 둘러싸고 있지만, 타인으로 하여금 주눅이 들게 하거나 경계하는 마음이 들게 하지 않는다. 그 어눌함에 마음이 턱하니 놓이는 것이다.
부지런히 비질 된 마당이며, 부담없이 자라고 있는 감나무며, 그 한 켠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늙은 개며, 잦은 걸레질에 광택이 없어진 툇마루까지 모든 것이 정겹기만 한 동네. 그것은 오랜 기억 속에서 저물고 있는 고향의 풍경이었다.
그 풍경 속에 어옥마을이 있다.
1914년, 진주군 설매곡면 덕진동․오방동 각 일부와 어옥동을 일러 어옥리라 했다.
어옥은 진주군 설매곡면의 지역으로써 원래 늘옥실 또는 어옥이라 불러다. 어옥은 마을 앞 산이 마치 꿰어논 구슬이 늘어져 있는 것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리 정리를 할 때에도 구슬을 꿰는 것처럼 했다고 하니, 구슬같은 모양이란 말은 어옥마을의 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다.
어옥마을의 가장 큰 배경은 밤나무다. 입구만 빼놓고는 눈 가는 데 마다 밤나무가 지천이다. 사방으로 밤나무가 빼곡이 들어선 전형적인 산골마을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요 소득작물은 당연히 밤이다. 산골마을의 산에 밤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섰으니 밤을 재배하지 않는 농가가 거의 없다.
한때 몇 집에서 비닐하우수 채소재배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깊은 골짜기라 애로사항이 많았다. 무엇보다 해를 오래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결국에는 일조량 부족으로 거의 실패를 보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산골의 생활을 어떻게 연명할 수 있었을까?
이농현상이 유행처럼 번지던 70년대 초,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지면서 어옥마을도 심한 혼란에 빠졌다. 주민 상당 수가 도외지로 빠져나갔다. 손바닥만한 땅뙈기로는 평생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는 한탄이 사람들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때 시작된 것이 밤농사였다.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야산을 개간해 밤나무를 심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건만 최근 들어 다시 밤가격이 하락하면서 주민들의 한숨 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어옥 서북쪽 떡골에서 미곡리 신촌으로 가는 고개를 떡골재라고 하는데, 그 형상이 아주 재미있다. 마치 방안 구들장처럼 넓은 반석이 일어나 있는 모양으로, 마치 시루떡 같다고 해서 떡골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때 구들장 만드는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아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그 외 어옥에는 애잔한 지명들이 많다. 동북쪽에 있는 등골은 등잔처럼 생겼다고 해서 등잔설이라고도 부르고, 서쪽에 있는 망골은 진주로 시장보러 간 사람들을 기다리던 고개였다. 서남쪽에 있는 배골은 객지에 나갔다가 고향을 돌아올 때 너무 반가운 마음에 사람들이 넙죽 절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옥과 덕진동 사이의 고개는 배월재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달맞이를 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그곳에서 달맞이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배월재에서의 달마중이 궁금해진다. 
많은 곳 중에서도 동쪽에 있는 이예재를 빼놓을 수가 없다. 별도의 회관이나 건물이 없던 옛날에 이예재는 지역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일종의 회합장소였다.  월암․용암․상촌․어옥․하촌․상미․설매․덕진 등 인근지역의 대표자들이 모여 마을간의 대소사를 의논했던 아주 의미있는 자리였던 것이다.
어옥 주민들이 입이 닿도록 늘어놓는 마을 자랑 중에 또 하나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물 자랑이다. 어옥 중앙에 있는 해남새미는 전체 골짜기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서 물맛이 깨끗하기로 이웃 마을까지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단다. 오죽하면 ‘골수(骨水)’라고 불렀을까. 그대로 떠다가 생수로 시판해도 될 거라는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150여호가 넘는 마을사람들이 다 먹고도 남았다고 하니 어옥의 수맥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